키케 플로레스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태극전사들을 지휘할 새 사령탑으로 스페인 명장 키케 플로레스가 급부상하고 있다. 스페인 유력지 ‘아스’에서도 경륜이 높은 하비에르 마타야나스 기자가 플로레스와 대한축구협회의 스페인 마드리드 협상 소식을 전했고, 플로레스 측도 이를 딱히 부인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플로레스는 협회의 플랜A 후보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5년생으로 지도자 생활의 전성기를 이어나가고 있으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 라 리가의 중상위권 클럽에서 좋은 성적을 계속 냈기 때문이다. 스펙이 너무 높은 게 오히려 흠이었다. 그러나 협회가 새 감독 발표 데드라인을 앞두고 그와 접촉 중인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플로레스가 한국에 온다면 이보다 더 좋은 감독은 없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플랜A보다 더 나은 플랜B 후보로 볼 수 있다,

◇중위권 맡아 결과로 증명…한국 축구와 잘 맞는다

플로레스의 강점 두 가지는 스페인 출신임에도 점유율보다는 역습에 능한 축구를 펼친다는 점, 톱클래스보다는 중하위권부터 중상위권까지의 팀을 맡아 성적을 냈다는 점으로 볼 수 있다. 2001~2004년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팀 감독을 통해 지도자에 입문한 그는 이후 헤타페와 발렌시아, 벤피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스페인 및 포르투갈 구단을 거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알 아흘리와 알 아인 지휘봉을 잡았다. 2015년 헤타페에 잠시 있었다가 프리미어리그 왓포드, 라 리가 에스파뇰에 연달아 부임했다. 21세기 들어 스페인 축구를 쉼 없는 패스와 점유율을 기초로 한 ‘티키타카’ 플레이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플로레스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나 빅리그 우승후보들보다 다크호스들을 주로 맡다보니 공·수 밸런스와 빠른 역습을 강조하는 스타일을 갖고 있다. 이는 주도권을 놓쳐도 결과는 갖고 오는 축구로 연결된다. 영국 가디언은 플로레스 감독을 두고 “팀 승리에 초점을 맞추는 실용주의적 지도자”라고 표현했다. 한국 역시 아시아에선 강자로 군림하고 있으나 월드컵에선 ‘언더독’으로 도전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카타르 월드컵 땐 손흥민, 이재성, 권창훈, 이승우, 이강인 등 공격 라인은 화려한 반면 수비는 개선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플로레스의 축구 철학은 카타르 월드컵에서 12년 만의 16강을 노리는 우리에게 잘 맞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월드컵 보라…대표팀 경험 부족 ‘걸림돌’ 아니다

플로레스의 약점으로 국가대표 지휘 경험이 없다는 게 꼽힌다. 한 달에 열흘 가량 모여 두 경기를 치르고 결과를 내야하는 훈련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는 기우로 볼 수 있다. 멀리 가지 않고 러시아 월드컵만 봐도 그렇다. 러시아 월드컵에선 대표팀 경험 없는 지도자들이 성적을 잘 낸 대회로 꼽힌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벨기에의 사상 최고 성적(3위)을 이끈 스페인 출신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이다. 마르티네스 감독은 선수 시절 스페인 각급 대표로 한 경기도 뛴 적이 없다. 지도자가 된 뒤엔 스완지 시티, 위건 애슬래틱, 에버턴 등 잉글랜드 클럽만 맡다가 2016년 유럽선수권 뒤 벨기에에 부임했다. 그는 프랑스 레전드로 월드컵과 유럽선수권을 모두 제패했던 티에리 앙리를 수석코치로 내정해 A매치 경험 부족을 메웠고, 스스로도 큰 어려움 없이 유럽예선 10경기에서 9승1무를 기록했다. 본선 성적도 3위로 대단했다. 마르티네스 외에도 즐라트코 달리치(크로아티아·2위), 스타니슬라프 체르체소프(러시아), 야네 안데르센(스웨덴·이상 8강)이 클럽 위주 지도자였음에도 자국 대표팀을 짧은 기간 맡아 성적을 일궈냈다. 플로레스의 경우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하는 등 A매치 15회 경력의 스페인 국가대표로도 뛰었기 때문에 대표팀 지도 경험 부족은 어렵지 않게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4년 지킬 수 있을까…플로레스는 너무 ‘핫해서’ 문제다

관건은 그가 너무 ‘핫한’ 지도자란 점이다. 플로레스 감독은 지금까지 자신이 맡았던 성인팀에서 4년을 지도한 적이 없다. 2005년 5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2년6개월간 스페인 발렌시아를 맡았던 것인데 이미 10년 전의 얘기다. 서아시아의 두 구단을 맡은 기간도 다 합쳐봐야 2년 4개월밖에 되질 않는다. 지도자계의 ‘저니맨’으로 불릴 수 있다. 특히 2015~2016시즌엔 승격팀 왓포드를 맡아 팀을 중위권에 올려놓고, 아스널을 물리치며 FA컵 4강을 일궈냈으며, 자신도 2015년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으로 뽑히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1년만 재임하고 스페인 에스파뇰로 돌아가 의구심을 낳기도 했다. 추후에도 서유럽 클럽이나 대표팀 러브콜에 휩싸일 수 있어 대한축구협회가 그와 계약하더라도 계약 기간이나 해지 조항 등을 면밀하게 작성할 필요가 있다. 플로레스는 국내 축구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를 데려온다면 큰 사건이 될 테지만 그 만큼 지키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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