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김대령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거둔 역사적인 독일전 승리는 축구 팬들에게 14년 전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한 경기를 떠올리게 했다. 2004년 12월 한국은 박지성 등 해외파가 대거 결장한 상황에서 독일과 친선전을 치러 3-1 승리를 거뒀다. 비록 친선 경기였지만 독일이 올리버 칸부터 미하엘 발락, 미로슬라프 클로제 등 1군 선수들을 대거 내세웠던 경기였기에 전 세계 축구 팬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경기에 선발 출전해 측면을 종횡무진 누비던 까만 피부의 선수가 있었다. 박규선. 한때 한국 축구의 측면을 책임질 유망주로 평가받았고, 실제로 대표팀에도 여러 차례 승선했으나 불의의 부상을 입으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식도 따로 치르지 못한 채 조용히 은퇴한 탓에 그는 일명 '근황의 아이콘'이 됐다. 온라인 축구 커뮤니티에는 아직도 주기적으로 박규선의 근황을 묻는 글이 올라온다. 그 박규선을 대전시 대덕구 한남대학교 인근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났다.


◇야구를 먼저 배운 아이, K리그 무대를 밟다


2011년부터 한남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재직 중인 박규선은 선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는 "축구를 하기 전에는 야구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야구를 했다. 아무래도 축구가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라며 축구를 시작한 계기를 전했다.


서울체육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엔 당시 학교와 신인 지명 협약을 맺고 있던 울산 현대에 입단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활약을 눈여겨 본 울산에 지명돼 입단하게 됐다"라며 "서울체고 축구부가 당시 재창단한 지 얼마 안 돼 프로 생활에 관해 조언을 구할 선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프로에 직행하는 것이 부담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설렘도 컸다"라고 당시 심정을 밝혔다.


프로 데뷔전은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 2000시즌 개막전 전남과의 경기에서 후반전 교체 투입된 박규선은 연장 후반(당시 K리그는 정규리그에서도 90분내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에서 승리하면 승점2, 승부차기에서 승리하면 승점1을 획득했다) 하프라인에서부터 엄청난 드리블을 선보이며 골문 앞까지 도달해 골든골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원맨쇼'였다.


센세이셔널한 데뷔전을 치른 박규선은 스스로도 '해볼 만 하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나 개막전 이후엔 인상적인 활약을 남기지 못했다. 데뷔 시즌에 관해서는 "경기 중 실수를 하고 그 실수가 실점으로, 패배로 이어지면 스스로 크게 위축됐다. 어린 마음에 이를 이겨내지 못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라고 떠올렸다.


◇아시안게임-올림픽, 두 번의 도전과 두 번의 실패


2002년에는 미래를 바꿀 절호의 찬스가 찾아왔다. 윙백으로 포지션을 바꾼 후 K리그에서 펼친 준수한 활약을 바탕으로 2002년 아시안게임 대표팀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당시 현영민, 김두현, 이천수, 박지성, 최태욱, 최성국, 김은중, 이동국 등으로 구성된 선수단에는 와일드카드로 이운재, 이영표, 김영철까지 합류하면서 '역대급 스쿼드'가 완성됐다. 금메달은 떼놓은 당상으로 여겨졌지만 준결승전에서 이란에 승부차기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그는 "한일 월드컵 후 축구 열기가 엄청났을 때였다. 멤버가 워낙 좋았기에 선수들도 기대감이 컸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기회는 한 번 더 찾아왔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무대였다. 박규선은 세 차례 조별 리그 경기에는 모두 선발 출전했지만 8강전에서는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그 경기에서 패해 메달의 꿈을 접었다. 그는 "아테네에 가기 전까지 몸 상태가 정말 좋았는데 본선에서 내가 조금 주춤하다 보니 토너먼트에서 벤치로 밀려났다. 대회 준비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라고 자신의 탓으로 돌린 후 "파라과이와는 대회 전인 2004년4월 한 차례 평가전을 했다. 이길 수 있을 만한 상대였는데 아쉽다"라고 이야기했다.


올림픽은 아쉽게 끝났지만 같은 해 12월 A매치에는 데뷔할 기회를 잡았다. 상대는 세계 최강 독일이었다. 선발 출전에 이름을 올린 박규선은 당시 윙어로 뛰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를 상대로 맹활약하며 팀의 3-1 승리에 기여했다. 그는 "선수들끼리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각오를 다지긴 했으나 이길 거라는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라며 "경기 후 모두 정말 좋아했다. 잠도 안 왔다"라고 웃었다.


◇불의의 은퇴, 놓기 힘들었던 현역에 대한 미련


이후에도 전북과 울산, 부산을 거치며 꾸준한 활약으로 K리그 무대를 누볐으나 해결하지 못한 군 문제는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결국 2007시즌을 끝으로 입대를 결심했고, 이듬해 광주 상무의 유니폼을 입고 붙박이 주전으로 리그 32경기에 나섰다. 컨디션도 최고조였다. K리그의 다른 팀과 J리그에서도 박규선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는 "입대 전에는 군대 생각만 하면 머릿속이 흐트러졌다. 부산에서는 조금 더 뛰다가 입대하라고 했지만 스트레스가 워낙 심해 빠른 입대를 결심했다. 막상 군대에 와보니 축구가 더 잘됐다"라고 어렵게 입을 뗐다.


박규선이 군대 이야기를 힘들어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선수 경력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전과의 경기에서 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당시 팀과 연계된 한 민간병원으로 갔는데 비골 골절이라며 핀을 박으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수술을 받았다"라고 운을 뗀 후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고통을 못 이겨 다른 병원을 가봤더니 뼈만 다친 게 아니라 인대가 끊어지고 연골도 망가지는 등 발목 전체를 쓸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애초에 바로 수술을 하면 안 되는 상태였는데 수술을 해버렸고, 심지어 그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다친 후 내가 직접 나서서 정밀 검사를 받았어야 했는데 결국 내가 부주의했던 부분도 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활이 길어지면서 팬들의 뇌리 속에서는 잊혀져갔다. 팬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박규선은 요즘 뭐하지?"라며 찾기 시작할 때까지도 그는 선수 복귀를 위해 피와 땀을 흘렸다. 2011년 학창시절 은사였던 고(故) 이상래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남대학교 코치로 부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선수의 일방적인 바람은 아니었다. 실제로 몇몇 구단에서는 박규선의 현역 복귀를 추진했다. 불과 4년 전에도 입단 제의가 있었다. 개중에는 성사 단계까지 갔던 건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통증이 재발하며 입단 문턱에서 좌절됐다. 당시 심정에 관해선 "러닝을 할 수 있는 상태까지 2년 넘게 걸렸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 축구를 너무도 좋아했다. 돈보다 축구를 못하게 됐다는 게 너무 슬펐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박규선은 '지도자'로서 다시 성장하고 있다


이제는 완전히 지도자로 자리 잡은 박규선은 "지금 생각해보면 지도자가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 가르치는 것도 재미있고 새로운 훈련 방식을 만들고, 선수들이 이에 맞춰 실력이 늘어나는 걸 보면 정말 뿌듯하다"라며 "얼마 전에 대구에 입단한 장성원이 FA컵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경기를 직접 보러 갔는데 이럴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지도 철학에 관해서는 "강요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지 않다. 특히 해외축구를 많이 챙겨보려 한다. 세계 축구의 흐름을 파악하고 철학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라며 '공부하는 지도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또한 정신적인 무장도 강조했다. 마냥 투지만을 강조하는 과거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는 "간절함을 가지라고 말한다. 프로란 곳은 학원 축구와는 다르다. 기다려주는 곳이 아니다. 경쟁 중이라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라고 소신을 이야기했다.


박규선이 '근황의 아이콘'이 된 데에는 오랜 기간 프로 리그가 아닌 대학 무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그는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지만 지금 1차적인 목표는 한남대학교를 최고의 학교로 만드는 것이다. 프로로 가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저 현재 한남대학교에 집중하고 싶다"라며 학교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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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ㅣ김대령기자 daeryeong@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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