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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이 29일 독일 이스마닝에서 열린 홀슈타인 킬-에이바르 평가전 뒤 인터뷰하고 있다. 이스마닝 | 정재은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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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이 29일 독일 이스마닝에서 열린 홀슈타인 킬-에이바르 평가전을 치른 가운데 한 어린이 팬이 이재성 응원 문구를 들어올리고 있다. 이스마닝 | 정재은통신원

[이스마닝=스포츠서울 정재은통신원]“대단해!(KRAASSS!)”

독일 뮌헨 위성도시 이스마닝의 엘리히 그라이플 경기장에 한국 선수를 향한 찬사가 울려 퍼졌다. 29일 열린 독일 홀슈타인 킬과 스페인 에이바르의 연습경기에서였다. 후반전 마지막 13분을 뛴 킬 소속의 한국 미드필더 이재성은 짧은 시간 속에서도 슈테펜 레베렌츠에게 결정적 침투패스를 찔러줬다. 관중석은 박수를 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리(LEE)’의 등장이었다. 불과 48시간 전 인천공항에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이재성은 덴마크와 가까운 독일 북부도시 킬에 도착, 메디컬테스트와 입단식을 치른 뒤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독일 남부도시 이스마닝으로 내려와 바로 그라운드에 투입됐다.

그에게 물리적으로 이날 에이바르전 출전은 어려운 듯 했으나 팀 발터 감독은 10분이라도 이재성을 보고 싶어했다. 이재성은 기대에 응답했다. 팬들은 경기 후 이재성에게 사인과 사진을 요청했다. 한 어린 팬은 “‘리’가 왔다는 소식에 너무 기뻤다. 그에 관한 기사들을 찾아보며 그와 사랑에 빠졌다”며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팬들의 관심에 이재성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날 킬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 상대 공격수 베베에 해트트릭을 허용했으나 후반 두 골을 넣는 등 좋은 경기력을 펼치며 2-3으로 한 골 차로 패했다.

-킬에서의 첫 경기를 치렀다.

너무 새로운 환경에서 치른 첫 경기였다. 내게 새로운 동기부여가 많이 올라온 상태여서 너무나 즐거웠다. 우리 선수들이 잘 뛰었고, 내게도 잘 해줬다. 졌지만 즐겁게 경기를 뛸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을 소화했지만 그 안에서 뭘 보여준 것 같나.

내가 갖고 있는 움직임이나 턴 동작을 보여줄 수 있었다. 패스도 괜찮았다. 13번, 슈테펜에게 해준 그 패스 말이다. 첫인상이 중요한데, 생각했던 것보다 잘 남긴 것 같아 다행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걸 보여줬다. 선수들도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걸 조금씩 쌓아가면 선수들에게 신뢰도 더 받을 수 있을 거다. 이 팀에서 내가 잘해야 성적이 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책임감이 크다.

-경기 종료 후 발터 감독이 어떤 말을 해줬나.

“네가 우리 팀의 키 플레이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이다. 내려가기보다 올라와서 공을 받으라고 하셨다. 공격 진영에서 패스하며 경기를 풀어가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하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잘했다고 칭찬도 해주셨다.

-발터 감독이 전북에서의 역할과 다른 걸 주문한 게 있다면.

전북에서는 골보다 어시스트 주는 역할을 했다. 발터 감독님은 내가 어시스트보다 골을 넣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첫 번째가 골, 두 번째가 어시스트다. 팀의 플레이메이커로서 그 역할을 잘해야 한다. 감독님이 이런 부분도 잘 말씀해주시고 워낙 잘 챙겨주셔서 감사하다.

-선수들과 분위기는 어떤가.

경기 후엔 일단 “환영해”, “잘했어” 등의 칭찬을 해줬다. 다들 잘 챙겨주려고 한다. 너무 기쁘다. 이 선수들을 아침 비행기 타기 전 처음 만났다. 훈련 전까지 서먹서먹하고 이름을 물어봐도 외는 게 쉽지 않고 그랬다. 그래도 우리는 축구선수이다 보니, 훈련 중에 패스 주고 받으면서 친해졌다. 나도 내가 먼저 다가가려 했다.

-어떤 선수가 가장 인상적이었나. 지금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면.

먼저 요나스 메퍼트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왔다. 그 선수도 어제 킬에 왔다. 감독님, 단장님이랑 다 같이 식사를 했다. 잘 챙겨주더라. 수비수 요하네스 판덴베르흐도 잘 챙겨줬다. 물이나 가위 등 필요한 독일어들도 알려줬다. 나중에 다시 나한테 물어보기도 하고(웃음). 도미니크 페이츠는 분위기 메이커 같다. 갑자기 라커룸에서 강남스타일을 틀더라. 어쩔 수 없이 춤췄다. 그게 신고식인지는 모르겠다. 제발 그게 끝이었으면 좋겠다. 자철이 형이 이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다. 신고식을 할텐데 강남 스타일 춤추라고, 화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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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이 29일 독일 이스마닝에서 열린 홀슈타인 킬-에이바르 평가전 킥오프 직전 벤치에서 엄지를 치켜올리고 있다. 이스마닝 | 정재은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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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이 29일 독일 이스마닝에서 열린 홀슈타인 킬-에이바르 평가전에서 앞서 준비운동하고 있다. 이스마닝 | 정재은통신원

-독일을 이긴 한국에서 온 선수라 금세 친해질 수 있었을 것 같다

내가 먼저 자랑했다. 우리가 이겼다고, 다들 보지 않았냐고. 그랬더니 나더러 다시 한국으로 가라고 그런다(웃음).

-훈련장 시설이나 구단 시설은 어떤가.

사실 전북이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너무 좋았다. 거기에 비하면 조금은 열악하지만 그래도 나름 봉동 느낌이 난다. 시골이라서, 작은 곳이지만 선수들과 더 부대낄 수 있으니까 적응하기엔 좋은 것 같다.

-분데스리가 경험한 손흥민, 구자철, 지동원 등과 연락했나.

어제(28일) (아우크스부르크 소속의)동원이 형, 자철이 형이랑 영상 통화를 했다. 둘이 그렇게 한 팀에 같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형들이 나한테 그러더라. 너무 행복하고 너무 좋아 보인다고. 나는 표현을 안 해도 얼굴에 다 드러난다. 이런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게 선수로서 흔치 않은 일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하라고 해줬다. 동기부여가 충만해졌다. 흥민이는 지금 미국에 있어 바쁘다. 오늘 연락이 왔다. 축하한다고, 좋은 결정 했다고 하더라.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정)우영(바이에른 뮌헨)이 한테도 연락이 왔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경기 잘하고 가라고 하더라. (황)희찬이도 연락했다. 잘츠부르크에서 뮌헨까지 1시간 30분밖에 안 걸린다면서 오고 싶어 하더라. 이게 또 해외로 나오니까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걸 느낀다. 다들 정말 고맙다.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 좋다.

-분데스리가에 대한 조언도 받았을 것 같은데.

자철이 형은 1부보다 2부가 몸싸움이 더 격렬할 거라고 해줬다. 걱정하더라. 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자철이 형이 독일 생활에 대해 많이 알려줬다. 워낙 세심한 형이다. 집은 어떻게 구하고, 핸드폰은 어떻게 하고 등등 세세하게 알려줬다. 내가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으니까 너무 좋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에 분데스리가 출신 선수가 많다. (홍)정호 형, (김)진수, (박)주호 형, (차)두리 형까지. 다 힘이 된다. 그리고 2부에서 뛰는 박이영(상파울리)도 있다. 킬이랑 가깝더라. 조만간 보기로 했다.

-왜 홀슈타인 킬을 선택했나.

나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게 가장 큰 이유다. 유럽에 진출하고 싶은 마음이 엄청 컸고 몇 년 동안 꿈꿔왔던 일이었다. 다만 유럽으로 나가더라도 경기에 나가지 못하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나를 정말 원하고, 내가 뛸 수 있는 팀을 선택했다. 발터 감독님이 나를 너무나 원했고, 통화하면서 그런 진심을 느꼈다. 감독님의 철학 속에서 배움도 있을 것 같다.

-적잖은 나이에 유럽 진출을 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늦은 나이이지만 이렇게라도 꿈에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었다. 감사하고 행복하다.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가족, 팬, 구단, 감독님 모두 나를 지지했기에 가능했다. 거기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 또, 내 또래 선수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다.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 앞으로 많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입단하자마자 등 번호 7번을 달았다. 팬들의 기대도 크다. 부담은 없나.

기사도 많이 나왔지만 아직 나는 그런 걸 읽을 줄 모른다(웃음). 부담감은 없다. 내가 경험하고 싶은 리그에 와서 마냥 기쁘고, 설렌다. 압박감이나 부담감보다는 즐겁게 하려 노력하고 있다.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하면 할수록 더 재밌을 것 같다.

-독일에 오며 가장 기대한 부분은 무엇인가.

축구 문화다. 월드컵에 나가기 전에 자철이 형이 이런 말을 했다. “독일은 매주 월드컵”이라고 말이다. 내가 러시아 월드컵을 경험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 매주 이런 경기를 치르고 이런 경기장에서 뛰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이다. 이렇게 매주 월드컵이 열리는 독일에 와서 너무 좋고 설렌다. 킬에서 아직 딱 하루 보냈지만 도시에 바닷가도 있고 조용하고 나름 좋다. 여기서 좋은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에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나는 프로 생활 내내 합숙을 했다. 미혼자는 합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선 집을 얻고 출·퇴근을 한다. 이런 거 해보고 싶었다. 이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다. 기대된다. 아무래도 내가 더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정말 해보고 싶었다. 면허도 국제면허로 바꿔서 왔다. 내가 좀 더 나의 삶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 시간을 활용하면서 많이 배울 것 같다. 인간적으로도 성숙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화된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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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이 29일 독일 이스마닝에서 열린 홀슈타인 킬-에이바르 평가전 후반 교체투입 직전 기도하고 있다. 이스마닝 | 정재은통신원

-유럽 진출의 꿈을 이뤘다. 킬에서 어떤 새로운 꿈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나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1부 리그도 가고 싶고, 더 큰 무대에도 가보고 싶다. 일단 첫 시즌은 홀슈타인 킬이 승격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싶다. 함께 1부로 올라가는 게 가장 좋은 플랜이다. 그러지 못하면 1부 팀으로 이적하고 싶다. 몇 년 전 이적을 준비할 때 많은 구단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다들 내게 잘하는 선수, 좋은 선수라고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들의 말은 “해외에서 네가 증명한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선뜻 큰 돈을 주기는 어렵다”였다. 그래서 다들 관심만 있지 정식으로 내게 오퍼를 한 곳은 없었다. 하지만 난 이제 유럽에 있다. 유럽에서 나를 보여줄 수 있다는 조건이 생겼다. 기회가 펼쳐진 것이다. 내가 얼마나 보여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잘하면 더 좋은 팀 가는 거고, 못하면 더는 변명할 수 없다. 도전하기 위해 이 곳에 왔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기 전에 전북 단장님, 대표이사님이 좋은 식사자리를 마련해주셨다. 저녁에 맛있는 고기도 사주셨고, 조그만 선물도 해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독일에 현대자동차가 있기 때문에 차도 마련해주시려고 한다. 너무나 감사하다. 전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신경을 써 주신다. 내가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북의 첫 유럽 진출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아시아 다른 팀에서 훨씬 좋은 조건을 꺼냈지만, 구단은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은퇴하기 전에 꼭 전북에 가서 팬들과 인사하고 싶다. 고별전을 못 하고 와서 그 아쉬움이 가장 크다.

-은퇴는 전북에서 하겠다는 뜻인가.

당연하다. 내 인생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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