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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래퍼 블랙나인은 국내 힙합신에서도 비주류인 ‘하드코어힙합’ 장르의 뮤지션이다. 흔히 하드코어힙합에는 ‘과격’, ‘거칠음’, ‘시끄러움’ 등의 이미지가 따라붙게 마련이지만 블랙나인에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에게 하드코어힙합은 ‘치유’의 다른 이름이다.

지난해 엠넷 ‘쇼미더머니 시즌6’(이하 쇼미6)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블랙나인은 지난달 3곡이 담긴 싱글 앨범 ‘브레이크 잇 다운(Break it Down)’을 발표했다. 타이거JK가 이끄는 필굿뮤직에 합류한 후 처음으로 발표하는 앨범으로, 그가 삶과 음악을 대하는 자세를 진심으로 풀어낸 음악이다.

최근 만난 블랙나인은 ‘쇼미6’ 이후 ‘성장통’을 겪었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음악과 해야하는 음악 사이에서 혼란도 느꼈다. 고민 끝에 이번에 나온 앨범에는 블랙나인이 생각하는 하드코어 힙합의 본질이 담겨 있다. 서서히 변화를 추구해 나가는 그이지만 이번 앨범에서 선언한 정체성만은 잃고 싶지 않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지난달 19일 발매한 싱글 ‘브레이크 잇 다운’ 소개를 부탁한다.

원래 더 많은 노래를 수록한 앨범을 준비하다가 우선 3곡이 담긴 싱글 형태로 공개하게 됐다. 제일 애착이 가는 노래들을 넣었다. 수록곡 중 ‘브레이크 잇 다운’은 지난해 만들었고, 다른 두 곡은 지난해 ‘쇼미6’를 위해 만든 곡들이다. 이 세곡은 지금까지 블랙나인이 보여준 모습의 연장선상에 있는 곡들이다. ‘쇼미6’를 끝낸 뒤 바로 공개하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발표하지 못했다.

-힙합 팬들에겐 익숙한, 블랙나인 만의 강한 노래들이 실려있다.

원래 많은 곡이 담긴 새 앨범을 준비했는데, 다양한 걸 시도했다. 혼자 노래도 부르고, 멜로디가 들어간 음악도 해봤다. 그러다 먼저 발표하는 앨범에 두세곡만 실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거기에 새 시도를 넣으면 내 방향성에 대한 오해가 생길까봐 제일 좋아하고, 나다운 곡 세곡을 앨범에 싣게 됐다.

-‘쇼미6’ 출연 이후 행보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음악과 해야 할 음악의 괴리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만들어야 할 거 같은데, 내가 바뀌진 않을 테니 그 사이에서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을 느꼈다. 일종의 ‘성장통’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동남아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후 시야가 넓어졌다. 거기서 음악을 들으니 다르게 들리더라. 안 좋게 느껴졌던 곡이 좋게 들리고, 좋았던 곡이 별로로 느껴지고. 이전에 매일 작업실과 집만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스스로의 좁은 생각안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이후 내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그 안에서 대중에게 다가가기 쉽게 만들 장치를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젠 하고 싶은 음악을 더 멋있게 만들고 싶다. 그게 최근 내린 내 결론이다.

-힙합계에서도 상대적으로 비주류인 하드코어힙합을 추구한다.

난 감정이 어둡고 우울하다. 그걸 화로 푸는 듯한 음악을 선보였는데 더 행복해져서 사랑노래도 하고 싶고, 밝아져서 밝은 노래도 하고 싶다. 하지만 당장 하고 싶은 것은 이번에 낸 앨범에 들어간 어두운 음악들이고, 이게 지금의 내 색깔이다.

이번 앨범에서 제일 좋아하고 아끼는 곡은 2번 트랙 ‘킵 잇 하드코어’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트랙이라고 자부한다. 이런 사운드와 가사, 분위기는 놓지 않을 것이다. 하드코어 힙합은 계속 지키고 싶다. 그걸 베이스에 두고 다양한 음악을 하고 싶다.

-우리나라에 하드코어힙합을 추구하는 아티스트가 많은가.

하드코어힙합, 하드코어 랩을 추구하는 래퍼는 나, 이그니토, 헝거노마 세명 정도다. 하드코어힙합 비트를 만드는 전문 비트메이커는 우리나라에 레이딕스 한명이다. 이렇게 4명 정도가 하드코어힙합을 표방한다.

우리나라 하드코어힙합은 사실상 이그니토가 만들었다. 가사의 깊이가 엄청나다. 그걸 이해하고 나면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슬프고, 너무 큰 감정들이 담겨 있다. 헝거노마는 정규 앨범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

-하드코어힙합을 왜 하게 됐나.

영화음악을 좋아해 그런 사운드에 가사를 쓰는 연습을 했었다. 그러다 ‘투 스텝 프롬 헬’이라는 음악 제작 집단의 사운드를 좋아하게 됐고, ‘제다이 마인드 트릭스’같은 하드코어 힙합 팀을 좋아하게 됐다. 가사가 거친데 그 분노에서 나는 큰 연민을 느꼈다. 센 척이 아니라 안 좋은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외침을 느낀 것이다. 나는 21세 때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겪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 이그니토의 ‘데몰리쉬’란 앨범을 듣고 ‘외국 아티스트보다 더 한 사람이 한국에 있구나’ 싶었다.

하드코어힙합 뮤지션들의 인터뷰를 자주 찾아봤는데 ‘하드코어힙합이 뭐냐’는 질문에 어떤 이는 “절대 지지 않는 의지”라고 답하고 어떤 이는 “무조건 센 것”이라 답하더라. 그 중 마음에 와닿았던 대답은 “하드코어힙합은 삶 자체”라는 거였다. 날 것의 느낌, 가식 없이 삶 자체를 보여주는 게 내가 생각하는 하드코어힙합의 키워드다. 그래서 내가 평소 쓰는 말과 느낀 생각들을 가사에 담는다. 아쉽게도 사람들은 하드코어 힙합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시끄럽겠구나’ 하며 거부감을 느낀다.

-21세 때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기 시작한 이후 힙합을 접했다. 하드코어힙합이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원동력이었나.

지금은 공황장애와 우울증에서 회복하고 있는 상태인데 만성이 돼 완벽하게 회복하진 못한다. 그냥 잘 버티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아픔이 내 전부다. 내 음악과 가사의 원천이다.

내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는 하드코어힙합을 들으며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다는 걸 깨닫고, 거기서 위로받았기 때문이다. 아픔과 싸우며 이겨내려 울부짖는 모습을 보며 힘을 얻었다. 나는 “고생했어” 라고 직접적으로 위로해주는 음악에서는 위로를 못 받는다. 거울을 볼 때처럼 비슷한 사람들의 반응에서 치유 받는다. 그게 내겐 하드코어힙합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내게 메시지를 보낼 때가 있다. 한번도 만나지 못했고, 앞으로 만날지 모를 사람들이 메시지를 보내 자신이 언제 아팠고, 가족이 어땠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는 경우들이 있다. 그들이 내 음악을 듣고, 힘을 얻었고,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음악에서 치유를 받았듯 내 음악에 그런 감정과 느낌을 고스란히 담으려 노력했는데, 사람들에게 잘 전달될 때 고마웠고, 굉장한 치유를 받았다. 내게 하드코어힙합은 ‘치유’다.

-‘하드코어 힙합’을 잘 모르는 이들이 이 장르 음악을 즐기는 방법은.

운동할 때 들으면 평소보다 몇배 힘이 날 것이다. 이어폰을 끼고 돌아다닐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뒤에 우리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게 하드코어 힙합이 가진 매력 중 하나다.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 내 옆에 있는 거 같고, 뒤에 있는 거 같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 필굿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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