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원
뮤지컬 배우 최정원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효원기자]뮤지컬 배우 최정원

(사진)

은 30년간 한결같이 무대를 지킨 ‘천상 배우’다. 최근에는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시카고’에서 벨마 역으로 객석을 쥐락펴락한다.

뮤지컬을 잘 모르는 사람도 최정원의 이름은 알 정도로 뮤지컬계에서는 독보적인 여배우로 손꼽힌다. 1989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해 지금까지 한 해도 쉼 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는 열정의 디바다. “죽도록 무대를 사랑한다”는 최정원과 예술과 인생 이야기를 나눴다.

-뮤지컬 ‘시카고’에서 최정원의 벨마는 흥행보증수표다.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다.

요즘 SNS에서 공연을 보신 분들이 다들 칭찬해주신다. 공연을 본 분들이 실시간으로 좋은 평을 해줘서 그 글을 읽는 것이 행복하다. 나이 오십에 무대에 서는 것도 좋은데 “다른 작품보다 최정원씨가 돋보이는 무대다”, “최정원씨를 위해 만든 작품 같다” 이런 평을 받으니 행복하다. 당근과 채찍 중에 아무래도 당근을 좋아하다 보니 요즘 행복하고 건강해졌다.

-‘시카고’는 벨마와 록시의 호흡을 중요하다. 록시 역의 아이비, 김지우와의 호흡은 어떤가.

아이비 배우와는 꾸준히 ‘시카고’ 무대에 섰다. 김지우 배우는 이번에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무척 잘한다. 월드컵을 보면서 느낀 게 있다. 공연도 축구와 같다. 누군가 골을 넣으려면 어시스트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시카고’에서 저는 골을 넣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 골을 잘 넣게 어시스트하는 최고 조력자다. 어렸을 때는 제가 골을 넣을 때 행복했다면 지금은 패스를 잘해줘서 상대 배우가 골을 넣을 때 내가 골을 넣는 것보다 행복하다.

-‘시카고’를 18년 동안 공연했다. 어떤 기분인가.

많은 분들이 18년 동안 한 작품을 하면 지겹지 않냐고 묻는데 그렇지 않다. 작품을 보는 눈은 제가 경험한 만큼 달라진다. 회를 거듭할수록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제는 대본을 갖고 놀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훨씬 재미있다. 늘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무대에 선다.

-박칼린 음악감독이 벨마 역을 맡아 같은 배역으로 경쟁하고 있다.

박칼린 감독님은 그동안 음악감독으로 ‘시카고’를 접하셨는데 이번에는 배우로 합류했다. 춤이 이렇게까지 난이도가 높았는지 몰랐다고 이야기하신다. 저는 박 감독님의 도전정신에 박수를 쳐 드리고 싶다. 열정으로 도전한다는 게 아름답다. 춤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분명히 힘드실텐데 즐기면서 열심히 하고 계신다.

-최정원은 자기관리의 대명사다. 비결은 뭘까.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되고 직업이 되는 사람은 적다. 제 경우는 잘하는 일이 직업이 됐고 뮤지컬배우라는 수식어를 달고 30년을 살아왔다. 아직도 무대에서 서면 떨리고 무대라는 글자만 보면 벅차다. 확실히 뮤지컬을 사랑한다. 그러나 연습은 무척 힘들다. 똑같은 동작을 백번 이백번 반복해야 한다.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은 때도 있지만 관객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 준비를 완벽하게 하니까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최정원
뮤지컬 배우 최정원.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지난해에는 부상을 입어 팬들을 놀라게 했다.

이번 ‘시카고’ 출연을 결정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게 춤이었다. 지난해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탭댄스를 추다가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 그때 수술을 하라고 할 정도로 심각했다. 하루 3~4시간씩 재활 치료를 받았다. 재활 훈련을 열심히 한 결과 지금은 다친 다리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

-30년 동안 쉼 없이 무대에 올랐다. 쉬고 싶은 마음은 없을까?

이제 반 정도 한 것 같다. 그런데도 앞으로 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새롭게 개발도 해야 한다. 앞으로 30년은 더 무대에 서야 한다. 일반인들이 뮤지컬을 한 번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에 비하면 가격면에서 비싸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이 정도면 되겠지”하고 멈춰서는 안 된다.

-배우로서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나이가 들면서 작품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몰랐던 것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그 경험이 무대에서 연기로 표현된다. 다리를 다쳐보기 전에는 다치는 연기를 할 때 “아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실제 다쳐보니까 비명이 나오는 게 아니라 눈물이 나왔다. 내가 경험해본 것과 상상했던 것은 무척 달랐다. 연기를 위해 일부러 경험할 순 없지만 내가 경험한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춤추고 노래하는 뮤지컬 배우지만 연기로 관객을 감동시키는 배우가 되고 싶다.

-최근 잇따른 선행으로 시선을 모았다.

배우의 삶이 배역에 묻어난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배우는 연기와 노래도 중요하지만 속마음도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 요즘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유행인데 저희 엄마가 몇주전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셨다. 멀게만 느꼈던 파킨슨병인데 이제는 내 삶에 들어왔다. 사실 기부는 사랑의 시작이라 오래전부터 조금씩 했었다. 외부에는 알리지 않고 기부했었는데 엄마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신 후에는 파킨슨병에 대해 알리자는 의미로 드러내놓고 기부를 했다. 기부를 하고 나니 너무 행복했다. 제가 기부를 한 뒤 제 팬들도 작게나마 기부를 했다. 앞으로는 기부 사실을 숨기지 말고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캡처

-인간 최정원은 어떤 사람인가.

부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고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사람도 있는데, 저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돈보다 명예보다 중요한 건 사랑 같다. 제가 가장 행복할 때는 사랑받을 때고 가장 좋은 것은 사랑을 베풀 때다.

-배우 최정원에 대해 자부심이 들 때는 언제인가.

저는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유명해진 게 아니라 뮤지컬에서 한길을 걸어서 유명해진 배우다. 뮤지컬을 잘 모르던 시대에서 지금까지 개척해가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데서 자부심을 느낀다. 그리고 너무 요즘 예쁘고 늘씬하고 연기 잘하고 노래 잘하는 배우들 많지만 죽을 만큼 무대를 사랑하는 배우는 저를 능가하는 배우가 있을까 싶다. 그것이 가장 큰 자부심이다.

-매일 무대에 설 때 어떤 다짐을 하나.

제 공연을 보고 누군가 행복해하는 관객을 생각하며 무대에 선다. 관객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 힘을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게 행복하다. 늘 “내가 무대 위의 작은 철학자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eggrol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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