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배우 김해숙이 영화 ‘허스토리’(민규동 감독)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털어놨다.

연기 인생 44년으로, 숱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국민엄마’라는 타이틀까지 가진 그가 새삼 겸허해진 이유는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 재판부에 맞선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화를 옮겨놓은 영화. 여기서 김해숙은 과거를 숨긴채 아들을 힘들게 키우며 살아온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 역을 맡았다.

최근 인터뷰에서 “영화를 다 찍은 뒤 건강이 안좋아 병원을 다녀야했다”고 할 정도로 배역이 힘들었다고 토로한 김해숙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다 성격이 다르고 겪은 과거가 다 다른데, 그중에서 나는 배정길이 됐다. 연기하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차라리 (속내를) 이야기하고 울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대사에도 나오지만 ‘눈물이 다 말라버린줄 알았는데, 눈물이 나네요’ 한다. 그만큼 어떤 슬픔이나 아픔에 대해 초탈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무표정이지만 그 안에 모든게 담겨 있어야 해서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설명했다.

자신을 숨기느라 표현이 적은 만큼 대사도 별로 없었다. 김해숙은 “대사가 없다는 건 그분과 더 가까워져야한다는 거라 생각했다. 말이 없는데에서 그분이 나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더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보면 제가 제 덫을 놓은거다. 배우로서의 욕심이었는데, 인간 김해숙이 들어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인생을 또 배웠다”고 말했다. “배우마다 연기관도 다 다른데, 나는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다가가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품마다 캐릭터마다 그 인물에 다가가려고 한다. 그래서 하얀 백지 같은 배우가 되고 싶고, 매번 새로은 그림을 그리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자신의 연기관을 먼저 이야기한 김해숙은 “그렇게 살아왔다고도 생각했다.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그런데 이번에 내가 그동안 백지가 됐던게 진짜 백지가 아니었나 싶을정도로 하면 할수록 어렵고 자꾸 제 자신이 되려고 했다. 그래서 내 자신을 내려놓는게 이렇게 힘들구나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인생을 또 배웠다”는 것이었다.

이어 “나이가 이만큼 돼서 어느 정도 인생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정도면 아는거 아니야’ 했는데, 인생은 정말 답이 없는 것 같다. 나이와 상관없이 느끼고 배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내가 남을 배려하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하면서 과연 얼마나 그분들을 진심으로 생각해봤나, 주변을 돌아보고 살았나 깨달았다. 나는 너무 내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조금더 세상을 넓게 보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물질이든 마음이든 나누면서 산다는게 간단하면서도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또한 “이 작품으로 배우로서, 또 자연인으로서 다시 겸손을 생각하게 됐다”고도 했다. 김해숙은 “나도 살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왜 없었겠나. 나도 큰일도 겪었지만, 이 영화를 하면서 그건 일도 아니었구나 했다. 이 영화로 인해서 사람으로서 강해진거 같다. 사람이 나이들어도 배울게 있고 느낄게 있구나 했다. 영화 하면서 신기하고,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됐다”고 말했다.

그런 김해숙은 “여행을 다녀온 후 건강은 회복했고, 지금은 오히려 더 좋아진거 같다”면서 “다만 제가 좋아하는 현장에 계속 나갈 수 있기 위해서 건강을 더 챙겨야겠다. 예전에는 건강에 대해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이 영화가 건강을 지켜야겠다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며 또 다른 의미를 찾기도 했다.

연기 내공의 소유자 김해숙을 겸허하게 한 영화 ‘허스토리’가 과연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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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