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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 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 스페인 축구협회는 지난 13일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을 하루 앞두고 훌렌 로페테기 대표팀 감독을 해임하고 페르난도 이에로(50)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로페테기가 지네딘 지단의 사임으로 공석중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영전된 게 공표되면서 스페인 축구협회가 발끈해 경질 조치를 취한 것이다. 월드컵 정상 탈환이라는 목표를 앞둔 상황에서 사령탑 교체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러나 선수단의 반응은 의외였다. 바르셀로나 소속 헤라르드 피케(31)는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1989년 미시건 대학 농구팀도 감독을 해고한 적이 있다”며 오히려 협회를 옹호했다. 우승에 대한 자신감도 보였다. 피케가 미국 대학농구(NCAA)에도 조예가 깊은 줄은 몰랐다.

미시건은 1989년 ‘3월의 광란’으로 통하는 NCAA 토너먼트를 앞두고 빌 프리더 감독을 해고했다. 9년 동안 미시건 감독을 역임한 프리더는 이 해 정규시즌 24승7패로 팀을 5년 연속 토너먼트에 진출시켰다. 그런데 토너먼트를 앞두고 시즌을 마치면 애리조나 주립대와 계약할 것이다는 보도가 터졌다. 미시건대 풋볼 감독과 체육부장을 겸임한 보 셈베클러(작고)는 곧바로 프리더를 해고했다. 미시건대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프리더는 미시건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한 졸업생 출신이다. 미시건은 프리더의 코치 스티브 피셔를 대행으로 임명하고 토너먼트에 임했고 강호 제이비어, 사우스 앨라배마,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일리노이, 시튼홀 등을 연파하고 개교 이래 처음 NCAA 토너먼트 정상을 차지했다.

피케가 1989년의 미시건대를 사례로 든 이유는 ‘감독이 바뀌었지만 스페인의 우승 전선에는 아무 이상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체육부장 셈베클러의 도박이 성공으로 끝난 지 29년 만에 피케에 의해 미시건의 전설이 재림한 셈이다. 피케의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포르투갈과 3-3으로 비긴 B조 첫 판은 월드컵 사상 영원히 기억될 명승부였다. 감독 교체의 후유증이 나타난 경기였다고 할 수 없다. 스페인 특유의 패스 티카타카는 거의 환상이었다. 현역 최고 플레이어로 꼽히는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월드컵 무대에서 스타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무승부로 끝났지만 경기 내용은 스페인이 압도했다.

이 경기에서 새로 임명된 이에로 감독의 전술과 지도력이 얼마나 녹아 들었을까? 매우 미미했다.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한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감독 임팩트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경기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감독의 임팩트는 대학 스포츠에서나 두드러진다. 농구 명문으로 통하는 듀크 대학은 마이크 슈셉스키 감독(71)의 존재로 5차례 정상에 올랐다. 듀크 출신은 라이벌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에 비해 NBA 무대에서 활약이 떨어지는 편이다. 듀크는 슈셉스키 감독의 전술 전략이 조직력으로 이어지고 늘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프로 스포츠 감독은 임팩트가 적다. 그러나 미디어에 항상 노출되기 때문에 감독의 영향력이 커보일 뿐이다.

한국 축구대표팀도 월드컵 무대에서 감독 교체의 불상사를 경험한 적이 있다. 프랑스 월드컵 당시 차범근 감독은 멕시코에 1-3, 네덜란드에 0-5로 완패한 뒤 경질됐다. 그러나 감독 없이 치른 벨기에전에서 한국은 정신력으로 버텨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국이 사상 처음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한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에는 “우리 팀 감독은 박지성이었다”는 후일담이 공공연히 떠돌기도 했다. 결국 경기는 선수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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