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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효원기자] 최근 남성 혐오 사이트 ‘워마드’에 홍대 미대생으로 추정되는 네티즌이 홍대 미대 누드크로키 수업 중 남성 누드모델의 사진을 몰래 촬영해 노출시킨 사건이 벌어져 파문을 일으켰다. 이 가해자는 “남성누드모델...조신하지가 못하네요”라는 제목과 함께 “어디 쉬는 시간에 저런 식으로 까면서 덜렁덜렁거리냐. 어휴 누워있는 꼴을 보니 말세”라고 썼고 해당 게시글에는 모델을 조롱하는 댓글이 달렸다.

이 사진은 워마드 사이트뿐 아니라 다른 사이트로 번져 피해가 커졌다. 얼굴은 물론 성기까지 고스란히 노출된 남성 누드모델 A씨가 스포츠서울과 단독으로 이메일 인터뷰에 응해 현재 심경을 고백했다. 충격으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울었다는 A씨는 “가족들을 부양하는 소중한 직업인 누드모델이 비하당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심경을 밝혔다..

-누드모델 경력은 얼마나 됐나.

올해로 3년 차에 접어들었다.

-누드모델을 하는 중 몰카 촬영을 당했고 나체 사진이 유출돼 충격을 받으셨을 듯하다. 현재 심경은.

누드모델이 되기 위해 여러번 도전해 완전히 자리 잡기까지 수년이 걸려서 얻은 직장이다. 다른 모델들에 비해 훨씬 길고 어려운 과정을 견디며 이 직업을 갖게 되었기에 내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생업인데, 잃게 될까봐 생계가 막막하고 참담한 심정이다.

-당시 수업 분위기는 어땠나. 몰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나.

학생분들의 수업 분위기는 모범적이었다. 모두 성실하게 잘 집중했다. 모델은 학생분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앞에 설 수 있고, 그 분들이 몰카를 찍었을 리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누드수업에서 모델을 향해 카메라를 든다는 것은 금기 중에서도 금기라, 몰카는 상상도 하기 어렵다.

-처음 소식은 어떻게 듣게 됐나.

5월2일 밤에 C모델회사 사장님께서 전화 주셔서 처음 알았다.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무척 걱정하시며, 네티즌들의 인신공격과 비아냥에 상처받지 말라고 여러 차례 당부하셨다. 지금도 인터넷 접속을 하지 말라고 자주 전화를 하신다.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외부와의 소통은 그동안 사장님만을 통해 해왔다. 방송에 나오는 상황, 네이버 실시간검색에 올라온 상황 등도 사장님에게 들었다.

-실생활에서 실제 피해가 나타날 것 같은데 어떤 피해를 보고 있나.

며칠간 밥 한 톨도 못 넘기고 지냈다. 잠도 못 자고 대인공포증에 외출도 못 하고 있다. “형, 이거 형 맞죠?”, “오빠, 다 알고 연락했어요 ㅠㅠ 힘내세요” 같은 연락을 받을 때마다 정말이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영원히 도망치고 싶다. 답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안절부절하다 하루가 다 가곤 한다. 읽고 답장 못한 연락과 아예 읽지 못한 연락이 수북하다.

-가족들의 충격도 클 것 같다.

누드모델들은 가족들 모르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로서는 현재, 가족이나 친척이 알게 될까 봐 그 점이 가장 두렵고 불안하다. 이모, 고모, 사촌들, 조카들이 사진을 볼까봐, 뇌수가 다 녹아내리는 듯 하다. 학교 다니는 사촌 동생들이 이걸 보고 이모에게 말을 한 건 아닐지, 알면서 모르는 척해주는 건지, 아직까지는 정말 모르는 건지, 결국에는 부모님도 알게 되시는 건 아닌지, 자녀가 누드모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충격인데, 하필 그걸 이런 방식으로 알게 되실 걸 생각하면, 부모님만 생각하면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고, 정말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

-인권의 피해가 심각한데 누드모델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듯.

누드모델이라는 직업이 누군가에게는 가십거리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돈으로 자녀를 키우고, 가족을 부양하는 소중한 생업이다. 이번 사건으로 많은 모델들이 공포에 질려 있고, 휴직과 이직을 하는 모델들도 많다고 한다. 모델 지망생 중 꿈을 접은 청년들도 많을 것이다. 타인의 생업에 대한 성적 조롱과 비하를 멈춰주시기를 당부드리고 싶다.

-가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C모델회사는 저에게 모델로서의 인생을 열어주었고, 제게 생업을 갖게 해주었다. 이번 사건으로 C모델회사는 매출이 대폭 줄어들었다고 하며, 지금 수준을 회복하는데 향후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한다. C모델회사 사장님은 가해자에게 소송을 하겠다고 여러 번 다짐하셨다. 손해배상 청구도 여러 번 언급하셨다. 이번 사건으로 미대에서 누드 수업을 없애 소득이 줄어든 모델들도 많다. 많은 모델들이 크거나 작게 어느 정도씩은 영향을 받고 있다. 가해자는 이렇게 한 생활인의 생업과 기본권을 파괴하고, 저희 업계에 종사 중인 수많은 모델분들께 손실을 끼치고 있다. 미술대 학생들의 학습권도 침해되었다. 단지 타인을 성적으로 조롱하는 쾌감을 얻자고,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다니 정말 원망스럽다.

-앞으로 대응 계획은.

법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경찰서에서 저를 ‘성폭력 피해자’라고 하던데, 남자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가 드물다 보니, 관련 단체도 없는 것 같고, 막막한 상황이다.

-현재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하루빨리 사진들이 다 지워지기만 고대하고 있다. 사건을 알고 난 직후 ‘방통위 권익보호국’과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사진을 삭제해달라고 신고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회신이 없다. 경찰서에도 사진 삭제를 요청드렸으나 경찰은 사진을 유포하는 사람들을 잡는 기관이고, 사진 삭제는 다른 정부기관에서 맡고 있는데, 그 기관 역시 인력이 부족해 경찰에서 삭제 요청을 해도 별 무소식이라고 해서 깊은 절망감이 든다. 지금 인터넷 공간에는 몰카 촬영자를 빨리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것이 급한 것이 아니고, 사진들이 빨리 삭제되고, 더 이상 유포되지 않는 것이 급하다. 지금도 비하글이 계속 올라오는데, 그것에 대한 모니터링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고, 범죄가 인터넷 공간에서는 계속 현재진행형이라, 그 점이 가슴 아프다.

eggrol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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