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 프로필 용량 큰 파일

[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허규는 대중음악보단 뮤지컬 팬들에게 더 익숙한 이름이다. ‘마마 돈 크라이’, ‘주홍글씨’, ‘광화문 연가’, ‘살리에르’와 ‘마리아 마리아’ 등 뮤지컬에 주연급으로 나서 압도적인 고음과 캐릭터 강한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겨왔다.

하지만 그는 뮤지컬 배우 이전에 데뷔 22년차 가수다. 최근 솔로 가수로 14년만에 싱글 ‘뷰티풀 데이’를 발표한 허규는 자신을 ‘무명가수’로 정의내렸다. 뮤지컬 배우 자격으로 KBS ‘불후의 명곡’에 참여해 우승을 차지하는 등 가창력은 자타공인 국내 정상급으로 인정받지만 유독 ‘운’이 따르지 않는 지난 시절이었다.

최근 허규를 만나 지난 21년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되는 사람은 되는 이유가 있고, 안되는 사람은 안되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게 개인의 역량이나 인성 탓일 수 있고, 외부 요인일 수도 있고, 운이 없었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런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이유 일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허규는 97년 그룹 피노키오의 3집 보컬로 가요계에 데뷔했지만 곧 IMF로 소속사가 어려움에 처하고, 곧 제작자와 갈등으로 2년을 소송으로 허비하는 경험을 한다.

소속사와 분쟁을 끝내고 2004년 새 매니저를 만나 솔로 앨범 ‘돈 워리(Don‘t Worry)’를 발매했지만 음악성을 중시하던 그는 ‘아티스트’보다는 ‘연예인’이 되기를 바라는 매니저와 갈등을 겪었다. 각종 예능이나 시트콤에 출연해야 하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5년 계약 기간의 대부분은 사실상 방치를 당했고, 홀로 밴드를 꾸려 스스로의 힘으로 홍대 클럽 등을 떠돌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야 했다.

공익근무요원을 마치고 30세이던 2008년 기획사 없이 3000만원을 대출 받아 밴드 ‘세븐그램스’를 꾸렸다. JYP의 신인 아이돌 2PM과 같은날 가요 순위프로그램 데뷔를 했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깨닫는데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허규 뷰티풀데이 커버 3000

2012년 일기예보 출신의 탁월한 멜로디메이커인 강현민 등과 함께 밴드 ‘브릭’을 꾸렸고, 새 소속사에서 새출발하는가 싶었지만 그 소속사가 내부 문제로 파산 신청을 해버리는 바람에 팀은 공중에 붕 떠버리는 신세가 됐다. 소속사 대표는 미안하다며 이들을 풀어줬지만 팀의 성장동력은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허규는 중간 중간 국내 최정상급 록그룹에서 연이어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그의 고사, 혹은 여러 이유로 팀 가입이 실현되진 않았다.

그는 오랜 무명 가수 생활을 이어가는 동시에 2009년부터 뮤지컬에 출연하며 나름대로 주목받아왔다. 지금 그는 가수보다 뮤지컬 배우로 더 유명하다. 왜 다시 가수를 하려고 하는 걸까.

“솔로 가수로 다시 활동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해왔지만 생각에만 그쳤습니다. 그러다 친한 업계 분께 ‘너는 가수가 왜 뮤지컬 등 다른 영역에서만 활동하냐. 너는 가수다’라고 말해줘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뮤지컬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던 찰나 도와주는 분들도 나타났고요. 전 20대의 10년간은 가수를 열심히 했고, 30대의 10년은 뮤지컬에 더 집중했는데요. 40대가 된 직후 다시 음악을 하라는 운명인가 싶은 생각이 드네요.”

21년간 ‘무명가수’로 살아온 게 속상하진 않을까. “예전에는 세상 탓을 많이 했어요. 업계에서 나쁜 사람도 많이 만났고요. 다행인건 상처가 곪기만 하는게 아니라 아물기도 하더라고요. 아쉬움, 안타까움은 있지만 아직 때가 아닌가보다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빠르게 올라가 빠르게 잊혀지는 것보단 차라리 서서히 올라가는게 좋지 않을까요?”

올해 안에 솔로 가수로 4곡 정도를 더 발표할 계획이라는 허규는 “언젠가 사람들에게 ‘아니, 20년 넘게 우리가 이런 가수를 몰라봤어? 미안하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오랫동안 무명이었지만 언젠가 인정을 받아, 그 과정이 귀감이 될 수 있는 가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예술가로서 가장 기분 좋은 말은 ‘독보적’이란 표현인데요. 믿고 듣는 가수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라고 다짐했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 R&D웍스·앤트웍스 커뮤니케이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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