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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일본 오사카부 스이타시 시립 스이타 경기장에서 열린 J리그 9라운드 오사카더비 감바 오사카와 세레소 오사카의 경기에서 양 팀 서포터가 경기장을 가득메운 채 카드섹션 응원전을 벌이고 있다. 스이타 | 김용일기자

[스이타=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관중도, 스토리도, 투혼도 모두 있었다. 일본 J리그가 자랑하는 ‘오사카 더비(감바 오사카-세레소 오사카)’가 활화산처럼 타오르며 축구의 참 재미를 느끼게 했다. 최근 K리그 최고 흥행카드인 ‘슈퍼매치(FC서울-수원삼성)’가 최저 관중, 저질 축구 논란으로 이름값을 하지 못한 터라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늘 뜨거운 열기를 자랑하는 ‘오사카 더비’다. 21일 감바 오사카의 홈구장인 스이타 시립 경기장에서 열린 이날 3만5242명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이 경기장은 3만9694명을 수용할 수 있으나 검푸른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감바 팬과 분홍 유니폼의 세레소 팬의 충돌을 막기 위해 경기장 한 구역을 비워놨다. 지난해 8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두 팀 맞대결 역시 만원 관중을 기록한 적이 있다. 킥오프 2시간 전인 오후 5시부터 인파가 몰렸다.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쥬고쿠자동차도로에도 수많은 차량이 줄을 섰고, 지하철역인 반바쿠기넨코엔역에서도 구름 관중이 줄을 지어 경기장을 향했다. 장외에선 감바 치어리더 공연을 비롯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더비는 역사만큼이나 스토리가 풍부해야 한다. 경기 전 긴장감을 조성할 소재도 이목을 끌어야 한다. 양 팀은 경기 전날까지 장외 전쟁으로 치열했다. 감바는 통산 전적에서 23승8무13패로 세레소에 앞섰다. J리그에 한해서도 20승5무9패의 압도적인 전적. 다만 지난해 윤정환 감독이 세레소에 부임한 뒤엔 흐름이 바뀌었다. 컵대회를 포함해 4차례 만나 1승2무1패로 치열했다. 특히 르뱅컵 준결승에서 세레소가 감바 원정에서 2-1로 승리, 대회 우승까지 성공하면서 J리그 출범 이후 첫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후 일왕배 우승까지 더블 달성의 디딤돌이 됐다. 다만 ‘윤정환호’가 넘어서야 할 건 리그 감바 원정 징크스 탈출. 지난 시즌에도 1-3으로 패한 적이 있다. 세레소는 지난 2003년 7월 이후 무려 15년째 리그에서 감바 원정 승리가 없다. 또 감바 수장인 레비 쿨비 감독은 과거 세레소 지휘봉을 잡은 적이 있다. 기요타케 히로시, 가키타니 요이치로, 스기모토 겐유, 김진현 등 현재 주력 선수와 오랜 인연이 있다.

더구나 감바는 초반 8경기 1승(1무6패)에 그치면서 18개 팀 중 최하위로 밀려났다. 쿨비 감독 경질설까지 나온 상황,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다. 반면 세레소는 주중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리그에만 전념하게 됐다. 초반 ACL병행과 함께 부상자 속출로 리그 개막 후 4경기 무승(3무1패) 부진에 시달린 세레소는 최근 4연승을 달리면서 3위까지 올라섰다. ACL을 잊고 리그에 승부를 거는 첫 과정에서 치르는 오사카 더비는 양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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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 11분 동료와 충돌한 뒤 교체된 감바 수문장 히가시구치 마사키. 캡처 | 감바오사카 홈페이지

양 팀 모두 패배는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초반부터 홈과 원정 팀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하게 공격을 주고받았다. 주중 ACL에서 주전 다수를 아낀 세레소가 경기를 주도했다. 감바는 최전방 원톱 황의조를 활용한 역습에 집중했다. 전반 11분께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감바 수문장 히가시구치 마사키와 수비수 미우라 겐타가 공중볼을 처리하다가 충돌, 히가시구치가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이때 세레소가 경기를 그대로 진행했는데, 쓰러졌던 히가시구치가 벌떡 일어나 골문으로 달려갔다. 세레소 가기타니의 결정적인 헤딩 슛을 몸을 던져 막아냈다. 거기까지였다. 히가시구치는 링에 오른 복서처럼 눈이 퉁퉁 부었다. J리그 한 경기도 뛰지 않은 백업 골키퍼 하야시 미즈키가 투입됐다. 감바에 어둠이 드리우는 듯했다. 하지만 감바는 오히려 정신적으로 강해졌다. 세레소 공세를 막아내면서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승부를 가른 건 ‘한국 선수’들이었다. 전반 38분 황의조가 페널티에어리어 왼쪽에서 예리한 돌파를 시도하다가 세레소 수비수 요니치에게 걸려 넘어졌다.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 키커는 황의조였고, 세레소 골키퍼는 김진현이었다. 국가대표팀서부터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상대. 황의조는 골문 가운데로 낮게 깔아찼다. 김진현이 오른쪽으로 다이빙하면서 다리를 쭉 뻗었다. 공이 걸렸지만 데굴데굴 골문으로 들어갔다. 리그 6호골. 윤 감독은 후반 양동현까지 투입, 오사카 더비에 감독과 선수까지 5명의 한국인(윤정환 양동현 김진현 황의조 오재석)이 뛰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최하위 탈출에 간절했던 감바의 집념이 빛났다. 세레소 막판 공세를 뿌리치고 리그 2승째를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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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소전 페널티킥 선제 결승골 주인공 황의조. 캡처 | 감바 오사카 홈페이지

지난해 황의조는 J리그 데뷔골을 오사카 더비에서 해냈다. 이날 또 득점포를 해내며 세레소 킬러로 부각됐다. 경기 후 “(PK 때) 진현이 형이 사이드로 뛸 것으로 예상했고 (신장도 크기에) 부담이 돼 가운데를 노려 찼다”고 했다. 김진현은 “의조가 가운데 찰 줄 알고 기다리려고 했는 데 그럴 수 없게 되더라. 의조 한 대 때리러 가야겠다”고 농담하며 웃었다. 둘 다 한국 선수들이 오사카 더비 주인공으로 거듭난 것에 자랑스러워했다. 황의조는 “첫 더비에서는 정신없이 뛰었는데 이젠 많은 관중의 힘을 느끼면서 플레이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과 같은 무대에서 뛰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날 일본 언론은 결승골 황의조만 주목한 게 아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부상에도 세레소의 결정적인 슛을 끝까지 쫓아 막아낸 히가시구치 골키퍼는 물론, 부담스러운 더비 경기에서 시즌 첫 경기를 소화해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하야시도 보이지 않는 영웅으로 소개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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