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감독
LG 류중일 감독이 19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8 KBO리그 KIA와 정규시즌 원정경기에 앞서 전날 벌어진 사인 훔치기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광주 |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광주=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사인 훔치기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19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는 어색한 미소와 사과로 채워졌다. 해묵은 논란이기도 한 사인 훔치기는 빼앗은 쪽도 빼앗긴 쪽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애매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KIA는 무대응으로, LG는 신속한 사과로 사태를 진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 LG 류중일 감독 “전례없는 일, 깊이 반성”

지난 18일 경기 도중 1루 더그아웃에서 라커룸으로 가는 통로에 KIA 구종별 사인 체계가 담긴 인쇄물 하나가 붙었다. 코스와 구종을 어떤 형식으로 표시하는지 알기 쉽게 적어놓아 곧바로 ‘사인 훔치기’ 논란이 일었다. LG 류중일 감독은 19일 “선수들끼리 경기를 통해 체득한 정보를 구두로 전하는 경우는 있지만 인쇄물을 부착한 것은 처음 겪는 일이다. 전력분석팀에서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과한 행동을 한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 주자들이 해당 내용을 경기에 적용하기도 어렵고 누상에서 타자에게 사인을 전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수들이 비겁한 플레이를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발생했다. 팬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고개를 숙였다. 언제 부착했는지, 누가 주도했는지 여부는 “따로 묻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저 “어제(18일) 경기 후 보고를 받고 정말 깜짝 놀랐다.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떼라고 얘기했을 것이다. 주자가 타자에게 사인을 알려주는 행위는 절대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구단도 신문범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윤대영
이날 1군 데뷔전을 치른 윤대영은 KIA 양현종을 상대로 첫 안타와 타점을 신고했다. 사진제공 | LG 트윈스

◇ 허탈한 선수들 데이터 뽑아 보여주기도

LG 선수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A는 “그런게 붙어있는줄도 몰랐다. 사인을 안다고 다 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집중력만 흐트러진다”고 말했다. B는 아예 포스트잇에 볼펜으로 산출한 데이터를 보여줬다. 주자가 2루에 있는 모든 상황(1·2루, 2루, 2·3루, 만루)에서 타율 0.245(9위), 7홈런(공동 2위) 55타점(7위) 출루율 0.324(9위) 등의 지표였다. 그는 “주자가 없을 때 팀 타율이 0.292인데 주자만 있으면 0.269로 떨어진다. 2루에 주자가 있을 때에는 더 낮은 타율인데 사인을 알고 친다는게 말이 되느냐”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C는 “KIA 헥터의 볼끝이 지난해보다 무뎌졌더라. 그래서 안타를 많이 친 것일 뿐”이라고 입을 삐죽였다. 베테랑 박용택은 “다 우리가 못쳐서 이런 논란이 생긴거다. 오늘부터는 더 집중해서 상대 투수를 공략해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LG 선수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사인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아도 활용할 능력이 부족하다”였다. 오해살만 한 행동을 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가뜩이나 아도니스 가르시아의 부상 이탈로 타선이 약해진 상황에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여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현종용환
이날 선발로 나선 KIA 양현종(왼쪽)이 1회를 마친 뒤 포수 백용환과 얘기를 나누며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 | KIA 타이거즈

◇ 더 적극성 띈 타선, 오히려 KIA가 위축

전날 팀에 유일한 적시타(2타점)를 선물한 LG 유강남은 ‘절대 에이스’ 양현종을 상대로 선제 솔로 홈런에 앞서가는 2타점 적시타로 실력을 과시했다. 2회초 첫 타석에서는 145㎞짜리 포심 패스트볼을 제 타이밍에 받아쳐 좌월 솔로 홈런(시즌 5호)을 쏘아 올렸고 1-1 동점이던 4회초 무사 만루에서는 체인지업에 빨리 스윙했지만 궤도를 잘 유지한 덕분에 배트 끝에 걸린 중전 2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이날 1군 데뷔전을 치른 윤대영도 데뷔 타석에서 삼진을 당했지만 4회초 1사 1 3루에서 좌전 적시타로 프로 첫 안타와 타점을 동시에 신고했다. LG 타선은 초구부터 적극성을 띠며 사인 훔치기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반면 사인을 빼앗긴 KIA는 이닝마다 투·포수가 의견을 교환하는 등 분주해 보였다. 주자가 2루에 있을 때에는 양현종이 볼배합을 주도하는 등 만에 하나 일어날 수도 있는 사인 노출을 차단하는데 신경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빼앗은 의혹을 받고 있는 팀보다 빼앗긴 팀이 더 위축된 묘한 분위기였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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