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LG 류중일 감독,
LG 트윈스 류중일 감독이 15일 서울 잠실 구장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모자를 고쳐쓰고있다. 2018.04.15. 잠실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커닝페이퍼를 버젓이 붙여놓고 시험을 봤는데 성적도 나쁘다.

LG가 지난 18일 광주 KIA전에서 KIA 배터리의 사인 교환 방식을 1루 더그아웃 안쪽 복도에 게시한 채 경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일 지역 통신사 사진기자가 이를 포착해 LG의 커닝 행위가 알려졌다. LG 구단은 이를두고 “전력분석팀에서 정보를 취합해 전달하는데 주자 도루시 도움을 주기 위한 정보 가운데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상대 배터리의 사인을 읽어내 주자의 도루 성공률을 높이는데 이용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실제로 LG 전력분석팀이 작성한 종이에는 ‘KIA 구종별 사인’이라는 제목 아래 우타자 기준 몸쪽, 바깥쪽을 포함해 커브와 슬라이더, 체인지업(포크볼 포함) 사인 내용이 적혀있다.

LG가 언제부터 이러한 커닝페이퍼를 작성하고 게시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도루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이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LG는 18일 현재 팀도루 8개로 9위에 머물고 있다. 6번이나 도루에 실패해 도루 성공률도 57.1% 밖에 되지 않는다. 흔히 도루는 성공률이 75%는 넘어야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부정행위까지 했는데 안 뛰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왔다.

상대 배터리 사인을 훔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타자에게 상대 배터리의 볼배합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대체로 2루 주자가 스킵 동작이나 팔의 위치, 자세 등을 통해 포수의 사인을 읽고 타석에 선 타자에게 신호를 보낸다. 2016시즌 KIA 임창용이 두산 2루 주자인 오재원을 향해 공을 던진 것도 오재원이 포수 사인을 훔친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LG 2루 주자가 상대 포수 사인을 타자에게 보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런데 과정이 어쨌든 결과가 초라하다. LG는 18일까지 올시즌 득점권 타율 0.253으로 7위에 머물렀다. 만일 도루의 경우처럼 득점권에서도 주자가 상대 포수 사인을 타자에게 전달했다면 구종과 코스를 알고도 적시타를 날리지 못했던 것이 된다. 대놓고 커닝페이퍼를 준비했는데도 정답을 맞추지 못한 모양새다. 물론 LG가 사인을 파악했다고 해서 그 사인이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배터리는 사인을 간파 당하는 것에 대비해 수시로 패턴을 바꾸거나 사인 자체에 변화를 준다. 일부러 사인을 노출시킨 뒤 이를 역이용해 상대의 허를 찌를 수도 있다.

그래서 사인훔치기를 보이지 않는 치열한 수싸움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다만 LG의 경우 지극히 기본적인 배터리의 사인패턴도 암기하지 못하고 커닝페이퍼에 의존하려 했다는 점에서 수준 이하였다고 볼 수 있다. 문제된 자료는 특별할 게 없는 일반적인 포수와 투수의 사인이었다. 몇 년 전 모 해설위원이 포수의 사인을 보고 미리 볼배합을 시청자들에게 알려준 적이 있는데 그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LG 선수들은 상대 사인을 제대로 암기하지도 응용하지도 못했다. 그럴 바에는 그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플레이에만 집중하는 편이 낫다. 상대 사인을 다 읽어내고도 대응하지 못한다면 아예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 편이 쓸데 없는 전력 낭비를 줄이는 길이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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