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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구장은 서울을 연고로 하는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가 함께 사용한다.

‘한지붕 두가족’

복도를 따라 3루쪽으로 걸어가면 LG 라커룸이 나온다. 굳게 닫혀있는 철문. 원정팀 선수 출입금지라는 경고가 눈에 띈다. 이날(18일) LG는 광주 원정경기를 떠나 있었고 라커룸은 비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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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라커룸의 반대편, 1루쪽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가면 두산 덕아웃이 나타난다. 이날 잠실에서 한화와의 경기를 앞둔 선수들이 분주히 오가며 훈련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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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무렵, 두산과 경기를 치를 한화 선수들이 잠실구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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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와 방망이 서너개, 야구화와 운동화, 그리고 유니폼과 개인 용품 등. 선수들이 가져온 짐이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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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30분에 시작하는 원정팀 훈련에 맞춰, 투수 이태양이 엉거주춤 자신의 야구가방에서 모자와 글러브를 꺼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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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선수들도 러닝, 타격훈련, 수비훈련에 따라 필요한 용품을 찾고 있다. 선수들은 그 자리에서 땀에 젖은 셔츠를 갈아입고 양말과 신발도 갈아신는다.

그런데 이곳은 라커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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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잠실구장의 3루쪽 복도다. 선수들이 걸어오는 뒤쪽으로 원정선수 출입금지인 LG 라커룸이 보인다. 잠실구장은 LG와 두산의 한지붕 두가족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한지붕 세가족’이다. 터줏대감인 LG와 두산, 그리고 3일간 머물다가는 원정팀이 잠실구장을 사용한다.

엄밀히 말하면 터줏대감도 전세 신세이고 구장의 실소유주는 서울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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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찰각. 카메라가 시장 바닥과 같은 복도를 찍고 있자,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한화의 한 레전드 코치가 혀를 끌끌 차며 독백을 한다. 아니 카메라를 향한 방백이다.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잠실구장이 이게 뭡니까!”

사실 잠실구장이 국내에서 제일 좋은 구장은 아니다. 신축구장이 여러군데 생기며 잠실은 이제 뒷전이다. 그러나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적 구장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상징성과 어울리지 않는 야구장 뒤편의 시설. 레전드 코치의 한탄에는 그 심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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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원정팀 락커룸이 없는 건 아니다. 덕아웃 뒤에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왜 선수들은 불편한 복도에 자신의 가방을 두고 그곳에서 훈련 준비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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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선수들이 도착하기 전에 원정팀 라커를 살폈다. 좁은 공간에 약 서른개 이상의 라커가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10평 남짓한 공간에 빽빽한 라커. 덩치 큰 선수들이 서 있으면 운신하기 힘들것 같다. 게다가 스탠드 때문에 천정이 비스듬하게 내려앉아 있어 더 비좁게 느껴진다.

선수들이 가방을 들고 복도로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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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팀 라커 바로 옆에 원정팀 라커가 하나 더 있다. 이곳은 선수들이 식사를 하고 샤워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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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2개에 의자 예닐곱개가 놓여있다. 30명이 넘는 선수들과 코치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 그나마 훈련일정에 따라 선수들이 나눠 식사를 하며 혼잡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과일 하나, 음료수 한 잔을 즐길 여유는 없다. 다음 선수들을 위해 비워줘야 한다.

선수들에게 불편하지 않은지 질문했다. 그들은 “4시에 도착해 바로 웜업하고 훈련하고 밥 먹고 하면 어느새 경기 시작 시간이다. 쉴 수 있는 시간은 채 20분이 되지 않는다. 라커에서 보낼 시간도 많지 않다”라고 말하며 애써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몇몇 선수들은 번잡한 라커와 복도에서 벗어나 버스로 향했다. 그나마 그곳이 잠깐이라도 마음 편하게 휴식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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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라커룸Ⅱ의 한쪽엔 샤워실이 있다. 그러나 한여름 경기 후에도 선수들은 이곳에서 샤워를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 샤워기가 단 3개 뿐이다. 누군가 나서 “줄을 서시오”라고 외쳐도 30명이 넘는 선수들에겐 무리다.

그래서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유니폼 차림으로 곧장 퇴근해 원정숙소의 사우나를 이용하거나 방에서 샤워를 한다. 이는 잠실구장만 그런건 아니다. 그러나 잠실구장에서의 샤워는 애시당초 꿈도 꾸지 못할 환경이라는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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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선수들의 라커룸이 없어 선수들 장비를 보관하는 나무로 짜여진 장이 눈길을 끈다.  잠실 |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2010.6.22

그나마 현재 잠실구장의 모습은 불과 몇 년 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것이다. 사진속 2010년처럼 당시엔 라커룸이 제대로 없어 복도에 책장이나 신발장처럼 나무로 장비 보관함을 임시방편으로 만들었다.

물론 그 이전에는 더 열악했다. 좁은 방에서 선수들이 부대끼며 밥을 먹어야 했다. 쉴 곳이 없어 복도 계단에 앉아야 했고 그곳에서 배를 채우기도 했다.

“라커룸이 대수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라커룸은 단순히 야구장비를 놓고 옷을 갈아입는 곳이 아니다. 편하게 밥을 먹는 식당이며 아플 때는 치료를 받는 병원이다. 무엇보다 피곤을 덜어내는 쉼터이며 경기전 마음을 가다듬는 장소이기도 하다.

문제는 공간이다. 1982년 개장한 잠실구장은 내부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열악한 원정 라커룸을 개선할 공간적 여지 자체가 부족하다는게 현실적 고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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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원정 감독실이다. 두평 남짓한 공간. 좁기는 마찬가지다. 책상은 없고 의자 두개와 탁자 하나가 가구의 전부다. 한쪽 벽면에 라커가 있고 반대쪽엔 TV와 미니 냉장고가 놓여있다. 선수들만 고생하는게 아니다. 감독도 미니 원룸같은 독방에서 라인업과 그날 경기의 전략을 짜내고 있다.

이날 만나본 여러 선수들은 “(라커룸이) 넓으면 좋겠지만...”이라고 하면서도 현 상황에 대해 큰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유는 몸과 마음이 편해서가 아니다. 선배들로부터 시작해, 이미 수 십년째 이런 낙후된 상황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잠실 |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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