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한 권정혁. 이용수기자 purin@sportsseoul.com

'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 국내 1호 유럽리그 진출 골키퍼, 한국 프로축구(K리그) 통산 최장거리 득점자. 국내 축구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세운 골키퍼를 꼽으라면 단연 2002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한 이운재(현 수원 삼성 골키퍼 코치)나 김병지(현 스포티비 축구 해설위원)를 떠올린다. 그러나 화려한 수식어의 주인공은 권정혁(39)이다. 그는 2016년까지 프로 무대를 누빈 뒤 지난 시즌 K3리그 베이직 의정부FC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큰 빛을 보지 못했지만 꾸준함으로 국내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핀란드 이적 한 뒤의 권정혁. 제공 | J.I.W. 인터내셔널

◇국내 1호 유럽리그 진출 GK 권정혁


권정혁은 지난 2009년 2월 핀란드 프로축구 베이카우스리가(1부리그) 로바니에멘 팔로세우라(RoPS)에 입단했다.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축구에서 골키퍼가 해외 진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90년대 발레리 샤리체프(신의손‧현 FC안양 코치)가 K리그에서 맹활약한 이후 골키퍼 문호를 닫은 것처럼 해외로의 진출도 쉽지 않았다. 최근 김승규(빗셀 고베)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정성룡(가와사키 프론탈레) 등이 이웃나라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다지만 골키퍼의 해외 진출이 자연스러워진 것도 근래의 일이다.


권정혁은 70년대 명 골키퍼로 이름을 날리며 국가대표 골문을 지켰던 변호영(74)이 홍콩 세미프로리그 세이코에 진출한 뒤로 30년여 만에 해외 진출, 그것도 국내 최초로 유럽리그 진출을 이뤄냈다. "어릴 때부터 유럽 축구를 보면서 동경했다. 그래서 대학교 다닐 때 영어 공부를 하며 준비했다"는 그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출신으로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프로 데뷔 이후에도 꾸준히 해외 진출을 노리며 당시 에이전트와 유럽 여러 팀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매번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다. 3번의 이적시장이 지나는 동안 포기 않고 도전한 권정혁은 핀란드 RoPS를 만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당시 그는 핀란드 무대를 처음으로 밟은 한국 축구선수였다.


실력을 인정받아 VPS 바사로 팀을 옮긴 권정혁. 제공 | 권정혁


◇서른에 잡은 주전 기회, 핀란드서 본격적으로 축구 시작


핀란드리그는 외국인 선수 제한이 없기에 권정혁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K리그보다 수준은 낮았지만 다양한 문화권에서 모인 선수들과 경쟁한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사실. 권정혁은 해외 진출할 때까지 국내 팀에서 주전을 꿰차지 못한 제2, 3의 옵션이었다. 뛸 수 있는 팀을 찾아 도전한 것이었다. 그는 "주전으로 뛸 수 있어서 넘어갔다. 첫해 주전으로 뛰고 실력을 인정받아 중위권 팀으로 둥지를 옮겨 리그 베스트 11에도 선정됐다"고 회고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주전자리를 꿰찬 건 아니었다. 그는 "아시아에서 왔다니깐 무시했다. 수비 실수로 골을 먹어도 내 탓을 하더라"며 차별당했다고 기억했다. 이적 초반에는 소속팀 감독마저 구단에 항의 할 정도였다. 하지만 3개월 만에 성적부진으로 감독이 경질된 뒤 권정혁에게 기회가 왔다. 당시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고 기회를 주면서 주전을 꿰찼다.


자신감이 붙어 기량을 마음껏 펼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핀란드 최고 골키퍼로 평가받은 유시 야스켈라이넨을 키운 엘루 골키퍼 코치의 밑에서 성장하며 많이 달라졌다. 권정혁은 "코치가 내게 '핀란드리그 최고의 골키퍼가 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며 "엘루 코치에게 배운 기술 덕분에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되돌아봤다.


하지만 그는 핀란드에서 2년간 활약하다가 돌연 국내로 리턴했다. "스웨덴 1부리그 팀에서 이적 제의가 와서 넘어갔다. 계약 조건을 맞추고 메디컬 테스트까지 받고 계약하기로 했지만 계약 당일 구단에서 조건을 바꾸면서 모든 게 틀어졌다. 차선책이 있던 에이전트를 믿고 다른 팀을 알아봤지만 결국엔 붕 뜨게 됐다." 무적신분으로 6개월간 팀을 알아보다가 2011년 7월 인천 유나이티드에 둥지를 틀었다.


국내로 돌아와 만개한 기량을 펼친 권정혁.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국내서 만개한 기량, 마흔까지 선수 생활


소위 '외국물'을 먹고 고국으로 돌아온 권정혁은 자신감을 갖고 더 성장했다. 그는 "6개월 쉬었지만 2년 주전으로 뛰니 자신감이 있었다. 사람마다 전성기는 다르겠지만 나로선 골키퍼로 활약하기 제일 좋은 나이였다"고 말했다. 그는 핀란드로 떠나기 전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 FC서울 등에서 우승팀의 분위기를 경험했다. 하지만 권정혁에겐 우승권에서 거리가 멀었던 인천에서 뛴 기억이 더 소중했다. 지난 2013년에는 전 경기에 출전하며 데뷔 이래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권정혁은 지난 2014년 인천을 떠난 뒤 광주FC와 경남FC, 부천FC 1995에서 프로 생활을 정리했다. 지난해에는 K3리그 베이직의 의정부FC에서 선수 겸 코치로 활약하며 지도자의 길을 준비했다. 그는 낮에 운동하고 저녁에 중· 고등학생 선수들을 가르쳤다. 정확히 한국 나이로 마흔 살에 선수 생활을 마친 권정혁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인터뷰한 게 있다. 마흔 살까지 하고 싶다고 했는데 말한대로 이뤘다"며 "후회는 많지만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오랜 기간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철저한 절제 덕분이었다. 그는 "선수 생활할 때까지 정제당, 정제염, 트랜스지방 등 몸에 좋지 않은 건 가능한 먹지 않고 가렸다. 의학 관련 책을 보고 공부하며 건강을 챙겼다"고 설명했다.


인천에서 뛰던 시절 권정혁.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지금까지 회자되는 K리그 최장거리(85m) 골


권정혁은 2013년 7월 21일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경기에서 K리그 역사에 남는 골을 기록했다. K리그 최장거리(85m) 골이었다. 상대의 파울로 페널티지역 앞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었다. 권정혁의 발을 떠난 공은 상대 골키퍼 키를 넘기며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권정혁은 "설기현을 보고 찬 것이었다. 순간 공에 너무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들어 골대를 넘기겠거니 했는데 골이 되더라"고 기억했다. 이어 그는 "축구의 신이 있다면, 그동안 고생한 내게 신이 준 선물 같았다"라며 "은퇴 뒤에도 사람들이 계속 기억해주니 기분 좋더라"고 덧붙였다.


pur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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