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 한국정구, 비인기 종목 설움 '금메달'로 날려버린다
    • 입력2018-04-13 06:00
    • 수정2018-04-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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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아기자기한 특징을 지닌 정구는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태국과 인도네시아, 몽골,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최강국은 한국이다. 사진 | 대한정구협회

[순창=스포츠서울 유인근 선임기자]“정구랑 테니스가 다른건가요?”

얼마전 37세의 늦은 나이에 첫 태극마크달아 화제가 된 정구 국가대표 김기성의 ‘9전10기 정구인생’을 소개한 뒤 받은 질문이다. 정구를 테니스의 한국어 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많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같은 코트에서 비슷한 라켓을 들고 플레이를 하고 있으니 그런 착각을 할만도 하겠지만 이는 정구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대표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대표 출신의 한 선수는 “오랫동안 정구 선수 생활을 했지만 아직도 내가 무슨 종목에서 뛰는 선수인지를 설명해야한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정구는 한국 스포츠에서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몇 안되는 종목중 하나다. 특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대량으로 획득하는 특급 효자 종목이다. 다른 나라에서 부러워하는 세계 최강국임에도 양궁이나 쇼트트랙과 달리 국내에서 외면받는 안타까운 종목이기도 하다.

◇두 차례나 전종목 석권, 불가능의 신화를 일구다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특징을 지닌 정구는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태국과 인도네시아, 몽골,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에서는 폴란드와 체코, 독일 등에서 성행하고 있다. 그 가운에서 전 세계적으로 정구의 저변과 위상이 가장 높은 나라는 종주국 일본이다. 일본은 대부분의 초·중·고교에서 정구가 생활체육으로 자리잡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정구의 최강국은 일본이 아닌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각종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고 있다. 특히 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의 위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은 지금까지 6차례 아시안게임에서 전체 36개의 금메달 가운데 절반이 훨씬 넘는 23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에서 열린 2002년 부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각각 7개의 금메달을 싹쓸이하며 어떤 종목도 해내지 못한 전종목 석권이라는 신화를 일궈냈다. 덕분에 올림픽 종목이 아니면서도 대한체육회 가맹된 경기단체 중에서 5번째로 많은 채육연금 수혜를 받고 있는 종목이 바로 정구다.

한국 정구가 종주국 일본을 누르기 시작한 것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부터다. 당시 3복식으로만 치르던 단체전이 아시안게임에 진입하는 것을 계기로 3복식, 2단식으로 규칙이 개정되면서 단식에서 강세를 보이던 한국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종합우승한 한국은 이후 계속되는 국제대회에서 최강의 지위를 누려왔다. 창녕군청 정구단 김용국 감독은 “사실 선수층이나 저변인구면에서 일본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지만 소수정예의 선수를 선발해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실시한 것이 주효했다. 정신력과 집중력에서 일본에 한 수 앞선 것이 일본 추월의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김 감독은 “한국 정구가 세계 최강의 자리에 서기까지는 무엇보다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늘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앞으로 정진하고자 했던 정구인들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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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한국정구의 에이스로 주목받는 고교유망주 이정운(순창제일고2)은 상대의 공격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변화무쌍함을 정구의 매력으로 꼽았다. 사진 | 유인근기자
◇ 테니스를 변형시킨 동양인에 적합한 스포츠
효자종목임에도 정구는 우리에게 여전히 생소한 것이 현실이다. 테니스와 비슷하지만 어딘지 다른 정구의 영어 표기는 ‘소프트 테니스(Soft Tennis)’다. 테니스와 뿌리는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른 종목이다. 1890년대 일본에서 테니스를 변형시켜 만든 운동으로 단단한 공을 사용하는 테니스와 달리 가볍고 말랑말랑한 고무공과 가벼운 라켓을 사용한다. 또 파워와 스피드를 요구하는 테니스에 비해 정구는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정구는 동양인들이 국제적으로 경쟁하기에 안성맞춤인 종목이고 생활체육으로 활성화돼 있다.

테니스의 사촌쯤이라 여러모로 비슷하다. 테니스와 똑같은 규격의 코트에서 진행되며 4점을 선취하면 게임을 따내고 4게임(7전)을 이기면 승리한다. 정구는 테니스와 비교해 어깨보다 손목을 활용한 기술을 많이 구사한다. 테니스는 드라이브(땅에 공을 튀긴 뒤 치는 기술), 슬라이스(라켓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듯 휘두르는 기술) 위주의 단순한 기술을 많이 사용하지만 정구는 손목 드라이브, 커팅 서브(공을 세차게 꺾어 치는 기술) 등 좀 더 세밀하고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에 직접 뛰는 것은 물론이고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초등학교때 방과후 수업으로 정구와 인연을 맺은 뒤 주니어대표로 활동한 고교유망주 이정운(순창제일고2)은 정구의 매력에 대해 “다양한 기술과 작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상대의 공격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변화무쌍함이 매력이다. 또 테니스에 비해 안전하고 몸에 무리가 덜 가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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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는 테니스와 비슷해 같은 코트를 쓰지만 테니스와 달리 가볍고 말랑말랑한 고무공과 가벼운 라켓을 사용한다. 사진 | 대한정구협회
◇ 금메달보다 국가대표 선발되는 것이 더 어려워...
비인기 종목 경기는 대부분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TV중계 등 외면을 받는다. 정구는 4년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전 종목을 석권하고도 모든 경기를 인터넷 중계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매번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과로 국위선양을 하지만 무관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는 정구가 한국사람들이 열광하는 올림픽 종목에 속하지 못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한정구협회는 단일 종목으로 올림픽에 진입하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올림픽경기에 테니스 세부종목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에도 한국 정구의 미래는 여전히 밝은 편이다. 끊임없는 세계 최강의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정구의 국가대표 선발전은 어느 종목보다 치열하다.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국가대표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 3월에 끝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도 그랬다. 기존 국가대표 선수가 재발탁 되는 것이 쉽지 않았을 정도로 실력 차이가 거의 없었다.

새로운 국가대표들은 지난 2일부터 진천선수촌에 입촌해 훈련에 금메달을 향한 담금질에 돌입했다. 이미 실력이 검증된 대표팀이 극복해야 할 우선 과제는 케미컬코트 적응이다. 한국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쉽게 접하는 클레이 코트에서 훈련했기 때문에 클레이 코트에 최적화한 스텝을 배웠다. 근육도 클레이 코트에 적합하도록 발달됐다. 딱딱한 케미컬 코트에서는 공의 바운스가 불규칙하다 보니 순발력과 체력이 더 많이 요구된다. 케미컬코트에서 열린 2006, 2010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2개에 그쳤던 것도 이때문이다. 그러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는 케미컬코트 적응에 집중한 결과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이번 대표팀 역시 케미컬코트 적응에 성공한다면 세번째 싹쓸이 신화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평가다.
ink@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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