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터 노에시
KIA 헥터가 25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KBO리그 KIA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토종 선발투수가 사라지고 있다.

바야흐로 외국인 투수 전성시대다. 오는 24일 막을 올리는 2018 KBO리그는 첫 날부터 외국인 투수들의 선발 맞대결로 치러진다. 그나마 올해는 삼성이 윤성환을 첫 번째 투수로 내세울 예정이라 10개 구단이 모두 외국인투수를 선발로 내보냈던 지난 시즌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삼성도 새 외국인투수 팀 아델만과 리살베르토 보니야가 기대만큼의 구위를 보여줬다면 윤성환을 선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윤성환은 지난 17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KIA와 시범경기 도중 오른쪽 팔꿈치에 타구를 맞았다. 무리할 필요가 없었지만 두 외국인투수가 믿음직스런 모습을 보이지 못하자 삼성 김한수 감독은 결국 21일 윤성환에게 불펜 피칭을 지시하며 사실상 개막전 선발을 확정했다. 윤성환은 두산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조쉬 린드블럼과 선발 맞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KIA 양현종과 SK 김광현, 두산 장원준 등 토종 에이스들은 선수가 느낄 부담과 다음 일정(원정 개막전) 등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2차전에 배치했다. 자연스럽게 수 년전부터 흐름으로 자리잡은 외국인 투수의 개막전 등판이 올해도 고스란히 이어지게 됐다. kt로 둥지를 옮긴 더스틴 니퍼트는 현역 개막 최다연승(6연승) 기록을 보유해 ‘개막전의 사나이’로 불렸다. 올해는 어깨 통증 탓에 개막전 등판이 불발됐지만 늦어도 홈 개막전(30일)에서 친정팀 두산을 상대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니퍼트는 빠졌지만 각 팀이 야심차게 영입한 새 얼굴들이 개막전부터 대거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문학에서 SK 메릴 켈리를 상대할 롯데는 ‘왼손 헥터’로 불리는 펠릭스 듀브론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제는 동료가 아닌 적으로 에스밀 로저스(넥센)를 만나는 한화는 ‘뉴페이스’ 키버스 샘슨으로 맞불을 놓는다. NC 왕웨이중도 LG 저스틴 윌슨 혹은 헨리 소사와의 선발 맞대결로 공식 데뷔전을 치른다.

듀브론트
롯데 듀브론트가 13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2018 KBO리그 롯데와 LG의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kt 피어밴드를 제외한 나머지 외국인 투수들이 시속 150㎞짜리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개막이 예년에 비해 열흘 가량 앞당겨져 타자들의 반응 속도가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KIA 김기태 감독은 “3월 말이면 힘대 힘 싸움에서 투수가 조금 우위에 있다. 150㎞짜리 빠른 공에 타이밍을 맞추고 있어도 체인지업이나 커브 등 오프스피드 피치에 타이밍을 빼앗기기 쉽다. 컷패스트볼이나 투심처럼 볼 끝에 변화가 심한 구종도 개막 초반에는 낯설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타자들이 시범경기에서 연일 맹타를 휘둘렀지만 정규시즌이 주는 긴장감과 부담감, 투수들의 각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힘 싸움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외국인 투수에 필적할 만한 토종 투수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개막전 한 경기는 국내 선수들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지만 회복력에서 외국인 투수들과 차이를 보인다. kt 김진욱 감독은 “나름대로 준비를 해 개막을 맞지만 정규시즌 첫 경기라는 부담감을 무시할 수 없다. 개막전을 치르고 나면 투수들이 허벅지나 어깨, 허리 등에 근육통을 겪기 마련인데 회복 속도가 항창 시즌을 치를 때만큼 빠르지 않다. 두 번째 등판에서 구위가 떨어지는 투수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자기만의 루틴이 확실한 외국인 투수들과 달리 토종 선발들은 적어도 개막 초기에는 하루라도 더 쉴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외국인 투수들이 조금 더 빡빡하게 개막 초반 로테이션을 소화해줘야 국내 선수들이 더 빨리 정상 밸런스를 회복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결정이다.

[포토]넥센전 선발나선 켈리, 구위점검 이상무
SK 선발투수 켈리가 18일 열린 넥센히어로즈와 SK와이번스의 시범경기에서 역투를 펼치고 있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NC 김경문 감독을 포함한 현장 지도자들은 얕은 투수층을 타개하기 위한 현실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혼혈을 포함한 해외동포에 문호를 개방하거나 아시아권 선수들을 외국인 숫자에 포함하지 않는 아시아쿼터제, 육성형 외국인 선수를 영입해 부족한 선수층을 키우자는 의견 등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10개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KBO), 프로야구선수협의 생각이 모두 달라 진지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게 현실이다. 외국인 투수들의 열전으로 펼쳐지는 개막전 풍토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zzang@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