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 제1호 창간호, 미래 세상을 담았다. 1985년 6월 22일. 스포츠서울 제 1호가 나왔다. 컬러 신문,순한글,가로편집. 대한민국 신문의 역사가 바뀌었다. 한자투의 세로편집이 전부였던 국내 신문역사에서 그것을 혁명이었다. 여느 신문과 내용과 구성도 달랐다. 한눈에 들어오는 큼지막한 제목과 시원한 사진. 스포츠에서 전문잡지를 뛰어넘는 예리한 분석과 박진감 넘치는 현장감. 어디서나 볼 수 없는 연예계의 생생한 이야기. 여기다 풋풋한 청춘들의 대학가 이야기와 즐거운 사회 뉴스까지. 젊은이들이 신문을 집어들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세상은 젊어졌다. 스포츠서울 창간호를 다시 들쳐본다.

스포츠서울 창간호-2
스포츠서울 창간호 1면

●1면:

창간 하루 전인 1985년 6월 21일 오후 서울 태평로 서울신문사 사옥의 한 회의실. 이날 편집회의에선 갑론을박의 산고 끝에 ‘88대표팀 사령탑 박종환 감독의 프로행’이 역사적인 창간호의 1면 톱기사로 정해졌다. 당시 박 감독은 스포츠계를 통틀어 최고의 스타였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 4강 신화 주인공인 박 감독은 스포츠서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프로행을 선언했다. 세상은 깜짝 놀랐다. 창간호부터 초대형 특종을 따낸 셈이다. 박 감독은 인터뷰에서 “아마추어와 프로를 총망라한 최고 수준의 단일팀을 이끌고 올림픽 메달을 따내는 것이 변함없는 나의 목표”라고 전제한 뒤 “이후 프로무대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자신의 야망”이라고 했다. 또 당시 창단을 준비 중인 2~3개 기업에서 창단작업의 전권 위임을 전제로 박 감독과 교섭 중이라고 보도했다. 박 감독은 이후 서울 올림픽 직전까지 88팀을 이끌었고 우여곡절 끝에 1989년 일화천마축구단의 창단 사령탑을 맡았다.

1면 하단에는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창간 축하광고가 실렸다. ‘세계는 서울로,서울은 세계로’란 제목의 광고에는 호돌이 9마리가 상모를 돌려 ‘SEOUL 1988’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시대상을 반영했다.

스포츠서울 창간호-2-2-2
스포츠서울 창간호 2면

●2면:

스포츠서울을 창간한 서울신문사 이우세 사장의 창간사가 실렸다. 이 사장은 창간사를 통해서 “미래는 결국 오늘의 작품이다. 스포츠서울은 읽어서 재미있고 알아서 도움되는 것을 독자에게 제공,보다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신문으로서 그 권위를 높여가겠다”고 밝혔다. 스포츠서울은 지령 1만호에 이르기까지 체육 대중문화 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밝은 미래를 창조해 나가며 창간사의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 또 일본 야구의 전설 장훈(일본 야구해설자) 새미 리(재미 수영지도자) 차범근(재독 축구선수) 이충희(농구선수) 김봉연(야구선수) 세코 도시히코(일본 마라톤 선수) 장정구(WBC 세계챔피언) 등 국내외 스포츠 인사들의 창간 축하글이 지면을 가득 메웠다(괄호 안은 당시 직책).

창간호 3면
창간호 3면

●3면:

전날(21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을 다뤘다. 1985년 후기리그부터 청보 핀토스로 새출발하기로 예정된 삼미는 6월 21일 롯데 자이언츠와 맞붙은 마지막 고별 홈경기를 가졌다.보도에 따르면 삼미는 ‘너구리’ 장명부가 선발로 나섰지만 1회초 8실점하며 초반부터 홈팬들에게 아쉬움을 안겼다. 이후 금광옥의 3점 홈런(1회말)과 이선웅-김바위의 연속타자 홈런(3회말)으로 눈물겨운 반격을 펼쳐 도원구장을 찾은 3200명의 관중으로부터 눈물겨운 박수를 받았다. 같은 면에 ‘영욕의 발자취’란 박스기사로 ‘도깨비팀’ 삼미의 창단부터 매각까지 과정을 심도있게 덧붙였다.

창간호 7면
창간호 7면 상단

●7면:

스포츠서울 창간작업을 담당했던 편집국을 소개했다. 이상우 초대 편집국장을 비롯해 유홍락 최신호 부국장,고두현 해설위원 등이 창간 수뇌부를 맡았다. 창간 당시 편집국 편제는 편집부(부장 성백진) 체육1부(이동웅) 체육2부(김응숙) 체육3부(이의재) 생활부(심정일) 교양부(최택만) 문예부(조관희) 사진부(김동준) 교정부(이종희) 화백실 등 10개 부실로 구성됐다. 스포츠전문지를 표방했지만 문예부 생활부 교양부 등 다양한 소식을 전하려했던 노력이 느껴진다. 우측 하단에는 창간기념 만화공모전 당선자 발표 사고(社告)가 실렸다.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당시 공모전에 전국에서 315명이 586편의 작품을 응모했다. 이로마씨가 특선을 통해 등단해 1985년부터 15년간 4단 컷 만화 ‘홍두깨’를 연재했다.

창간호 1415면
창간호 14-15면

●14~15면:

펼침면으로 인쇄된 왼쪽 면에는 해방 40주년을 맞아 스포츠서울 선정 ‘스포츠의 영웅 100인’을 게재했다. 현역을 제외하고 몬트리올 올림픽 출전자까지 대상으로 한국체육을 빛낸 경기인 100명을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고 이영민(야구)을 비롯해 김정남(축구) 이에리사(탁구) 등 대한민국 스포츠의 중흥기를 함께 한 체육인들이 지면을 빛냈다. 오른쪽 면에는 당대 인기만화가들이 ‘21세기의 레저·스포츠’를 상상화로 그렸다. 1985년에 본 21세기가 아주 멀어보였을까. 이중엔 맞는 것도 있고 아예 틀린 것도 많다. 이정문 화백은 달에 여행가서 무중력 상태 호텔에 묵는 연인을 그렸다. 월드컵이 우주컵으로 확대되고 대한민국 대표팀이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잉글랜드를 꺾고 지구 대표로 로켓을 타고 출전하러 간다는 내용을 ‘강가딘’의 신문수 화백이 그려냈다. 그로부터 17년 후 한·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었으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뻔데기 야구단’의 박수동 화백은 정확하게 맞았다. 21세기에 연봉 100억원 짜리 타자와 10억원 투수가 출현한다는 얘기. 14년 후 자유계약제(FA)도입으로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이 껑충 뛰었다. 올시즌 메이저리그 투수 류현진은 83억원의 연봉으로 10억원을 훨씬 뛰어넘었으며 국내 리그에서 뛰는 양현종 역시 23억원으로 박 화백의 예상치를 넘어섰다. 메이저리그 타자 추신수의 연봉은 200억원이 넘는다. ‘임꺽정’의 이두호 화백은 두 낚시꾼이 대동강 붕어와 한강 잉어를 나란히 들고 있는 통일 한국의 세상을 펜으로 남겼다. 통일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21세기도 고작 18년 째를 지나고 있을 뿐이다. 만화처럼 21세기 안에 통일을 이뤄 대동강에 붕어낚시를 가고 마식령에서 스키를 탈 수 있을지 모른다.

창간호 1면 1819면
창간호 18-19면

●18~19면:

서울 올림픽 개회날을 배경으로 한 ‘예상소설’이 지면을 장식했다. 당대 베스트셀러 작가 한수산이 글을 쓰고 최낙경이 삽화를 그린 ‘오늘은 올림픽 개막식날’은 서울 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미리 예상해 본 그날의 성대한 잔치를 펜으로 세세히 그려냈다. 주인공 ‘나’는 서울올림픽에 출전하는 권투선수다. 올림픽의 흥겨운 분위기 속 ‘나’는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패배를 안겨준 인도선수 굽타의 여동생 비나를 우연히 만난다. 올림픽 육상선수로 출전한 비나를 통해 굽타는 ‘나’에게 인사를 전했다. 우연히 비나를 만나고 난 후 ‘나’는 2년 전 패배의 치욕과 설움이 되살아났다. 다시 현실세계, 금메달이 걸린 결승전. ‘나’는 쿠바 선수와 맞붙었고 2라운드 KO승을 거뒀다.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서 내려오다 비나를 다시 만났다. 축하인사를 전하는 비나와 함께 한강 유람선을 탄다. 남산타워와 워커힐이 보이는 유람선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비나와 ‘나’는 사랑과 우정을 동시에 느낀다. 16일 간 축제에서 이어진 인연. ‘나’는 만남과 이별을 동시에 의미하는 ‘안녕’을, 그녀는 어제와 내일을 함께 뜻하는 ‘깔’을 서로 나눈다. 어둠 속에서 불밝힌 올림픽 스타디움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창간호 23면
창간호23면

●23면:

프랑스 파리 현지에서 가수 키메라(Kimera)를 만나 국내 첫 단독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가수 키메라(김홍희)와의 단독회견’을 통해 마이클 잭슨에 비견될만큼 폭발적인 키메라 돌풍을 현장취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1984년 발매된 1집 ‘잃어버린 오페라’에서 고저음을 무리없이 소화하는 독특한 창법과 환상적인 화장, 한복을 주제로 한 날개옷 의상 등을 통해 프랑스 스페인 서독 등에서 폭넓은 인기를 끈 그는 유럽음반제작업협회로부터 골든디스크를 2장이나 받았다. 1976년 프랑스에 유학을 와서 소르본대와 에콩노르말 뮤직에서 각각 불문학과 성악을 전공한 그는 레바논 출신 대실업가와 결혼 후 1남1녀를 두고 있던 상태에서 뒤늦게 가수로 데뷔했다. 프랑스 학생들이 너도나도 키메라 분장을 하고 다니고 키메라 T셔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현지 열풍을 전했다.

창간호 12면
창간 12면

●광고면

:당시 시대상을 보는데 가장 좋은 방법중 하나는 옛 광고를 살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광고는 기업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의 총아이기 때문이다. 12면에는 삼성의 기업 이미지 전면광고가 실렸다. ‘첨단기술로 人類福祉(인류복지)를 설계하는 三星(삼성)’이란 헤드라인의 광고에서 ‘三星은 첨단기술의 경쟁상대를 세계에서 찾고 있읍니다’라며 256K D램의 양산체제 돌입에 이어 1메가바이트 D램의 개발도 눈앞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광고대로 삼성은 1992년 세계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한 뒤 이듬해인 1993년부터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줄곧 정상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참고로 지금 상품으로 유통되는 메모리의 단위는 메가바이트(MB)가 아니라 그 100만 배에 이르는 테라바이트(TB)단위가 대중화됐다. 19면에는 동서식품의 멕스웰하우스 커피믹스 광고가 실렸다. ‘간편해서 좋아요’라는 카피 아래 등산복 차림 남성과 사무직 여성 차림의 모델이 커피믹스를 들고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제품은 지금도 생산된다. 당시 커피믹스(60g) 가격은 290원. 현재 판매 중인 제품(600g) 가격은 최저 3800원. 33년 간 거의 오르지 않은 셈이다.

새로운 스포츠·레저 전문지의 등장이라 스포츠용품 광고도 끊이지 않았는데 ‘세계가 신는 아디다스 한국생산 개시’(제우교역), ‘짚신에서 전문 경기화까지 슈퍼카미트’(대양고무), ‘세계가 보는 앞에서 외국상표를 입고 뛸 수는 없다’ 액티브(코오롱 스포츠) 등의 카피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영화광고
영화광고

매 지면마다 가득한 영화광고도 눈에 띈다. 영화를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신문광고 밖에 없었던 시절이다. 관객동원 50만명을 돌파한 ‘깊고 푸른밤’은 명보극장에서, 40만 명을 넘어선 ‘인디아나 존스’는 서울극장과 연흥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관람요금은 보통 2500원(외화는 2800~3000원)이었으니 영화 관람비용은 당시가 현재보다 체감물가가 비쌌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