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김도형기자] 강광배(한국체육대학교 교수 겸 썰매부 감독)는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로 모든 썰매 종목(루지, 스켈레톤, 봅슬레이)에 출전한 선수로 기록돼 있다. 특히나 썰매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성과를 냈다는 것 만으로도 동계스포츠 강국들의 이목을 끌었다.


선수로서 4차례 동계올림픽(1998년 나가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2006년 토리노, 2010년 밴쿠버) 무대를 밟은 강광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 해설위원 활동까지 합하면 6차례나 세계 곳곳을 누비며 겨울 축제를 즐기고, 만끽했다.


이처럼 그에게 동계올림픽은 인생이나 다름없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런 강광배에게 동계올림픽은 어떤 의미이며, 또 당시의 심경은 어땠을지 사진과 함께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관련기사 참고 [리와人드] "썰매에 미친" 강광배, 韓 썰매의 개척자가 되다


강광배:  썰매 종목(루지)에 도전해 올림픽에 출전했던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 모습이다. 상당히 경직된 모습이지 않느냐. 고개부터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웃음). 발목도 자세히 보면 자연스럽게 있어야 하는데 둘 다 다른 자세다. 이것만 봐도 동계올림픽 첫 출전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 수 있다.


강광배 :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 스켈레톤에 도전한 모습이다. 스켈레톤 선수로서 올림픽 출전은 처음이었다. 당시 썰매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환경이었고, 반대로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 열정 하나만 가지고 썰매에 미쳐 있었으니 말이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올림픽을 준비했다. 사진에 보이는 헬멧, 장갑, 의상까지 모두 아르바이트해서 사비로 구입한 것이다. 저녁에 폐지도 주워 보고, 캔, 병 등 수거 일도 했다. 스키 강사로도 돈을 벌어 썰매에 투자했다.


국가와 연맹에 도움을 요구한 적도 없었다. 온전히 나의 힘으로 참가한 올림픽이었다. 그래서 솔트레이크시티 때가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진만 보면 '나의 전부였다'는 심경이 그대로 느껴진다. (강광배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도 스켈레톤 선수로 활약했다)



강광배 : 봅슬레이로 전향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이다.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선수가 없어 올림픽 출전권을 따는데 우크라이나 선수들과 함께 했을 정도다. 광고를 찍고 사비로 들여 산 썰매다. 최초로 제자들과 함께한 순간이다. 또한 썰매 3종목에 모두 출전한, 선수로서 제일 마지막 시기다. 이 옷도 국내 한 기업이 기부해준 것이다.



강광배 : 잠깐만. (1998년 루지 때 사진을 다시 본다) 내가 그때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번호가 똑같다. 첫 올림픽과 마지막 올림픽의 스타트 순서가 22번이다. 우연의 일치다. 정말 깜짝 놀랐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강광배 : 지금 생각해 보면 2009년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출연은 굉장히 감사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연맹에서 전화가 와서 출연 의사를 묻길래 안 한다고 말했다. 쇼로 비춰지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정체성도 자리잡지 못한 때라 장난하는 것처럼 비춰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내 인생에서 썰매는 살과 피였다.


그런데 또 연락이 오더라. 고민 끝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본 나가노에서 첫 촬영을 했다. 그때 '무한도전' 팀을 처음 만났는데, 일주일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내가 반성했다. 멤버들을 보면서 '프로는 프로다', '존경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평균 나이 40세에 혼신의 힘을 다하더라. 반성도 하고 존경하는 계기가 됐다.


강광배 : 강원도청이 처음으로 썰매 종목 실업팀을 창단했을 때다. 옆에 있는 친구는 이길호다. 나 때문에 처음으로 루지를 했다. 창단 배경은 이렇다. 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이 밴쿠버에 올림픽 유치권을 내준 직후다. 평창 관계자들이 한 번 더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하자고 제안했고, '그러면 실업팀 하나 만들어주세요'라고 요청한 게 강원도청의 탄생이었다. 대한민국 썰매의 진짜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강광배 : 올림픽 유치 이후의 모습이다. 소치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참석했을 때다. 국제연맹 부회장, 대한체육회 임원 자격으로 나섰다. 당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때 메달을 반드시 딸 거다'라고 말했던 게 기억한다. 특히 의미 있는 건 이때부터 썰매 종목에 스폰서가 들어왔다. [리와人드②] 강광배 "진정한 스포츠인 패럴림픽에도 큰 관심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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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ㅣ스포츠서울 DB, 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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