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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8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웬블리 스타디움에서 끝난 2017~201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유벤투스와 홈경기에서 전반 39분 선제골을 터뜨린 뒤 환호하고 있다. 캡처 | 토트넘 페이스북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내용으로나, 질적으로나 손흥민(26·토트넘)의 골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손흥민은 8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웬블리 스타디움에서 끝난 2017~201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유벤투스와 홈경기에서 전반 39분 선제골을 터뜨렸다. 페널티에어리어 오른쪽에서 키에런 트리피어가 낮게 차올린 공을 손흥민이 문전에서 밀어넣었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4번째 골이자 시즌 16호 골(정규리그 10골·FA컵 2골). 지난 1일 로치데일과 FA컵(2골), 4일 허더스필드 타운과 리그 29라운드(2골)에 이어 3경기 연속 골이다. 행운도 따랐다. 애초 손흥민의 오른발 슛이 빗맞았으나 공이 공교롭게도 그의 왼 디딤발에 맞고 골문을 향했다. 상대 베테랑 수문장 잔루이지 부폰이 각도를 좁히면서 몸을 던졌으나 공의 궤적이 예상과 다르게 흐르면서 골로 연결됐다. 활약 자체만 놓고 보면 행운도 따를 만했다. 전반에만 양 팀 최다인 유효슛 3개를 해낸 그는 90분 내내 토트넘 공격수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뽐냈다. 축구 통계전문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은 손흥민에게 평점 7.5를 매기면서 이날 결승골을 터뜨린 유벤투스 파울로 디발라(7.4)보다 더 높은 점수를 매긴 이유다.

지난 원정 1차전에서 2-2로 비긴 토트넘은 손흥민의 맹활약으로 승기를 잡는 듯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세리에A 최강 팀이자 전술가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가 이끄는 유벤투스는 저력이 있었다. 에너지 넘치는 토트넘 공격에 움츠리다가 후반 중반 탁월한 용병술을 통해 승부를 뒤집었다. 오른쪽 수비수로 투입된 스테판 리히슈타이너의 발끝에서 후반 19분 곤살로 이과인의 동점골이 터졌고, 3분 뒤 이과인이 침투 패스를 받은 디발라가 왼발 역전골을 해냈다. 토트넘의 1-2 패배. 1, 2차전 합계 점수 3-4로 밀린 토트넘은 챔피언스리그를 16강에서 마감했다. 아쉬운 마음에 손흥민도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그에겐 잊지 못할, 유럽 빅 리그 도전기의 전환점임에 틀림이 없었다. 흡사 과거 선배 박지성이 PSV에인트호번 시절 AC밀란과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득점포를 가동하며 새 지평을 연 것처럼 말이다.

◇‘빅클럽에 약하다’는 선입견 깼다

손흥민은 매 시즌 한계를 극복하면서 아시아 유럽파 새 역사를 썼다. 독일 분데스리가 시절부터 줄곧 따라붙은 기복 논란도 지난 시즌 21골(정규리그14골, FA컵 6골, 챔피언스리그 1골)로 옛말이 됐다. 유벤투스전 골과 맹활약은 빅클럽에 약하다는 또 다른 편견을 깨는 계기다. 그의 가파른 골 레이스에도 강팀을 상대로 골 숫자가 적다는 지적이 따랐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14골 중 상위권 팀에 골을 넣은 건 맨체스터 시티전이 유일했다. 또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6골도 대부분 하부리를 상대했다. 골의 질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하지만 올 시즌 이러한 선입견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우선 FA컵 골 숫자가 2골로 지난 시즌보다 비중이 작다. 정규리그에선 리버풀을 상대로 골 맛을 봤다. 챔피언스리그에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유벤투스 등 타 리그 빅클럽 골문을 갈랐다. 리그 9경기와 FA컵을 남겨둔 가운데 16골을 기록 중인 손흥민으로서는 질이 달라진 득점력으로 지난 시즌 21골 경신도 노려볼 만하다.

바르잘리
전반 31분 안드레아 바르잘리가 손흥민에게 비신사적인 플레이를 하는 장면. 캡처 | SPOTV중계화면

◇힘겨루기·심리전에도 능하다

유벤투스전에서 손흥민이 입증한 또다른 힘은 심리전이다. 초반부터 기세를 올린 손흥민은 전반 31분께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상대 오른쪽 수비수 안드레아 바르잘리와 충돌했다. 워낙 기세등등한 손흥민의 몸놀림에 고전한 바르잘리는 공중볼 경합 이후 착지 과정에서 오른발로 슬쩍 손흥민의 왼 무릎 부근을 밟았다.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보기엔 손흥민의 무릎에 발이 닿은 뒤에도 슬쩍 한 번 더 누르는 행위를 했다. 손흥민이 본능적으로 오른발을 치켜들면서 방어했다. 바르잘리는 쓰러진 손흥민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면서 아무렇지 않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주심은 이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뒤늦게 손흥민이 쓰러진 것을 확인했는데, 다행히 손흥민이 별다른 이상 없이 일어났다.

심리전으로 해석할 만했다. 전반 3분 만에 바르잘리를 앞에 두고 헛다리 드리블로 제친 뒤 번개 같은 슛을 시도한 손흥민이다. 부폰 골키퍼 선방에 막혔으나 손흥민의 기세는 이어졌다. 전반 19분엔 또다시 왼쪽 진영에서 예리한 헤딩 슛으로 상대 골문을 위협했다. 바르잘리는 손흥민의 기를 꺾고자 영약하게 맞섰다. 주심의 눈을 피해 교묘하게 손흥민의 신경을 건드리고자 했다. 오름세를 탄 손흥민이라고 해도 상대 악질적인 행위에 위축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손흥민은 강했다. 7분 뒤 또 한 번 바르잘리 등 상대 수비를 앞에 두고 헛다리 드리블에 이어 왼발 슛을 시도했다. 주눅이 들지 않고 맞선 끝에 전반 선제골의 주인공이 됐다. 코너 플래그를 향해 슬라이딩 세리머니를 한 그의 포효가 어느 때보다 커 보였다. 과거 아시아 선수가 유럽 빅 팀 수비수를 상대로 기싸움에 밀려 적응 자체가 어려웠던 게 현실이다. 손흥민은 수비 스페셜리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탈리아 수비수를 상대로 재능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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