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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조현정기자]“신인배우로 대중과 만나고 싶다. ”

최근 90년대를 풍미한 아이돌그룹 H.O.T.와 어린이 아이돌그룹 7공주가 각각 MBC ‘무한도전-토토가3’과 JTBC ‘슈가맨2’에 출연해 추억을 소환하며 진한 감동을 안겼다.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꼬마신랑’ 등에서 큰 사랑을 받은 ‘원조 아역스타’ 김정훈(57)도 20여년 만에 배우로 복귀를 알렸다. 지난달 22일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로 근황을 전하며 연기활동 재개를 선언해 그 시절을 소환했다. 똘망똘망한 얼굴로 만 4세였던 1965년 영화 ‘이 세상 끝까지’로 데뷔한 이래 아역배우로서 미친 존재감을 알리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다. 김지미 문희 남정임 윤정희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과 모자로 호흡을 맞췄다. 청소년 본격 하이틴물인 영화 ‘고교 얄개’ 시리즈로도 활약하며 1960~1970년대를 주름잡았다. 1994년 이덕화와 함께 출연한 KBS1 드라마 ‘한명회’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사업에 전념해왔다. 40대 초반 첫 사업 실패로 심근경색을 앓기도 했지만 미얀마에서 윤활유 사업으로 성공한 그는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손성민 회장이 대표인 bob스타컴퍼니와 전속계약, 생애 처음 소속사를 갖고 24년 만에 ‘본업’으로 돌아가게 됐다. 최근 서울 왕십리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그는 기억 속의 앳되고 장난기 넘치는 얼굴이 세월의 더께를 입고 중후해졌지만 힘차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는 여전했으며 연기에 대한 열정 만큼은 청춘스타 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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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꼬마신랑’의 배우 김정훈.스포츠서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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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시절 배우 김정훈.스포츠서울DB
◇ 데뷔 53년차, 연기는 내 운명!

오랜 공백기 끝에 배우로 돌아온 김정훈은 “연기를 내 의지로 시작한 게 아니어서 심한 사춘기를 겪었고 결국 연기와 멀어지게 됐다”며 “나이 50이 넘어가니 예전 배우 시절이 그립더라. 미얀마 하이모공장 오픈식에 하이모 모델인 이덕화 형이 초청돼서 새벽까지 함께 이야기하면서 다시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연찮게 지금 소속사 대표와도 인연이 됐다”고 복귀 배경을 밝혔다.

만 4세의 어린 나이에 영화 ‘이 세상 끝까지’로 데뷔하게 된 건 우연이자 운명이었다. 당시 합동영화사에 다니던 사촌형이 아역이 필요하단 말에 그를 추천했다. 손이 귀한 집안인 데다 배우가 ‘딴따라’ 소리를 듣던 악극단 시절이라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 “못하면 데리고 오고 한작품만 하겠다”는 사촌형의 말과 달리, ‘이 세상 끝까지’가 대히트를 쳐서 원로배우 고은아의 남편이자 한국영화계의 대부인 서울극장 고 곽정환 회장이 대표이던 합동영화사에서 아동 양복까지 맞춰주고 두번째 작품을 비롯해 작품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데뷔작에서 ‘연기신동’ 소리를 들은 이래 전 국민에게 때론 웃음을, 때로는 눈물샘을 자극하며 무려 40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7개의 대본을 받아 추려서 한달에 10개 작품에 출연했다. 후시녹음이라 가능했다. 홍콩배우 주윤발이 인기있을 때 내가 통역한 적이 있는데 내 소개를 하니 ‘영화 몇편에 출연했냐’고 물어봐 줄여서 150편이라고 얘기했는데도 깜짝 놀라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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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교 얄개’의 배우 김정훈(왼쪽)과 이승현.스포츠서울DB

◇아역 ·하이틴 톱스타, 연기 중단하게 된 이유는

‘미워도 다시 한번’(1968)과 ‘꼬마신랑’(1970)이 동남아에서 대히트해 초등학교 시절 방문한 싱가포르와 대만에서 국빈대접을 받았고 대만에선 8편의 작품을 찍은 ‘원조 한류스타’이기도 했다. 다작을 하느라 학창시절의 추억이 그에겐 없다. 남들 다 가는 소풍이나 수학여행 한번 간 적 없었고 그런 날엔 오히려 새벽부터 충무로에서 밤을 새며 촬영하느라 ‘남들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데 난 이렇게 살아도 되나’란 심각한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17~8세의 사춘기 소년이던 그는 중학교 때 홍콩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알게돼 양어머니로 모시던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의 배우 겸 감독에게 ‘여기서 무조건 벗어나게 해달라. 대만에 가고 싶다’고 부탁해 대만에서 학업을 이어가면서 배우활동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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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정훈.사진|bob스타컴퍼니

한국에서 어느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자 ‘죽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잠수탔다’ 등 별별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대만에서 같은 아파트에 살던 국내 한 일간지 기자의 보도로 현지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90년대에 연기를 재개했지만 ‘꼬마신랑’ 이미지를 벗는 게 녹록치 않았다. “날 아는 분들이 내가 나이에 맞는 배역을 연기해도 ‘쟤가 벌써 저렇게 됐나’ 하고 낯설어해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웠다. 91년에 KBS2 월화 드라마 ‘3일의 약속’에 출연했는데 당시 PD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재미교포 의사 정동규 박사 일대기를 일주일에 두번씩 방송했는데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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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정훈.사진|bob스타컴퍼니

◇가족은 나의 힘! ‘은인’ 이덕화

디자인으로 프랑스 파리 유학을 한 미모의 아내와 1996년 결혼해 1남 1녀를 둔 그는 해외에서 다운로드받으며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을 꼼꼼히 챙겨봤다고 했다. 미모의 아내는 자신이 사업을 하건, 다시 연기를 시작하겠다고 할 때도 한번도 반대한 적 없고 묵묵히 내조해줬다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아들은 캐나다의 의과대학에 재학중이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동반 출연했던 스무살 현지 양은 홍콩에서 공부하고 있다.

40대 초반 국내에서 새집증후군 솔루션사업에 야심차게 도전했다가 실패한 뒤 스트레스와 홧병으로 44세 때 심근경색이 오기도 했다. 지방에서 연예인축구단 행사에 참석했다가 가슴을 쥐어짜는 것 같은 통증을 호소하던 그를 인근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게한 이가 이덕화였다. 서울로 와서 이틀 만에 심근경색이 재발해 3~4년간 건강을 위해 일을 쉬었고 미얀마를 왕래하던 지인의 제안으로 미얀마에서 자리잡고 사업하게 됐다.1970년대 ‘진짜 진짜~’ 시리즈로 큰 인기를 모은 이덕화는 생명의 은인일 뿐 아니라 연기활동을 재개하기로 결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데뷔는 김정훈이 7년 빠른 ‘선배’로, 이덕화의 아버지 고 이예춘과 함께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미얀마에서 자신과 만났을 때도, 최근 국내로 자주 들어오면서 만날 때마다 이덕화가 “이젠 애들도 대학생이니 다 컸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며 연기를 다시 해보라고 권한 게 가슴속 깊은 곳에 있던 연기에 대한 열정에 불을 지폈다.

◇김명민 유재명 등 요즘 배우들 연기력 놀라워!

김정훈은 눈여겨 보는 배우를 묻자 “요즘 배우들에겐 다 배울 점이 있다. MBC ‘하얀 거탑’을 다시 방송하던데 김명민이 장면마다 디테일한 표현력이 대단하더라. tvN ‘비밀의 숲’의 유재명도 연극배우 출신인데 넓은 무대에서 연기하던 사람이 저렇게 자연스럽게 하나 싶다”고 감탄했다. 연기활동 재개를 앞두고 “예전에는 대본을 받고 감독님이 얘길 하면 최대한 흉내냈다면, 삶의 연륜이 쌓인 이제야 연기가 뭔지 조금 알 것 같아 진심에서 우러난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hjcho@sportsseoul.com

사진| bob스타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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