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티시즘 in 아트]열받은 비너스, "잠만 자지말고, 이야기 좀 해요!"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
    • 입력2018-02-23 14:04
    • 수정2018-02-2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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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 69x 173cm. 1485년 경. 포플러 패널에 템페라와 유채.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스포츠서울 이주상기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화면에 좌우로 두 남녀가 대칭을 이루 듯 그려져 있다. 왼쪽의 여인은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고, 오른쪽의 남자는 옷을 벗은 채 누워 있다. 눈을 감고, 입을 벌린 것을 보면 깊은 잠에 빠진 듯 하다. 중앙에는 세명의 어린이들이 장난을 치듯 개구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왼쪽의 여인은 미의 여신인 비너스이고 오른쪽의 남자는 군신(群神)인 마르스다. 어린이들은 반인반수(半人半獸)인 사티로스로 아프로디테를 따르는 시종들이다. 아프로디테는 ‘대장장이 신’ 불카누스를 남편으로 둔 어엿한 유부녀의 신분이었지만 그림에서는 마르스와 정사를 나누며 바람을 피우고 있다.

하지만 깊고, 은밀하고, 독특할 줄 알았던 정사는 마르스가 보여준 이기적인 모습에 큰 실망으로 끝났다. 정사를 끝낸 비너스의 표정은 환희에 싸인 것이 아닌 불만 섞인 모습이다. 반면 마르스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무기인 창과 방패를 사티로스가 가지고 노는 줄도 모르고 곯아 떨어져 있다.

은밀한 정사를 나눈 후 마르스는 피로감에 이내 잠들었지만, 사랑의 환희가 남자보다 뒤늦게 그리고 오래 지속된다는 여성의 특성상 비너스는 바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비너스는 자신의 몸을 허락할 만큼 마르스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관계 후가 더욱 중요했다. 하지만 욕망을 성취한 마르스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잠뿐이었다.

그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이다. 보통 남녀가 관계 후 보여지는 모습과 태도를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관계는 남녀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시킨다고 한다. 그만큼 열정이 크고 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관계 후 남녀가 보이는 반응은 상반적이다. 대개의 경우 남성은 절정이 한순간에 집중되는 반면, 여성은 길게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육체적인 관계 이후 정서적인 관계에도 관심이 커, 다정한 이야기와 속삭임 등 남성의 배려에 더욱 애정을 느낀다고 한다. 이 그림이 이탈리아의 유력가문인 메디치가의 혼수용품으로 제작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너스와 마르스’는 사랑을 나눈 남녀의 모습과 함께 ‘미’와 ‘전쟁’을 표현하는 모습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미의 여신 비너스가 전쟁의 신 마르스를 잠들게 한 것은 ‘아름다움은 언제나 힘을 이긴다’는 교훈을 나타낸 것이라고 일단의 비평가들은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평가는 유럽을 지배했던 종교의 힘에 억눌린 해석이다. 승자의 관대함과 패자의 비참함을 찾기에는 그림은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비너스와 마르스는 한 번도 아닌 수없이 사랑을 나누며 큐피드와 하모니 등 여러 명의 자식을 낳았다. 비록 혼외정사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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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네타 베스푸치를 모델로 그려진 비너스. 요즘 유행하는 시스루 의상을 연상시키 듯, 옷의 주름을 흐르듯이 표현해 비너스의 풍만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녀의 밝지 않은 표정은 마르스의 무관심과 이기심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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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티로스가 마르스의 갑옷을 입은 채 장난을 치고 있고, 또 한명의 사티로스는 고둥을 귓가에 대고 불고 있지만 마르스는 잠에서 깨어 날 줄을 모르고 있다. 자신의 욕망만 채우면 끝이라는 남자의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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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마르스의 오른쪽에 그려진 말벌은 베스푸치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이다. 말벌은 라틴어로 ‘Vespa’로 쓰기 때문에 문장으로 채택됐다. 시모네타를 흠모했던 보티첼리가 말벌을 그림에 넣음으로써 간접적으로 시모네타에 대한 연정을 표현했다.

▶줄리아노 데 메디치와 시모네타 베스푸치 - ‘비너스와 마르스’는 당대 이탈리아의 권력과 부를 독점했던 메디치 가문의 줄리아노 데 메디치와 그의 애인이었던 시모네타 베스푸치를 모델로 그려졌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로 피렌체에서 가장 뛰어난 용모를 지닌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림 속 비너스와 마르스의 관계와 비슷했다. 시모네타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아메리고 베스푸치 가문의 마르코 베스푸치와 결혼한 유부녀였고, 줄리아노는 엄청난 재산을 바탕으로 피렌체를 주름잡는 권력자이자 플레이보이였다. 한눈에 반한 두 사람은 시모네타가 23살, 폐결핵으로 사망할 때까지 지속됐다.

시모네타는 줄리아노의 형인 로렌조와도 염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형과 함께 이탈리아를 좌지우지했던 줄리아노는 정치적 음모에 휘말려 25살에 암살됐다. 그의 유일한 아들인 줄리오 데 메디치는 훗날 교황 클레멘스 7세가 되었다. 시모네타는 보티첼리의 대표작인 ‘비너스의 탄생’은 물론 ‘프리마베라’ 등 그의 주요 작품에 메인 모델로 등장했고 보티첼리 또한 시모네타를 광장히 흠모했다고 알려져 있다. 보티첼리는 ‘내가 죽으면 시모네타의 묘지 옆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 와 ♀ - 우리가 흔히 쓰는 남녀를 상징하는 기호는 마르스와 비너스로부터 유래했다. ♂는 마르스의 뾰족한 화살을 기호화했고, ♀는 비너스가 쓰는 거울 모양을 기호화했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1445 ~ 1510) -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다. 르네상스 초기에 활약했던 필리포 리피가 그의 스승이다. 스승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양식의 문양을 선호했다. 특히 남녀 신체의 묘사는 당대에 그를 능가할 화가가 없을 정도였다. 같은 피렌체 출신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품인 ’비너스의 탄생‘, ’프리마베라‘ 등이 메디치가의 주문으로 만들어 졌다. 그의 명성은 말년에 급격히 무너졌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의 등장으로 그의 작품은 퇴물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신체에 대한 정교한 묘사는 19세기에 재평가되며 부활했다. 특히 탐미적 소재를 즐겨 그렸던 라파엘 전파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rainbow@sportsseoul.com 그림출처 | 위키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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