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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마량포구에서 바라본 일출, 설도 지났으니 이제 정말 새해가 틀림없다. 봄도 곧 올 것같다.

[서천=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 공부하려고 마음먹고 책을 폈는데 “공부 안하냐”는 얘기를 들은 아이처럼, 모두가 기다리는 봄은 일부러라도 더디 오려는 모양이다. 춘삼월이 코앞인데도.

허나 서천에서 만난 겨울 바다에는 봄 바다가 섞여있었다. 이제 곧 봄비가 내려 골고루 섞어주면 상춘곡을 부른대도 민망하지 않겠다.

충남 서천. 서산이 아니다. 비단같은 금강이 내려 짠물을 만나는 하구둑, 전북 군산과 바로 붙은 그곳 서천 땅이다. 지자체 이름은 그리 유명한 편은 못된다. 하지만 스무고개까지도 필요없다. 장항선의 장항, 소곡주와 모시의 한산, 춘장대해수욕장과 남당리까지 말하자면 “아아~ 그!(중학교 때 뒷자리 앉았던 애 이름 떠올리듯)”가 절로 따라붙는다.

들과 산, 바다까지 비옥한 곳이다. 여느 서해안 도시처럼 개발이 안된 ‘덕’에 갯벌이 그대로 살아있고 맑은 물에선 맛난 먹거리가 절로 난다. 대보름을 앞두고 ‘해병대 특수수색대’처럼 깊은 물 아래로 침투한 봄이 식탁으로 상륙한다. 조자룡 헌 칼같은 젓가락을 벼리고 지키고 앉았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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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마량포구에 떠오르는 해. 서해안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해뜨기 전에

서해안에 해뜨는 거 보러간다면 ‘조현증’이라 수근대겠지만, 사실 서해안에는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 몇 곳 있다.(반대로 포항 구룡포에선 일몰을 볼 수 있다)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 나온) 마량포구는 그중 한 곳이다.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데 그나마 겨울에만 볼 수 있다. 점점 일출 시간이 빨라지기 때문에 원래도 일출은 겨울에 보는 것이 좋다.

큰맘 먹고 일찍 일어나 마량포구에서 불덩어리가 떠오르는 광경을 보고 돌아다니다, 저녁 무렵 다시 ‘아까 그 해’가 바다로 잠기는 것도 볼 수 있다.

날씨는 추웠다. 뾰족한 바람이 제법 불어왔지만 구름이 없어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방파제 끄트머리에 등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해를 기다렸다. 하늘이 푸르딩딩 밝아지고 출조나가는 어선이 제법 많아질 무렵, 수평선 끄트머리에 금싸라기같은 불덩이가 보였다. 해다. 동녘 바다에 수줍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 둥그러니 활활타는 태양이 망울을 터뜨리며 솟아난다. 느리게 보였지만 순식간에 휙 떠오른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시속 약 1667㎞. 윤성빈이 4차시기 스켈레톤 속도의 열 배도 넘는다.

먼 하늘 정면에 떠억하니 박혀서 천지를 물들이고 있는 황금빛 태양. 갑자기 몸통이 뜨뜻해지고 뭔가 신비로운 기운을 받는 느낌이다. 차 계기판의 외부기온은 변함없었다. 완벽한 오메가 모양의 일출이 주는 위약(僞藥)효과였다.

애인 면회로 외출나온 군인처럼 오늘은 하루종일 저 태양과 함께 돌아다녀야겠다. 해를 봤으니 배를 채워야겠다. 제철 물메기탕을 먹으러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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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은 동백숲으로 유명하다. 마량리 동백숲엔 아직 일러 피지않았지만 국립생태원에는 이미 빠알간 꽃이 방긋 웃고 있다.

◇해가 중천

서천에는 국립생태원이 있다. 개발을 위해 갯벌을 매립하지 않는 대신 더좋은 생태원이 생겼다. 그냥 단순한 관람시설이 아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에 온대, 난대, 열대, 사막, 극지대의 생태를 재현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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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국립생태원 열대관.

열대관에는 정말 정글이 형성되어 있다. 공중에서 가느다란 뿌리 기근(氣根)이 비처럼 내려오는 시서스가 주렁주렁 매달린 가운데를 지나면 ‘쥬라기 공원’이라도 온 기분이 든다. A3용지만한 이파리를 달고 하늘높이 솟은 열대식물 사이를 데크를 통해 이리저리 탐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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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 정글에서나 볼 법한 공중뿌리 식물이 늘어진 서천 국립생태원.

정말 열대처럼 덥고 습하지만 쫒아오는 공룡은 없다. 대신 열대 민물고기가 있다. 아마존이나 태국, 인도네시아에 사는 종류로 가득하다. 각질 정도는 단숨에 뜯겠지만 ‘닥터피시’를 해선 안되는 피라냐를 비롯해 아로아나 등, 서천 수산시장의 것과는 좀 다르게 생긴 생선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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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와 뽀로로에 등장하는 사막여우를 만날 수도 있다. 서천 국립생태원.

각 기후대를 돌다보면 장면전환이 급격히 이뤄진다. 호주와 북미, 아프리카 등 사막기후대를 재현해놓은 사막관도 재미있다. 들어서자마자 서부영화의 한 장면이다. 튜니티가 누워자고 있을 것 같은 바위와 만화 ‘딱따구리’에서 누가 앉으려면 의자 위에 몰래 갖다놓는 그런 선인장이 드글드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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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영화에서 자주 보던 선인장. 서천 국립생태원 사막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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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볼거리를 통해 생태를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서천 국립생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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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국립생태원 전경.

특히 ‘니은(ㄴ)’자 팔을 가진 멕시코 선인장은 다른 곳에선 보기드문 종으로 마카로니 웨스턴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온대관에선 조금 일찍 피어난 빨간 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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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국립생태원의 스타인 수달.

국립생태원은 각 식생대와 함께 동식물도 만날 수 있어 가족 나들이 코스로 딱이다. 바닷고기인 꽁치를 넙죽넙죽 받아먹는 수달을 보면 아버지가 더 즐거워한다.

극지대관의 펭귄(뽀로로와 패티)과 사막관의 사막여우(에디), 비록 박제지만 북극곰(포비)도 있으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비버 루피는 없지만 대신 비슷한 수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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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국립생태원은 식물원과 동물원이자, 아쿠아리움 기능까지도 톡톡히 한다.

국립생태원은 단순히 보는 것만이 아니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에듀테인먼트 공간이다. 스라소니가 ‘화난 고양이’처럼 생긴 것도, 한반도에 ‘우는 토끼’가 산다는 것도, 이름은 가수처럼 예쁘지만 ‘노란목도리담비’가 엄청나게 사나운 동물이란 것도 여기와서 처음 알았다. 호각 소리처럼 우는 토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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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마량리 동백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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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당연히 일몰 역시 물론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해가 지다

서천 바다에 해가 진다. 마량리엔 동백숲이 있다. 꽃은 아직 일러 몽우리도 틔우지 못했지만 훈풍을 만나면 갑자기 툭툭 터져나올 기세다. 해질 무렵 고불고불한 나무 그림자가 근사한 천연기념물 동백숲에선 탐스러운 빨간 꽃망울 대신 바다 너머 떨어지는 붉은 낙조를 만날 수 있다. 바다 한가운데 예쁘장한 섬 오력도로 떨어지는 일몰은 할미섬(태안)이나 솔섬(부안)을 걸어두고 보는 것에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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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량리 동백숲 앞에서 바라본 일몰. 오격도 사이로 해가 잠겼다.

어쨌든 아침에 뜨는 것을 봤으니 하루종일 알고 지내던 친구같은 해가 다시 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공복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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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특화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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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은 광어(넙치)의 최대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요즘은 참숭어도 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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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특화시장은 관광객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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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에서 꼭 맛봐야 할 새조개.

서천특화시장. 비옥하기로 소문난 서천 바다에서 나는 다양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원래 서천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산 넙치(광어)를 비롯해 제철 새조개 샤부샤부, 서둘러 나타난 주꾸미, 눈 쏠린 박대구이, 살결고운 물메기 등이 시장에 쫘악 깔렸다. 서천 앞바다의 생태를 그대로 뭍으로 옮겨왔다.

국립생태원과 다른 점은 고르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2층에 양념집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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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있으면 제철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는 서천 명물 주꾸미.

새조개와 주꾸미를 사서 살짝 데쳐먹었다. 끓는 육수에 담가 몇번 흔들고 입에다 그대로 옮기면 그만이다. 새조개의 매끈한 살이 달달한 향을 풍긴다. 몇번 안씹어도 꿀떡꿀떡이다. 주꾸미는 또 어떤가. 짧은 다리가 꼬들꼬들 씹을수록 진한 맛을 낸다. 이러니 서천에 올 수 밖에. 서해는 동해에 비해 푸른 색이 덜하지만, 그건 아마도 먹거리가 가득 들어있어서 그런가 보다.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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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천국 서천 특화시장.

여행정보

●먹거리=서천특화시장 이층은 양념집들로 가득하다. 양념비(1인당 5000원)을 받고 회를 떠주고 반찬을 깔아준다. 다른 지역 시장에 비해 조금 비싼 듯하지만 서천시장이 워낙 저렴해서 총액으로 따지면 꽤 괜찮다. 2층 16호 시조식당은 솜씨좋은 주방에서 싱싱한 재료로 다양한 반찬을 깔아준다. 샤부샤부 용 육수에도 밑국물용 식재료와 채소를 듬뿍 넣어 맛이 좋다. 주꾸미를 먹고 난 후 먹물을 터뜨려 즐기는 ‘주꾸미 먹물 라면’은 이탈리아 오징어먹물 파스타 못지않게 입맛을 당긴다.

●서천동백꽃주꾸미축제=붉은 동백꽃과 맛있는 주꾸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3월17일부터 4월1일까지 서천군 마량포구 일대에서 열린다. 시각과 미각은 물론, 향긋한 봄바다 내음을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는 오감만족의 흥겨운 축제가 펼쳐질 예정이다. 산지에서 직접 구입한 싱싱한 해산물을 구입해 맛볼 수 있다. 종합관광안내소(041)952-9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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