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게은 인턴기자] 70대 배우로 여러 작품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사랑을 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배우 윤여정은 그 길을 걷고 있다.


그는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올해로 데뷔 53년 차가 된 대한민국 배우계의 대모다. 윤여정은 그동안 광기 어린 하녀 역부터 친근한 할머니 역까지 다채롭게 소화하며 활약해왔다.


배우로 형형색색의 모습을 보였던 윤여정이 지난해에 이어 현재 전파를 타고 있는 tvN 예능프로그램 '윤식당 2'를 통해 또 다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지난 26일 방송한 '윤식당 2' 4회는 평균 시청률 15%를 돌파하며 역대 tvN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윤여정은 최근 한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배우 인생 50년에 '윤식당'이 대표작이 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도 '윤식당'으로 얻은 뜨거운 인기를 체감한 것.


지난 2014년에 출연한 '꽃보다 누나'에서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냈다면, '윤식당'에서는 그 모습과 더불어 색다른 매력을 가미시켰다. '윤식당'의 메인 셰프 겸 사장으로, 그동안 숨겨왔던 요리와 영어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 손님들이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며 긴장하면서도 주방을 진두지휘한다. 손님들에게 직접 비빔밥을 비벼주고 설명해주는 열정과 친근함도 드러냈다. 이 같은 모습들은 젊은 층들까지 매료시켰다.


윤여정은 데뷔 초부터 '윤식당' 속 존재감처럼 두각을 나타내 주목받았다. 1971년 그의 스크린 데뷔작이었던 영화 '화녀'는 다소 파격적인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윤여정은 극 중 주인집 남자와 불륜을 저질러 한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하녀를 연기했다.


당시 순종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조했던 시대 통념을 깨버린 인물이었다. 윤여정은 강한 캐릭터를 잘 소화해 주목받았고 '화녀'는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는 '화녀'로 제4회 시체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제10회 대종상 시상식 신인여우상, 제8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같은 해 드라마 '장희빈'에선 악역으로 변신하며 대중에게 다시금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장희빈'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윤여정은 핫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지난해 tvN 토크 프로그램 '택시'에 출연해 '장희빈'과 관련된 일화를 털어놓은 바 있다. 윤여정은 "과거 탄산음료 모델로 활동했을 때, '장희빈'에 출연한 후부터는 더 이상 광고 요청이 오지 않았다. 내 얼굴이 나온 포스터마다 사람들이 눈을 뚫어놨다"며 악역의 고충을 털어놓은 바 있다. 당시 그가 얼마나 배역을 제대로 소화해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후 드라마 '무지개', 대원군' 영화 '여대생 또순이'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내공을 쌓았다. 1972년 출연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새엄마'가 큰 인기를 끌며 윤여정은 안방극장 흥행의 보증수표로 거듭났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1975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갔고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12년 후인 1987년 윤여정은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이혼했다.


그는 드라마 '원미동 사람들', '사랑의 굴레', '사랑과 야망', '철새' 등에 출연하며 다시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윤여정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을 때도 강렬한 배역을 맡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2003년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아들 부부에게 "나 만나는 남자 있다"라고 선언하는 바람난 중년 여성으로 분했다.


또 2010년 과감한 스토리와 에로티시즘을 담은 영화 '하녀'에서는 나이 든 하녀 병식 역을 맡아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새로운 하녀와 주인 남자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지켜보는 연기로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윤여정은 '하녀'를 통해 제47회 대종상, 제31회 청룡영화상, 제8회 대한민국 영화 대상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2016년에는 제목부터 파격적인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 출연해 종로 일대에서 노인을 상대로 성매매하는 이른바 박카스 할머니로 열연했다. 소재부터 자칫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영화였지만, 특유의 무심하고도 섬세한 연기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그려냈다. 윤여정은 '죽여주는 여자'로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제10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즈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지난 17일 개봉한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두 아들을 둔 친근한 모습의 엄마로 변신했다. 윤여정은 이 영화에서 자진해 부산 사투리에 도전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동안 보여준 엄마 캐릭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사투리 교사와 3개월 합숙도 했다"고 밝혔다. 캐릭터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의 열정이 온전히 묻어나는 말이다.


윤여정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일할 때 늘 긴장하곤 하는데 영원히 그러고 싶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농익은 관록을 가진 그가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는 자세는, 대중에게 믿음을 주는 배우로 거듭날 수 있던 비결은 아닐까. 무엇보다 여전히 뜨거울 거라는 걸 짐작하게 하는 대목인 만큼, 그의 앞날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eun5468@sportsseoul.com


사진ㅣ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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