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빈 김영태 선생
김영태 관악고등학교 교사 겸 서울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이사가 지난 18일 관악고 예체능부 사무실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한 뒤 지난해 스승의 날 당시 제자 윤성빈이 보낸 화환리본을 배경으로 파이팅 포즈를 하고 있다.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전화 한 통이 그렇게 운명을 바꿀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은인(恩人)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다. 삶 속에서 헤아려보면 스스로 무언가 해결할 수 없는 처지일 때 결정적인 도움을 줘 인생의 지평을 열어준 존재다. 한국을 넘어 세계 스켈레톤의 간판으로 성장한 윤성빈(24)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1994년생, 경남 남해 출신인 그는 남서울중을 졸업한 뒤 신림고에 입학했다. 고1까지 평범한 학생으로 지낸 그를 운명적으로 썰매와 만나게 한 주인공은 당시 체육교사 겸 농구 감독을 맡았던 김영태씨(59)다. 김 씨는 지난 18일 재직중인 관악고에서 스포츠서울과 단독인터뷰를 갖고 제자의 성장 과정을 상세하게 밝혔다.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의 책상 한가운데엔 지난해 스승의 날 윤성빈이 보낸 화환리본에 적힌 감사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스승의 날이나 명절 때 종종 찾아오는 편인데 대회 등으로 바쁘니까 못오면 저렇게 (화환을) 보낸다”고 웃었다. 그저 그런 학생이었던 윤성빈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스포츠 스타로 성장한 데엔 김 씨의 안목과 진심 어린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그가 밝힌 윤성빈 인생의 전환점 세 가지를 소개한다.

◇ 범상치 않았던 제자 “너 운동해볼래?”

“성빈이는 공부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우연히 성빈이를 아는 한 동료 교사가 배드민턴을 잘 치는 학생이 있다고 소개해주더라.” 윤성빈은 유년 시절 배드민턴을 잠시 배운 적이 있다. 기초가 탄탄했던지라 방과후 배드민턴을 즐겨친 선생님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체육교사 김 씨에게도 윤성빈은 관심사였다. 첫 만남서부터 윤성빈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김 씨 마음을 사로잡았다. 엘리트 농구 선수 출신인 김 씨는 전문 선수 못지않은 훤칠한 키, 체격을 지닌 윤성빈을 눈여겨봤다. 얼마 후 그는 윤성빈에게 “너 운동해볼래?”라고 넌지시 물었다. 당시 학과 성적도 신통치 않았고 미래를 명확하게 그리지 못한 윤성빈을 자신이 담당한 체대 입시반으로 데려왔다. 제자리멀리뛰기, 팔굽혀펴기, 단거리 등 체대 입시에 필요한 기초 체력을 테스트했는데 김 씨는 입이 쩍 벌어졌다. 어느날 자신이 담당한 농구팀 연습경기에도 참여하게 했는데 엘리트 선수 사이에서 속도가 뒤떨어지지 않았고 리바운드도 곧잘 따냈다. 그는 “신림고에 15~20도 정도되는 언덕길이 있었다. 어느날 (입시반) 학생들을 뛰게 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성빈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또 농구장에서는 제자리에서 점프를 해서 골대를 잡더라. 순간 ‘너 다시 뛰어봐’라고 했다. 또 잡는 것을 보고 ‘너는 앞으로 내 말만 잘들으면 대학 입학은 책임지겠다고 했다”고 웃었다. 실기 점수가 더 많은 국내 일부 대학 체육과 전형에 맞춰 윤성빈을 키웠다.

◇ 때아닌 전화 한 통 “너 빨리 한체대로 와”

김 씨는 연세대 대학원에서 한국 썰매 개척자로 불리는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를 만난다. 당시 국내 썰매 발전에 큰 그림을 그린 강 교수의 뜻을 이해한 대학원 관계자가 동문을 중심으로 경기단체 조직에 나섰다. 이렇게 서울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이 창설됐는데 김 씨는 운동 선수 출신 이사로 참여했다. 2012년 6월 어느날 이사회 겸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리던 날이다. 강 교수는 이전부터 김 씨에게 “형님, 좋은 재목이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했다. 문득 김 씨는 선발전 당일 고3이던 윤성빈을 떠올렸다. 그는 “(강 교수에게) 고등학생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하더라”며 “이사회하고 점심 먹기 전 성빈이에게 전화했다. 자고 있더라. ‘해가 중천에 떴는데 게을러터졌다’고 꾸지람을 하면서 당장 (선발전 장소로) 나오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영문도 모르고 반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온 윤성빈은 급작스럽게 스켈레톤 대표 선발전임을 알았다. 그런데 달리기에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뽐냈다. 강 교수 눈에 띄어 국가대표 상비군에 포함됐다. 한체대에 합류해 그해 가을까지 전지훈련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해 9월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마침내 태극마크를 달았다.

윤성빈 김영태 선생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오른쪽)이 지난해 3월19일 평창올림픽 테스트이벤트를 겸한 월드컵 8차 대회 당시 알펜시아를 방문한 은사 김영태 교사와 다정하게 포즈를 하고 있다. 김용일기자

◇ “선생님 무서워서 도저히 못하겠어요”

대학생 형보다 스타트 기록이 1초 이상 빠를 정도로 탁월한 운동 능력을 뽐냈다. 2014 소치 올림픽을 겨냥해 무럭무럭 성장했다. 그러다가 대회를 앞두고 위기가 찾아왔다. 김 씨는 “성빈이가 소치에 가기 전 훈련하다가 썰매를 타는 게 너무 무섭다고 포기하고 뛰쳐나왔. 강 교수가 놀라서 ‘형님, 성빈이가 울면서 나갔다. 일단 집에가서 쉬면서 생각하라’고 했다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실망할까봐 그랬는지 성빈이가 직접 오지 않고 어머니께서 찾아오셨다. 어머니께서 ‘아버지도 안 계시는 데 (썰매 타다가) 아들까지 잘못되면 큰일아니냐’며 우려하셨다. 그때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개척해야 성공한다. 성빈이는 그럴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간곡히 설득했다”고 밝혔다. 마음을 다잡은 윤성빈은 스승의 한마디에 다시 용기를 내 훈련장에 복귀했다. 금세 스켈레톤 썰매에 적응했다. 김 씨는 “성빈이가 ‘선생님 이제 (스켈레톤을) 알 것 같습니다’고 하더니 보란듯이 소치를 경험한 뒤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윤성빈은 스켈레톤 입문 5년 만에 세계랭킹 1위를 차지, 평창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거듭났다. 김씨는 “당연히 제자가 평창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평창 이후다. 성빈이가 잘 되면서 곳곳에서 여러가지 유혹이 있는 것 같다. 이를 잘 제어해야 2022년 베이징 대회까지 롱런할 수 있다”며 애제자의 앞날을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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