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아이스하키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당시 남북 아이스하키 대결후 서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최승섭기자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대통령까지 나섰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이젠 해외에서도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을 다루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충북 진천선수촌을 방문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훈련 중인 선수들을 격려하고 식당에서 함께 오찬을 나눴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방문 하이라이트는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과의 만남이었다. 정부가 여론조사 결과 80% 가량의 반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출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전날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이끄는 캐나다 출신 새라 머리 감독이 입국장에서 “뉴스로 전해들었으며 충격적이었다. 조직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북한 선수들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밝히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단일팀 구성 유·무 여부에 대한 정확한 입장을 전하진 않았다. 다만 긍정적인 해석은 내놨다. “(남·북이) 공동입장하거나 단일팀을 만든다면 북한이 단순히 참가하는 것 이상으로 남·북 관계 발전에 훨씬 좋은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그는 “꽁꽁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풀어가는 좋은 출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일팀을 만든다고 전력이 높아지리라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팀워크를 맞추는데 노력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남·북이 하나의 팀을 만들어 경기하는 자체가 두고두고 역사의 명장면이 되고 국민과 세계인이 그 모습을 보면 감동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찬 직전 남·녀 아이스하키 대표팀 훈련 땐 “단일팀 성사 여부를 떠나 우리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하고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씻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북한 선수 가운데 기량이 뛰어난 선수 몇 명을 추가해 1∼2분씩 함께 뜀으로써 전력이 강화되는 것을 선수들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들었다”며 난데없이 ‘전력강화론’을 설파한 이낙연 국무총리와는 달리 급조된 단일팀의 문제점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 비인기 종목 선수의 아픔도 얘기했다. 하지만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일팀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는 꺾지 않았다.

대통령까지 선수촌을 찾아 단일팀의 긍정적인 의미를 설명했으나 여론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각종 포털의 게시판에선 단일팀 반대를 천명하는 글들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청와대에 단일팀 결성을 반대하는 청원도 줄을 잇고 있다. 1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한 아이스하키 팬은 ‘단일팀 구성은 한국 여자 대표팀 선수 23명의 행복추구권과 직업행사의 자유 등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내용의 진정을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했다.

단일팀 문제는 이제 외국에서도 알고 있다. 우선 한국과 내달 10일 평창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붙는 스위스가 남·북이 엔트리를 늘려 단일팀 결성하는 것을 반대하고 나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스위스아이스하키협회는 17일 “단일팀을 통해 남·북한이 서로 가까워진다면 세계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지만 스포츠의 관점에서는 찬성하기 어렵다”며 “다른 모든 팀도 여자 대표팀에 많은 돈과 자원을 투자했다. 만약 남·북한 단일팀에 한해서만 엔트리를 증원한다면 이는 공정하지 않고 경쟁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다음달 14일 조별리그 최종전을 벌이는 일본도 이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도 이를 거론하고 있다. 지난 11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결성 추진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인사이드 더 게임스’는 17일 머리 감독의 국내 인터뷰를 전하면서 “명백한 어드밴티지를 부여하기 위해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뿐 아니라 다른 출전국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단일팀 엔트리 확대가 특혜임을 지적했다. 유력 통신사 로이터는 ‘단일팀 추진에 남한은 차가운 반응’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단일팀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국내 분위기를 전했다.

남과 북은 17일 차관급 실무회담을 통해 개막식 한반도기 공동 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다. 정부와 국민의 엇갈린 견해 속에 도종환 장관과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유승민 IOC 선수위원과 실무진은 ‘남·북한 올림픽 참가회의’를 위해 18일 스위스 로잔으로 떠난다. 로잔에 있는 IOC 본부에서 IOC와 대한체육회,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북한의 민족올림픽위원회 등이 머리를 맞대고 북한의 올림픽 참가 종목과 인원, 공동입장 여부 등을 확정지을 예정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이 모든 주제의 핵심으로 놓인 상황에서 어떤 결론이 도출될까 주목받고 있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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