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이승훈 \'평창올림픽 준비는 끝났다\'
이승훈이 지난해 30일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4회 전국 남녀 스프린트 스피드 선수권 대회 겸 제72회 전국남녀 종합 스피드 선수권 대회’ 남자 올라운드 1500m 경기를 펼치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매 순간 후회 없는 레이스를 하고 싶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해, 2018년이 밝았다. 홈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에서 영광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대표 선수들은 새해를 느낄 겨를도 없이 훈련에 열중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대되는 메달 후보가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승훈(30·대한항공)이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1만m 금메달, 5000m 은메달을 획득해 한국 빙속의 새 역사를 쓴 그는 지난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선 후배들과 함께 남자 팀추월 은메달을 목에 걸어 2회 연속 올림픽 메달, 그리고 3개 종목 메달의 기록을 썼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리는 이번 평창 올림픽은 더욱 뜻 깊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종목의 7개 레이스 중 단거리 500m와 1000m를 제외한 5종목에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개막식 이틀 뒤인 2월11일 5000m에서 첫 테이프를 끊는 그는 13일 1500m, 15일 1만m, 18일 팀추월 예선, 21일 팀추월 결승을 거쳐 폐막식 전날인 24일 매스스타트로 모든 일정을 마친다. 개막하는 날부터 폐막하는 날까지 그야말로 ‘이승훈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중 24명의 선수들이 한꺼번에 트랙 위를 질주하며 쇼트트랙처럼 순위 싸움을 벌이는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에 도전하고 있다. 김민석, 정재원과 함께 팀을 위해 질주하는 팀추월과 자신의 올림픽 첫 입상 종목 5000m에서도 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철 체력과 최상의 컨디션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는 2017년 12월29~30일 종합선수권에 출전해 실전 감각을 쌓는 등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 바쁜 시간 속에서도 짬을 내 스포츠서울과 신년인터뷰를 한 이승훈은 “매 순간 후회 없는 레이스를 하는 것이 평창 올림픽의 목표”라고 했다. 스스로 만족스런 경기를 하면 좋은 결과도 따라올 것이란 뜻이었다.

이승훈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이 지난 2014년 2월24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소치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확정지은 뒤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소치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홈에서 5종목 출전, 그 자체가 영광이죠.”

이승훈의 인생은 드라마와 같다.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 쇼트트랙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그는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로 종목을 바꿔 올림픽 티켓에 도전했는데 출전권을 따낸 것은 물론 대회 전까지 한국 신기록을 꾸준히 경신한 끝에 금메달과 은메달을 각각 하나씩 따내는 인생 역전을 이뤘다. 이승훈은 “(2010년)당시엔 올림픽 출전에 대한 목적이 있어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환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메달 부담을 털고)나로 하여금 편안한 경기를 할 수 있게 해줬던 것 같다”며 “이번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고 그래서 출전 자체가 매우 영광스럽다”고 2010년과 2018년 올림픽의 의미를 설명했다. 하지만 링크 위에 설 때마다 마음가짐이 특별해지는 것은 똑같다. 그는 “올림픽 무대는 레이스를 할 때마다 긴장감을 주는 것 같다”며 “그 동안 열심히 준비해 온 내 노력을 믿고 경기를 잘 치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쇼트트랙과 롱트랙(스피드스케이팅) 위를 질주했던 자신의 노력과 정성이 평창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는 이승훈 힘의 근원이다.

단일 올림픽에서 5개 종목에 출전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동계올림픽에선 스피드스케이팅에서나 가능한데 지난 1984년 사라예보 올림픽에서 ‘왕년의 빙속’ 스타 이영하가 500·1000·1500·5000·1만m 등 단거리와 중거리, 장거리를 가릴 것 없이 5개 종목에 나선 것이 유일하다. 그리고 34년의 시간을 넘어 이승훈이 5개 종목에 나서게 됐다. 이승훈은 “우선 5종목 출전권을 얻을 수 있어 매우 기쁘다”며 “주력 종목은 매스스타트와 팀추월이다. 주력 종목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각각의 종목에 대한 전략을 잘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이승훈의 평창 올림픽 스케줄을 보면 팀추월과 매스스타트가 후반부에 몰려 있고, 다른 종목은 전반부에 배치됐다. 주력 종목에서 메달을 얻기 위해선 1500·5000·1만m에서도 준수한 결과를 내 자신감을 얻는 게 중요하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특히 5000m는 올해 월드컵 3차 대회에서 1위와 5초 가량 뒤진 기록을 냈기 때문에 홈에서 분발하면 8년 만의 메달이 가능하다. 그가 5종목에서 최선의 레이스를 다짐하는 이유는 사흘 안에 3~4종목을 소화했던 월드컵과 달리 올림픽에선 2~3일 간격으로 한 종목씩 치른다는 점이다. 그는 “올림픽은 종목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게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스스타트와 팀추월 외에 다른 종목에서도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모태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모태범과 이상화, 이승훈(왼쪽부터)이 지난 2010년 2월25일 캐나다 밴쿠버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딴 메달을 선보이고 있다. 이승훈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각각 하나씩 땄다. 밴쿠버 | 박진업기자

◇울고 웃었던 매스스타트 “평창 레이스 기대해주세요.”

그래도 이승훈의 평창 올림픽을 논할 때 역시 매스스타트를 빼 놓을 수 없다. 400m 트랙을 16바퀴 도는 매스스타트는 24명의 선수들이 레인 구분 없이 한꺼번에 달리기 때문에 ‘롱트랙의 쇼트트랙’으로 불린다. 이승훈은 올해 3차례 월드컵 중 두 차례에서 우승하며 이 종목 최강자임을 재확인했다. 반면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3차 대회에선 일찌감치 치고 나선 안드레아 지오반니(이탈리아)의 작전에 말려 13위라는 ‘쓴 맛’을 보기도 했다. 그는 지난 3차례 월드컵 매스스타트 레이스가 결과보다는 과정의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매스스타트의 경우 한 차례의 레이스로 승패가 좌우된다. 그래서 월드컵에 나선 선수들이 다양한 접근법으로 경기를 운영해 나갔다”는 그는 “경기 운영 전략을 짜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초반에 치고 나가는 작전, 선두권을 형성하면서 레이스 하는 작전 등 여러가지 작전들을 월드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논의 중이지만 레이스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며 평창에서의 ‘금메달 작전’에 대한 기대감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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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두솔비 부부. 제공 | 브라보앤뉴

◇아내의 당부 “차분하게, 편안하게, 재미있게”

이승훈은 지난 6월 신부 두솔비씨와 6년 열애 끝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가정을 꾸린 뒤 월드컵에서 상승세를 탔고 올림픽 5종목 출전권까지 얻었으니 ‘내조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그는 “항상 차분하게, 편안하게, 재미있게 경기하라고 많이 이야기 해준다”는 말로 경기 전 아내로부터 듣는 말을 살짝 공개했다. 그래서 평창 올림픽이 끝이 아님을 전했다. 중·장거리 선수들의 경우 한국 대표팀을 지도하는 네덜란드 출신 보프 더 용(2006년 토리노 올림픽 1만m 금메달) 코치처럼 30대 중·후반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평창 올림픽 직후인 3월6일 만30살이 되는 이승훈에겐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 그는 “매스스타트도 그렇고 다른 종목을 포함해서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마주하고 있는 평창 올림픽에 집중하겠다”고 털어놨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의 악연도 이번에 날려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이승훈은 지난해 2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팀추월 도중 넘어져 부상을 당했다. 이후 예정된 매스스타트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 때의 아쉬움을 올림픽 환호로 몇 배 이상 갚을 생각이다. 그는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빙질은 아주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지난 아픔을 바탕으로 이번엔 더 조심하겠다. 방심 없이 레이스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홈 관중의 압도적인 응원은 이전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에서 그가 겪어보지 못했던, 역주를 위한 또 다른 에너지다. “실제로 많은 팬 분들의 응원을 받을 때 힘이 난다”는 이승훈은 “국민 여러분들이 경기장에 오셔서 재밌는 경기 즐기셨으면 한다. 이번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엔 매스스타트라는 새로운 종목도 생겼고 대표팀에도 잠재력 있는 선수들이 들어와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 좋은 내용과 소식을 전달드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평창 올림픽이 국민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이벤트가 됐으면 한다”며 새해 인사를 올렸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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