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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하늘에서 물려받은 천재성은 축복이다. 동물적인 반사신경이 요구되는 스포츠 분야에선 더욱 그렇다. 신체의 활동으로 표현되는 스포츠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운동신경에 담아내기란 그리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포츠에서 타고난 재능은 경기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단기간에 기술적 숙련도를 높이는 더할 나위없는 무기라는 사실은 대체적으로 맞는 말이다.

한국 탁구계에 단비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 최고 권위의 대회에서 자신보다 나이 많은 형과 언니들을 보란 듯이 꺾은 어린 천재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오정초 5년생인 오준성(11·남)과 청명중 1년생 신유빈(13·여)이다. 둘은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 71회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에서 자신들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국가대표 출신 오상은의 아들인 오준성은 지난 25일 대회 남자 개인단식 3회전에서 실업선수 박정우(KGC인삼공사)에 0-3으로 패해 이변의 마침표를 찍긴 했지만 그가 불러일으킨 파장은 자못 컸다. 대회 1회전에서 고교생 손석현(아산고 1년)을 3-2로 물리친 데 이어 2회전에서는 실업 선수 강지훈(한국수자원공사)을 3-1로 격파하고 3회전에 올랐다. 초·중·고, 대학, 일반 구분 없이 남녀 각각 일인자를 가리는 국내 최고 권위의 탁구 대회에서 초등생이 3회전에 오른 것은 오준성이 최초다. 탁구계는 천재의 등장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여자부에서도 일찌감치 탁구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던 신유빈이 대회 1회전에서 여고 랭킹 2위 강다연(문산수억고)을 3-2로 꺾으며 기세를 이어갔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대학생 선수를 꺾은 지 4년 만에 다시 실업팀 입단을 앞둔 ‘언니’를 제압한 것이다. 아쉽게도 2회전에서 만난 실업선수 이슬(미래에셋대우)에 1-3으로 져 3회전 진출은 불발됐지만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뽐냈다.

앞서 말한대로 스포츠에서 천재성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수많은 천재들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바로 스포츠계의 냉정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재의 등장보다 이들을 어떻게 기대치에 걸맞는 선수로 육성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스포츠는 흔히 ‘블랙박스’로 불린다. 다른 분야에 견줘 투입에 따른 산출을 좀처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경기력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가 삐끗해도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게 바로 스포츠다.

오준성과 신유빈은 그나마 어린 선수들이 꽃을 피우는 토양이 마련된 탁구계에서 나온 선수라는 게 그나마 다행스럽다. 천재성을 지닌 어린 선수들을 육성해본 지도자의 풍부한 경험과 그들이 무난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이 국내 탁구계에는 어느 정도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턱하니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천재성을 지닌 어린 선수들을 기대치에 걸맞는 선수로 육성하는데 절대 간과해서는 안될 게 있다. 바로 스포츠와 별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사회성이다. 또래집단과 어울리며 서로 교호작용을 하며 성장하는 게 바로 사회성의 요체다. 선수들의 경기력에만 치중하다보면 체력과 기술, 좀 더 깊이 들어간다면 심리적 트레이닝에만 관심을 기울일 터이지만 선수 지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마음의 밭’을 가꾸는 것이다. 어린 선수들은 필연적으로 외부의 코칭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타인으로부터의 지도를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게 바로 스포츠에서 사회성이 지닌 함의(含意)다. 한국 스포츠에서 어린 천재들이 반짝 기세를 올리다 은막 뒤로 사라지는 경우는 허다하다. 이들 중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사회와 격리된 채 ‘운동 기계’로만 키워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선수는 주니어 시절까지는 버텨낼 수 있지만 정작 승부를 걸어야 할 성인 무대에선 창의성이 떨어져 그저그런 선수로 전락하고 만다.

국내 프로축구에서 재능있는 중학교 선수들을 너도 나도 자퇴시켜 프로에 입문시키는 요상한 바람이 분 적이 있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평범하게 또래집단과 교우하며 운동했던 선수들과 견줘보면 성공률이 훨씬 떨어졌다. 이는 곧 경기력의 제 요소 중 사회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입증해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훌륭한 묘목이 모두 튼실한 나무로 성장할 수는 없다. 한국 스포츠의 어린 새싹들을 기대했던 큰 나무로 키워내기 위해선 스포츠 현장에서 간과하기 쉬운 사회성이라는 요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성이 거세된 천재는 결코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없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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