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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김진수(오른쪽)와 북한 박명성이 12일 동아시안컵 남자부 2차전 전반전 뒤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도쿄=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한·중·일·북의 남·녀 대표팀이 2017년의 마지막 달을 장식한 동아시안컵이 끝났다. ‘신태용호’의 남자부 우승으로 대회가 막을 내린 가운데 자국이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의 참가가 화제를 뿌렸다. 일본은 남·녀 대표팀이 나란히 2연승을 달리다가 한국(남자부)과 북한(여자부)에 최종전에서 완패, 안방에서 고개를 숙였다. 중국은 존재감이 없었다. 지난 6일 여자부 공식 기자회견부터 유일하게 이번 대회 전 과정을 취재한 스포츠서울이 뒷 얘기를 풀어놓는다.

◇“한국이 최강…이겼는데 와인을 왜 안 마시나”

신태용 감독과 북한 남자대표팀을 맡고 있는 노르웨이 출신의 요른 안데르센 감독은 대회 내내 친밀하게 다가갔다. 지난 7일 남자부 공식 회견부터 서로의 동시통역시 헤드셋을 씌워주며 인사를 나눴고, 지난 12일 남·북전 뒤엔 이어 열린 중국과 일본의 맞대결을 함께 관전했다. 북한은 이번 대회에서 중국과 1-1로 비겨 1무2패로 최하위를 기록했는데 상대팀 중에서 한국에 특별히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데르센 감독은 중·일전을 아내와 함께 보면서 옆에 앉은 신 감독에게 와인을 권했는데 신 감독이 사양하자 “승리한 팀 감독이 왜 와인을 안 마시냐”고 반문하며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최강이다”고 했다. 1990년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왕 출신인 그는 남·북전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한국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국전 멤버에서 6명을 바꿨지만 체력이나 기술에서 좋은 선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린 공격하는 것도 힘들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16일 중국과 1-1로 비긴 뒤에도 “일본이나 중국은 이길 수 있었다”며 한국전 만큼은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했다.

◇“즐라탄? 스웨덴 더 약해질 수도…”

‘신태용호’는 동아시안컵 기간 중 내년 러시아 월드컵 베이스캠프로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결정됐음을 알리는 등 ‘본고사’ 준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동아시안컵이 끝난 만큼 이제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스웨덴과 멕시코, 독일의 정보 수집에도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축구팬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스웨덴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대표팀에 복귀할 것인가다. 그는 2016년 유럽축구선수권 뒤 대표팀을 떠났지만 스웨덴 후배 선수들이 복귀를 권유하는 중이다. 그러나 ‘신태용호’ 코칭스태프는 이브라히모비치의 리턴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대표팀 관계자는 “이브라히모비치가 오면 오히려 스웨덴의 전력이 떨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가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무게감이 너무 커서 스웨덴의 팀 플레이 구현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이브라히모비치의 생각과도 같다. 그는 지난 달 “대표팀 은퇴 번복 생각은 없다. 내가 빠지면서 스웨덴 대표팀이 자유롭게 플레이 한다”고 밝혔다. 2006년 이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던 스웨덴은 이브라히모비치가 없는 상황에서 이탈리아를 누르고 러시아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북한의 진짜 감독은 누구야?

북한은 일본 정부의 특별 비자를 통해 68명의 선수단이 참가, 이슈를 일으켰다. 그들은 공식 훈련을 제외하곤 훈련장과 숙소를 일체 비밀에 부쳤는데, 남자 대표팀 숙소였던 신주쿠의 게이오 플라자 호텔엔 몇몇 언론의 취재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바에서 묵었던 여자 대표팀은 음식 문제로 초반 대회 조직위에 항의하기도 했다. 그들은 “밥을 이렇게 주면 한 시간 만에 배가 꺼진다”고 했다. 친북 재일교포 단체인 조선총련 인사들이 음식을 직접 공수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 윤정수 남자 대표팀 단장의 행보도 화제였다. 2006년과 2014년 월드컵 예선에서 북한 지휘봉을 잡았던 그는 단장임에도 벤치에 앉아 시선을 끌었다. 급기야 중국과의 최종전에선 테크니컬 지역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안데르센과 윤정수 중 누가 북한 감독인지 헷갈리게 하는 행동을 펼쳤다.

◇아리랑 함께 부른 코리아…박수와 야유 엇갈린 일본

남북은 단합했고, 일본은 갈라졌다. ‘붉은 악마’는 16일 한·일전을 앞두고 120명이 도쿄를 찾아 일본 내 한국 응원단과 합세했다. 규모가 수백여명이 됐다. 킥오프 직전 아리랑을 부르면서 분위기를 띄웠는데 마침 ‘붉은 악마’ 옆이 재일교포들로 이뤄진 북한 응원단이었다. 300~400명 가량 됐던 북한 응원단은 ‘붉은 악마’와 함께 아리랑을 합창하며 민족이 하나라는 것을 알렸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북·중전 뒤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필승 조선’이 새겨진 막대 풍선을 든 채 한·일전에서 ‘붉은 악마’의 박수에 장단을 맞췄다. 반면 일본의 ‘울트라 닛폰’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전반을 1-3으로 뒤진 채 마치자 웅성거렸던 그들은 후반에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3골 차로 참패하자 일부는 박수를, 일부는 야유를 쏟아냈다. ‘신태용호’의 몸짓에 ‘울트라 닛폰’의 단결력도 완전히 붕괴됐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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