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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 체육개혁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강도높게 시도했던 체육개혁이 사실은 체육의 개악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숭고한 체육개혁이 최순실의 이해관계 관철의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건 자존심 강한 체육인들에겐 모욕이자 수치였다. 더욱이 지난 정권은 지각있고 양심있는 일부 체육인들을 정부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사소한 흠결을 침소봉대해 부패사범으로 낙인찍는 반인권적 작태도 서슴지 않았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적어도 체육계 만큼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이유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지 어언 7개월이 다 돼간다. 촛불혁명의 진원지인 체육계는 과연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다른 분야에 견줘 개혁의 진행 속도가 너무 더딘 듯해 안타깝다. 흔히 속도를 논할 때 늘 따라붙는 게 방향의 문제다. 방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방향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쳤거나, 방향이 결정적 사건을 계기로 특정한 쪽으로 정해졌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경우에는 오히려 속도가 더 중요할 수 있다. 특히 새로운 틀이 강력하게 요구되는 개혁이 사회적 합의로 이론의 여지가 없게 됐을 때는 방향성에 매몰돼 우왕좌왕하기보다는 가급적 빠른 속도로 개혁을 진행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개혁에서 속도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속도가 더디면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인적 청산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개혁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 개혁 대상자들이 교묘하게 변신하거나, 날선 개혁의 칼날을 피해나갈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체육계에서 벌써 현실화되고 있다. 체육개혁이 더뎌지면서 과거 정권에서 적극적으로 부역했던 인사들이 교묘하게 위장하거나, 겉모습을 속이는 화려한 분칠을 통해 가증스런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체육단체 통합과정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통합방식을 밀어붙이는 전위대 역할을 했던 일부 인사들은 정권 교체 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진보진영의 겉옷을 빌려 입고 자신의 과거행적에 물타기를 하고 있다.

개혁에서 속도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유해물질이 토양을 오염시키듯 개혁대상이 건재하면 해당 분야를 더욱 황폐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는 부류들은 늘 그렇듯 생명력이 강하다. 최순실 사태의 시발점이 된 대한승마협회를 보자. 부정부패의 핵심세력들이 건재하면서 여전히 양심세력을 비웃고 있는 건 그나마 약과다. 그들의 건재는 조직내 많은 사람들의 눈을 흐리며 협회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가슴 아프다.

개혁의 속도가 더뎌지면 전체의 개혁의지마저 감퇴될 수 있기에 개혁은 빠른 속도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정권이 교체된 뒤 체육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개혁의지가 높았지만 지금은 부끄럽게도 그 열기와 의지가 싸늘하다. 개혁을 이끌어야할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여러가지 이유로 개혁의 강한 드라이브를 걸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문체부는 아시다시피 최순실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던 정부 부처로서 개혁의 주체라기 보다 대상이라는 약점이 있고, 체육회는 태생적으로 개혁보다는 보수적 토양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어 현 정권의 체육개혁 속도가 예상 외로 더딘 것 같다.

어떤 일을 처리할 때 ‘골든 아워’라는 게 있다. 사건과 사고에서 가급적 이른 시간 안에 조치를 취해야 원하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어 만들어진 용어다. 개혁에도 ‘골든 아워’가 중요하다. 수술에 견줄 수 있는 개혁이라면 도려내야할 부분은 이른 시일 내에 도려내는 게 맞다. 수술이 필요한 사람을 마냥 수술대에 올려 놓고 고민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체육개혁의 방향성은 이미 정해졌다. 곪아터진 부위가 더 이상 다른 부위로 확산되기 전에 재빠른 칼질로 신속하게 수술하는 게 환자에게 가장 좋다. 방향을 강조하는 건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누구나 공감하는 개혁의 방향이 정해졌다면 속도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지금의 체육개혁은 더뎌도 너무 더디다. 속도를 내지 못하면 결코 제대로 된 개혁을 완수할 수 없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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