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김대령 인턴기자] "박정태(48) 같은 선수만 있었으면…"


롯데 자이언츠가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팬들의 입에서는 여전히 박정태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은퇴한 지 13년. 박정태가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기량만 뛰어났던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정태는 지난 1991년 팀내 안타 1위(132개), 타율 2위(0.285)라는 기록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해 프로 무대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첫 시즌 '신인' 이상의 존재감을 뿜어냈고 두 번째 시즌에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당시 그가 때려낸 43개의 최다 2루타 기록은 지난 2016년 삼성 라이온즈의 최형우가 깰 때까지 약 24년간 이어졌다.


매서운 상승세를 달리던 1993시즌에는 선수생활 최악의 위기가 찾아왔다. 5월 23일 태평양 돌핀스와 경기 중 슬라이딩을 하다가 발목 골절을 당해 쓰러졌다. 선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큰 부상이었다. 박정태는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팀을 경기장 밖에서 지켜봐야 했고, 롯데는 갑작스러운 핵심 선수의 공백을 제대로 메꾸지 못한 채 두 시즌 연속 6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특유의 근성은 다시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1999년. 박정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시즌이 찾아왔다. 최고의 순간은 6월3일 한화 이글스전이었다. 이전 경기에서 김기태가 보유하고 있던 26경기 연속 안타 기록과 동률을 이룬 박정태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그는 보란 듯이 1회초부터 안타를 날리며 신기록을 작성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신기록 행진은 31경기까지 이어졌다. 이 기록은 2004년 박종호에 의해 깨졌지만, 아직도 2위 기록으로 당당히 남아있다.


오랜 기간 쌓아올린 롯데에서의 위상은 선수 생활 막바지였던 2003시즌이 증명한다. 시즌을 앞두고 롯데가 박정태와 계약을 포기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팬들은 구단 사무실의 전화기가 불이 나도록 항의전화를 하고 홈페이지를 마비시킬 정도로 항의글을 쏟아냈다. 이에 힘입어 박정태는 2년 더 롯데의 선수로 남을 수 있었다.


2004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후에는 롯데의 2군 타격코치와 감독을 거쳐 1군 타격코치 자리까지 올라 지도자로서도 롯데와 함께했다.


<1999년 6월 10일 스포츠서울 1면>


박정태 31연속 경기 안타 행진


'작은 거인이 아니라 진짜 거인이라고 불러주세요' 롯데 박정태가 두산전 4회말 1사서 좌전안타를 터뜨려 자신의 연속 경기 안타 기록을 31게임으로 늘렸다. 그의 안타 행진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리그 내 경기로 선두팀과 하위팀이 맞붙은 9일. 리그 2위인 두산, LG가 선두 롯데와 삼성의 발목을 각각 잡았다.


롯데의 박정태는 두산 강병규를 상대로 4회 좌전안타를 뽑아내 31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갔다. 31경기 연속 안타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지난 80년 이후 없었고 일본도 79년 이후 맥이 끊긴 대기록이다.


마산에서 드림리그의 최강자 롯데를 만난 두산은 심정수, 최훈재의 홈런으로 기선을 잡아 12-1로 이겼다. 양 팀의 승차는 2게임으로 줄었다. 강병규는 박정태와 당당하게 승부. 안타는 맞았지만 5.2이닝을 버티고 롯데전 3연패를 끊었다.



프로 첫 시즌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던 박정태.


1998시즌부터 1999시즌까지는 박정태 최고의 전성기였다.


프로 데뷔 후 10번째 시즌을 맞았던 2000시즌.


2002시즌에는 프로 통산 1,000경기 출전을 달성하며 명실상부 '롯데맨'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프로야구 한 세대를 풍미한 박정태의 은퇴식.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했다. 2013년 WBC 대표팀 타격 코치 시절.


'악바리'부터 '탱크'까지 박정태를 수식하는 별명에서는 그를 잘 모르는 사람도 느낄 수 있는 공통적인 한가지 느낌이 있다. 바로 근성이다. 잡을 수 없을 것 같던 공도 끝까지 뛰어가 잡아내던 2루수 박정태, 그라운드 밖에서도 팀을 독려하던 박정태의 모습은 아직도 롯데 팬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2012시즌을 끝으로 프로야구계에서 물러난 뒤 다문화가정, 저소득층, 장애인, 탈북자, 비행청소년 등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한 야구 보급에 앞장섰다. 지난 2015년 레인보우희망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으로 취임해 야구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전파하는 데 힘쓰고 있다. '재단 이사장'으로 변신한 박정태의 인터뷰는 오는 7일 공개된다.


daeryeong@sportsseoul.com


사진ㅣ스포츠서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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