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김병학 인턴기자] "매일 편지와 선물이 쌀 포대 10자루 이상씩 왔어요. 연예 잡지에서 매주 서태지와 아이들과 1, 2위를 다투기도 했고요. 정말 즐거웠던 시절이었죠."


'코트 위의 황태자'라는 별명이 농구스타 우지원에게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귀공자 같은 외모와 출중한 농구 실력으로 숱한 팬들의 마음을 홀린 그는 지금까지도 국내 농구계에서 '최고의 인기스타'로 회자되고 있다.


우지원은 등장부터 남달랐다.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았던 시절, 연세대학교 예비 소속으로 경기를 뛰었다. 데뷔 전에서 파릇파릇한 학생이 당대 최고의 스타 김유택을 홀로 막아내고 15득점 5리바운드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겨 당시 신문들은 일제히 '혜성처럼 나타났다'며 앞다퉈 1면에 실었다.


이후 그의 행보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대학교 1학년, 고등학교(경복고) 동창이자 절친이었던 고려대학교 전희철을 밀어내고 신인상을 거머쥐었으며, 2학년 때는 주연으로 활약해 농구대잔치 사상 첫 대학팀 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뤘다. 귀공자 같은 외모,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버금가는 인기 그리고 흠잡을 데 없는 실력까지. 대학교 시절 우지원은 누구나 탐낼 만한 '슈퍼스타'였다.


프로 팀에서도 명성을 그대로 이어갔다. 우지원의 장기이자 특기인 3점 슛으로 팬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비록 프로 초기 때, 개인 성적에 비해 팀 성적이 좋지 못해 '반쪽짜리 슈터'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평균 득점 20점, 3점 슛 성공률 40% 이상 등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없다.


칭찬과 비난이 공존했던 우지원은 2002년 울산 현대모비스에 입단한 뒤로 진정한 코트 위의 황태자로 거듭났다.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식스맨으로 변신해 2007년과 2010년에는 그토록 원하던 우승반지도 손에 넣었다. 그를 둘러싼 세간의 평가도 달라졌다.


2010년 10월 15일. 성대한 은퇴식이 열렸다. 우지원은 모비스의 두 번째 영구결번(10번)을 받으며 코트에서 퇴장하는 순간까지도 아쉬움과 응원의 박수를 한 몸에 받았다. 그를 향한 팬들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2010년 10월 15일 스포츠서울 12면>


개막전엔…은퇴 우지원 영구결번식 큰 관심


개막전은 어느 경기보다 볼거리가 많다. 각 팀들은 팬들에게 새 시즌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 팬들을 반긴다.


2010-2011시즌 개막전 행사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영구 결번식'이다. 우지원, 문경은, 이상민의 영구결번식이 차례로 열린다.


모비스는 15일 인삼공사와 공식 개막전에 앞서 우지원의 은퇴식과 영구 결번식(10번)을 갖는다. 우지원의 선수 시절 활약상과 유재학 감독, 동기생인 SK 전희철 운영팀장의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정석수 구단주가 공로패, 황금 기념품을 전달한다.


경복고와 연세대를 나온 우지원은 프로농구 대우, 삼성 등을 거쳐 모비스에서 선수로 활약했으며 잘 생긴 외모와 정확한 외곽슛 능력을 갖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프로 통산 성적은 경기당 12.6점에 2.5리바운드였다.


SK도 16일 LG와 홈 개막전 하프타임 때 2군 코치를 맡은 문경은의 영구 결번식(10번)을 연다. 선후배 인사, 문경은의 10번 유니폼 계양 등으로 진행된다.


KCC는 14일 이상민의 등번호 11번을 구단 사상 처음으로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고 17일 삼성과 홈 개막전에 앞서 영구 결번식을 치르기로 했다. 이상민의 활약상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되고 이상민과 호흡을 맞췄던 추승균이 11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계양한다.


구단은 이상민의 영구 결번 유니폼이 새겨진 손수건을 팬들에게 선물할 계획이다.


1995년 연세대학교 시절 우지원이 3점슛을 넣고 포효하고 있다.



1996년 3월 7일. 스포츠서울 르까프대상 남자 최고 포워드상을 수상한 우지원



1999년 6월 7일. 농구선수 최초 故 앙드레김 패션쇼에 모델로 나선 우지원


2006~2007 시즌 현대모비스 소속으로 통합 우승을 차지한 우지원이 우승 세리머니로 그물 커팅식을 진행하고 있다.



2009년 식스맨으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우지원



2010년 10월 15일. 은퇴식 도중 유재학 감독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고 있는 우지원.


우지원은 이제 손에 농구공 대신 마이크를 쥐었다. 스포츠 중계부터 예능, 드라마 출연까지 스포테이너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유소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등 농구에 대한 열정도 잃지 않았다.


아카데미 단장과 스포테이너. 직업이 두 개가 됐으니 선수 시절보다 해야 할 일도 두 배로 늘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 "요즘 비행기 탈 일이 너무 많아졌다"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농구 주제만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띤 이야기들을 쏟아냈는데 이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비화들을 잔뜩 꺼내놓기도 했다. 오는 30일, 그때의 이야기들을 '리와人드'를 통해 다시 한번 꺼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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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ㅣ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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