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하러 갔나.”

 이승엽(41·은퇴)은 구자욱(24·삼성 라이온즈)에게 일부러 핀잔 섞인 농담으로 아픈 가슴을 콕 찔렀다.

 부담이 클 때는 농담 한마디가 반전의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다.

 구자욱은 일본 도쿄돔에서 진행 중인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2017, 2경기에서 8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처음 뽑힌 성인 대표팀에서 주장 완장을 찬 그는 팀이 결승 진출을 확정한 17일에도 활짝 웃다가 이내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결승 진출에 안도하면서도 자

신의 부진을 자책했다.

 등번호 36번의 무게감도 컸다.

 이승엽은 17일 한국대표팀과 대만의 2차전 경기 중계방송 해설을 하다 “대만전을 앞두고 구자욱에게 ‘관광하러 갔나’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부담이 클 텐데, 이런 농담으로라도 긴장을 풀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APBC 대표팀에 뽑힌 뒤 내게 ‘국제대회에서 선배님 등번호를 써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후에는 오히려 내가 ‘제발 내 번호 달아달

라. 마음 변치 말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선동열 대표팀 감독은 16일 일본전과 17일 대만전에 구자욱을 3번타자로 기용했다.

 이번 대표팀에서 2017시즌 20홈런 이상을 친 타자는 김하성과 구자욱, 두 명뿐이다. 김하성은 23홈런, 구자욱은 21홈런을 쳤다.

 구자욱은 정확도도 겸비했다. 선 감독은 구자욱에게 때론 해결하고 때론 김하성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기대했다.

 앞선 두 경기에서는 구자욱 카드가 통하지 않았다.

 19일 도쿄돔에서 열리는 일본과 결승전은 구자욱에게 주어진 마지막 설욕 기회다.

 등번호 36을 단 한국 대표팀 중심타자 이승엽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2006년 3월 5일 도쿄돔에서 열린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결승전 일본과 경기에서 이승엽은 1-2로 뒤진 8회 초 1사 1루, 이시이 히로토시를 공략해 역전 우월 투런포를 터뜨려 한국의 승리를 견인했다.

 장소는 다르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예선 내내 부진하다. 일본과 준결승에서 2-2 동점이던 8회 말 1사 1루에서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결승 투런포를 쳐냈다.

 ‘원조 36번’은 부진에 시달리다가도 결정적인 한 방으로 팀을 구했다.

 구자욱에게도 반전의 한 방이 절실하다.

 (서울=연합뉴스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