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권준영기자] '연예인들의 연예인' 김혜수가 돌아왔다. 어느덧 31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 배우인 그는 자체만으로도 강인하고도 완숙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김혜수는 자신에겐 철저한 잣대와 기준을 삼고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 속엔 여리고 가냘픈 심연이 엿보였다. '김혜수'라는 이름 석자 이면에는 아름답고 깊은 감성이 담겨있다.


존재감과 연기력으로 관객에게 믿음을 주는 그가 영화 '미옥'으로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 2년 전 칸 국제영화제에 진출한 '차이나타운'으로 여성 느와르를 처음 경험한 김혜수는 '미옥'으로 같은 장르에 두 번째 도전을 시도한 것.


지난 9일 개봉한 '미옥'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14일 오전 6시40분 현재 공포물 '해피 데스데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토르:라그나로크', 마동석 주연의 '부라더', '범죄도시'에 이어 박스오피스 5위, 누적관객수 20만 9870명을 기록 중이다.


영화 '친구, '달콤한 인생', '범죄와의 전쟁', '비열한 거리', '신세계', '아저씨', '브이아이피' 등과 같은 느와르 액션 장르는 남성 배우들의 전유물로 여겨진지 오래다. 김혜수는 선 굵은 액션부터 섬세한 감정 신까지 모두 녹여내면서 그간 느와르가 '남자의 것'으로만 치부되던 일각의 시선을 누그러뜨렸다.


'미옥'이 개봉 초기 흥행성적은 기대에 못미쳤지만 제50회 시체스영화제 포커스 아시아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다. 한국 영화로는 '신세계(2013)', '베테랑(2015)', '곡성(2016)'이 이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난 9일 개봉한 '미옥'은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키워낸 언더 보스 나현정(김혜수 분)과 그를 위해 조직의 해결사가 된 임상훈(이선균 분), 출세를 눈앞에 두고 이들에게 덜미를 잡힌 최대식(이희준 분) 등 벼랑 끝에서 마지막 기회를 잡은 세 사람의 물고 물리는 전쟁을 그린 느와르다.


김혜수는 '미옥'에서 처음으로 액션에 도전했다. 촬영 기간인 석 달간 근육통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총을 들고 있는 모습과 은빛 반 삭발 헤어스타일이 주는 강렬함은 김혜수 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미옥'은 여성 느와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영화의 탄생을 기대케했다.


김혜수가 맡은 현정은 개인사의 비밀을 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그는 남성과 붙을 때 느껴지는 일반적 여성 이미지와는 확실히 다른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극중 현정은 범죄 조직의 2인자로 매우 치밀하게 일하고 인정도 받지만, 정작 욕망을 감춘 채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인물이다. 탁월한 센스에 강렬하고 차가운 인상을 지녔지만 알고 보면 평범한 삶을 꿈꾸며 모든 걸 끝내기를 소망하는 여자다.


김혜수는 이런 '미옥'의 아이러니한 점을 매력적으로 표현해낸다. 잔인하고도 묵직한 액션부터 임상훈과의 복잡 미묘한 감정선,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드러나는 캐릭터의 감춰진 사연까지.


상당히 복합적인 캐릭터부터 자신만의 색깔을 실어 '뜨거운 욕망의 차가운 끝'을 보여준다. 이기는 사람은 모두 다 갖는 정글과 같은 세계에서 무엇을 해도 결코 가질 수 없는 여자로 완벽하게 피어난다.


무엇보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김혜수여서 가능한 깊은 내공의 향기로 그 어떤 느와르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를 완성했다.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하지만 강인하면서도 섬세하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거친 상남자들의 느와르와는 전혀 다른 색깔의 장르를 보여준다.


김혜수는 1985년 10월, 16살 때 네슬레 '마일로' TV 광고를 통해 연예계 활동에 첫 단추를 뀄다. 1986년 영화 '깜보'로 스크린에 정식 데뷔했다. 당시 16세 어린 나이의 김혜수는 불량소녀 나영 역을 맡아 풋풋한 매력으로 대중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수렁에서 건전 내 딸 2', '그 마지막 겨울', '오세암' 등 다양한 작품으로 꾸준히 활동하며 관객들을 찾았다.


김혜수는 유난히 데뷔 때부터 성숙한 역할을 자주 맡았다. TV 단막극 '인형의 교실'에서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어른들은 몰라요'에선 유치원 교사였다. 인기 사극 '사모곡'에선 연인이 길용우, 드라마 '꽃 피고 새 울면'에선 노주현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채시라, 하희라, 이미연 등과 하이틴 스타로 인기를 끌었던 1980년대 중후반부터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1990년대에는 진행자로 다방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에도 김혜수의 활약은 계속됐다. 영화 '신라의 달밤'으로 코믹한 모습을 선보인 김혜수는 '쓰리'와 '분홍신' 등 공포 장르까지 섭렵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 '바람피우기 좋은 날'에서는 유부녀로, '좋지 아니한가'에서는 백수 이모 역으로 매 작품마다 화려한 연기 변신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김혜수하면 빼놓을 수 없는 '관능적인 매력'은 영화 '얼굴 없는 미녀'와 '타짜'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우아하면서도 섹시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김혜수는 각종 레드 카펫과 화보, 광고로 스크린과 안방극장 어디에서도 대체불가한 독보적인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15년 개봉한 영화 '차이나 타운'에서는 몸에 보형물을 채워 넣어 만든 두둑한 뱃살과 하얗게 샌 머리카락 등으로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 '마우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학창시절 데뷔와 동시에 톱스타 반열에 오른 김혜수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타공인 연기력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대표 섹시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그는 만인의 이상형으로 30년째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스타라 부를 만하다.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는 지난 30년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성채를 구축했다. 특히 남성 배우 중심으로 움직이는 충무로의 한계를 보란 듯이 뛰어넘었다.


또한 그는 긴 시간 동안 굵직한 스캔들 없이 오로지 연기에만 몰두하며 대중에게 굵고 길게 사랑받고 있다. 매 작품마다 화제를 모으며 연기 변주를 해온 김혜수가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다시 한번 정점을 찍을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kjy@sportsseoul.com


사진ㅣ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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