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서울 서재응 객원기자]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KS)에 진출하면 필승하는 전통이 있다. 해태시절 9차례를 포함해 지난 2009년 10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에도 ‘전통은 반드시 이어진다’는 확고한 믿음을 바탕에 뒀다.

전통이라는 것이 무서운 이유다. KS 1차전을 패한 뒤 양현종의 완봉 역투로 잠자던 호랑이 본능이 깨어났지만 시리즈 전체를 놓고 볼 때에는 3차전 선발로 나선 팻 딘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타자들이 3주간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첫 두 경기를 치러야 감각이 돌아올 수 있다는 예상을 했다. 3차전부터는 타격 싸움에서 대등한 위치라고 볼 때 우승 경험이 없는 투수들이 버티는 마운드 싸움이 시리즈 전체 판도를 가를 것으로 봤다.

이 때문에 팻 딘의 3차전 역투가 중요했고 결과적으로 선발 투수들의 호투 릴레이로 이어졌다. 4차전 선발로 나선 임기영에게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나면 내 공을 던질 수 있다. 이는 구위로 타자를 압도할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덕분이다. 임기영의 4차전 역투가 없었더라면 5차전을 앞두고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두산을 벼랑 끝까지 몰아넣을 수 없었다.

올해 KS는 정규시즌 우승팀 특히 마운드가 강한 팀일수록 KS에서 강점을 보인다는 일종의 공식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올해 KIA가 정규시즌 우승을 이룰 수 있었던 강력한 동력은 시즌 초반 무서운 기세를 탄 1, 2, 4선발(헥터 노에시, 양현종, 임기영)의 힘이었다. 선발이 경기를 만들어준 덕분에 타자들도 여유를 갖고 경기에 임했다. 후반기에는 팻 딘까지 가세해 지난해 두산의 판타스틱 4를 위협하는 선발군단을 완성했다. 그 힘이 KS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비록 헥터가 7회말 급격히 흔들렸지만 양현종을 필두로 세 명의 선발진이 구위로 두산 선발 투수들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투수를 했던 입장에서 보면 3주간 휴식이 경기 운용 플랜을 짜는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 플레이오프(PO)를 치르고 KS에 나서는 두산이 아무리 막강한 투수진을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힘을 비축한 KIA의 강속구 투수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었다. 지난 4차전까지 KIA 벤치는 한 박자 빠른 투수교체로 이득을 본 것도 같은 이유다.

여기에 선수단 전체에 깊숙히 퍼져있는 ‘타이거즈는 KS에 진출하면 당연히 우승한다’는 확고한 믿음도 3차전부터 정규시즌 때와 같은 경기력을 발휘한 동력이 됐다. ‘타이거즈는 KS에 진출만 하면 우승한다’는 보이지 않는 힘이 선수들의 위축됐던 마음을 녹였다. 지난 2009년 통산 10번째, KIA로 이름을 바꾼 뒤 첫 KS 우승을 차지했을 때에도 그랬다. 베테랑부터 어린선수들까지 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경기에 임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됐고, 그 마무리를 에이스 양현종이 맡으면서 화룡정점이 됐다. 전통을 지키는 ‘타이거즈의 힘’을 8년 만에 재확인했다.

객원기자·SBS스포츠해설위원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