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호의 그랜드슬램, 아쉬운 양의지[SS포토]
KIA 7번 이범호가 30일 열린 KIA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5차전 3회초 2사 만루에서 니퍼트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뽑아낸후 환호하고 있다. KIA가 5-0으로 리드중이다. 잠실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잠실=스포츠서울 박영길 객원기자] 승부는 한 순간에 결정된다. 60년 동안 야구를 하고 봐왔으나 이 법칙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KS) 5차전도 그랬다. 양의지의 아쉬운 리드 하나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만들었다. 마지막 승부답지 않은 투수 리드였다. 로저 버나디나는 KS 내내 KIA가 날아갈 수 있는 바람을 만들었다. 버나디나가 우승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등공신이다. 양현종의 2차전 완봉승과 5차전 세이브도 KIA의 우승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두산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수를 반복했다. 양의지의 리드와 벤치의 판단, 타자들의 순간적인 대처 능력에서 실수가 많았다. 그래도 7회말 빅이닝은 인상적이었다. 두산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KIA와 두산 모두 실수를 범했고 그 실수들을 그냥 놓치지 않았다. 선수 개인의 기량에서 KIA와 두산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승부는 한 순간 터진 것들이 쌓여서 결과로 나온다. KIA도 베스트는 아니었다. 김주찬, 최형우의 타격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화끈하게 타선이 터지지 않았다. 그래도 KIA가 마지막 두산의 추격을 잘 뿌리쳤다. 임기영, 김민식은 물론 김윤동까지 젊은 선수들의 깜짝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 경기 초반 구위나 제구만 보면 더스틴 니퍼트가 헥터 노에시보다 나은 투구를 했다. 하지만 3회부터 둘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렸다. KIA는 3회초 계획대로 번트 후 선취점을 냈고 이범호가 만루홈런을 날려 크게 앞서나갔다.

니퍼트와 양의지 배터리의 판단이 잘못됐다. 왜 버나디나와 승부를 하나. 지금 버나디나의 타격감은 완전히 미쳤다. 볼넷을 각오하고 피했어야 했다. 버나디나 뒤에 있는 최형우는 타격감이 좋지 않다. 단기전에선 영악하게 승부해야 한다. 버나디나에게 내주면 안되는 안타를 맞으면서 중요한 선취점을 허용했다. 이후 이범호와의 승부도 잘못됐다. ‘베테랑에겐 직구, 젊은 선수에게는 변화구’로 승부하는 게 볼배합의 기본아닌가. 36세 이범호에게 초구 슬라이더를 던졌다가 홈런을 맞았다. 2회까지 모습은 니퍼트가 헥터보다 나았다. 니퍼트의 직구가 좋았는데도 양의지가 잘못된 판단을 했다.

- KS 내내 양의지가 공수 모두에서 이름값을 못했다.

타석에서 찬스를 살리지 못한 게 수비에도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싶다. 양의지가 이런 리드를 하는 포수가 아닌데 여러모로 쫓기는 듯했다. 물론 니퍼트도 아쉬운 투구를 했다. 반대투구 빈도수가 평소보다 높았다. 그래도 양의지가 아쉽다. 지난해 KS MVP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지배했던 모습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SS포토] 연속안타 허용 헥터 \'여유가 느껴지는 미소\'
2017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가 3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KIA 선발투수 헥터가 5회말 2사 상대 오재원에 안타를 허용한 후 이대진 투수코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7. 10. 30잠실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 KIA가 3회초 5점을 뽑자 헥터는 정규시즌 좋았을 때의 모습을 회복했다.

점수가 선수를 만들고 야구를 만든다. 그만큼 헥터가 무거운 긴장감에서 시달렸다가 탈출한 것이다. 1984년 KS 때도 그랬다. KS 7차전에서 지쳐서 쓰러질 것 같았던 최동원이 유두열의 홈런 이후 다시 살아났다. 마치 푹 쉬고 마운드에 올라온 듯 자신감 있게 최고의 공을 던졌다. 투수는 이렇게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살아난 헥터를 보니 당시 최동원이 떠올랐다.

- 끌려가던 두산이 7회말 대폭발했다. 2015 넥센과 준플레이오프 대역전승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두산이 마지막 찬스를 살렸다. KIA의 투수교체가 늦은 것을 잘 파고 들었다. 헥터는 투구수 110개 넘어가면서 코너워크가 잘 안 됐다. 두산이 특유의 저력을 발휘했다. 특히 오재일이 빛났다. 김재환이 유인구에 허무하게 당한 것과 정반대로 오재일은 침착하게 심동섭을 상대했다. 오재일은 이번 포스트시즌을 치르며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어느 팀에 가도 중심타선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량이 됐다.

- 9회말 세이브를 위해 양현종이 마운드에 오른 것은 어떻게 봐야하나.

감독 경험을 돌아보면 선발투수를 마무리투수로 써서 성공한 확률은 50%였던 것 같다. 기대했던 결과가 나온 적도 있었고 실패한 적도 있었다. 선발투수가 중간에서 나가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끝낼 수 있는 상황에선 끝내는 게 맞다. 2013년에 두산이 시리즈 전적 3승 1패에서 삼성에 역전당하지 않았나. 결과도 잘 나왔지만 KIA는 옳은 판단을 했다. 두산은 박세혁 타석에서 세이프티 스퀴즈를 시도하지 않은 게 아쉬웠다. 1점만 냈다면 두산이 경기를 가져갈 확률이 높았다. 역전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 KIA의 우승과 두산의 3연패 실패에 대한 총평을 해달라.

KIA는 2009년 우승 후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김기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후 우승을 향해 한 단계씩 잘 밟아나간 결과가 올시즌에 나왔다. 그러나 KIA가 2018년에도 우승하기 위해선 보강이 필요하다. 수비 범위가 좁아진 이범호를 대신할 3루수가 있어야 한다. 선수들의 연령도 높은 편이다. 두산은 배울 게 많은 KS가 됐을 것이다. 지난 두 번의 KS 상대와 달리 KIA는 전력에서 압도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단기전에선 보다 세밀하면서도 때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김태형 감독이 확실히 느꼈으리라 본다.

정리|윤세호기자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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