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루포 이범호, 외면하는 니퍼트 [SS포토]
KIA 7번 이범호가 30일 열린 KIA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5차전 3회초 2사 만루에서 니퍼트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뽑아낸후 환호하고 있다. 잠실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잠실=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말 아낍시다.”

KIA 이범호가 생애 첫 한국시리즈(KS) 우승을 앞두고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25일 KS 1차전부터 극심한 타격부진에 빠졌던 그는 4차전 7회초에서야 올해 첫 KS 안타를 때려냈다. KS 5차전이 열린 30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이범호는 “첫 안타를 쳐서인지 밤에 가위에 눌렸다. 이럴 때일수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배들의 악전고투로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우승 9부능선을 넘어섰기 때문에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는 비장함이 서려있었다. 가볍게 타격훈련을 마치고 라커룸으로 들어가던 그는 “제발 한 번만 선임다운 모습을 보이고 싶다”며 기도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을까. 이범호는 생애 첫 KS 홈런을 트레이드마크인 만루포로 장식했다. 그는 지난 2000년 한화에서 데뷔한 뒤 올해까지 개인통산 16개의 만루포를 때려내며 ‘만루홈런의 사나이’로 불린다. 1-0으로 선취점을 뽑은 3회초 2사 만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범호는 두산 선발 더스틴 니퍼트가 던진 바깥쪽 높은 슬라이더(129㎞)를 걷어 올려 좌월 그랜드슬램을 쏘아 올렸다. 앞에 들어간 안치홍이 니퍼트의 슬라이더에 헛스윙 삼진을 당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히팅 포인트는 높게, 바깥쪽 슬라이더’를 노리고 타석에 들어간 것 처럼 자신에 찬 스윙이었다. 타석에 들어설 때부터 만루홈런을 기대한 KIA 팬에게 보란듯 큰 선물을 안겼다. 그간의 부진도 이 한 방으로 훌훌 털어냈다. 이범호의 생애 첫 KS 만루홈런이자 KS 통산 네 번째, 포스트시즌 16번째 진기록이다.

[SS포토]만루 홈런 이범호, 오재일 곁을 지나며...
KIA 이범호가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7 KBO리그 KIA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5차전 3회초 2사 만루 상황에서 두산 니퍼트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면서 기뻐하고 있다. 잠실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타구가 담장 밖에 떨어질 때까지 덤덤한 표정으로 달려가던 이범호는 마치 끝내기 홈런을 친 리틀야구 선수처럼 펄쩍펄쩍 뛰어 올랐다. 김태룡 1루 주루코치와 주먹을 맞댄 이범호는 이 순간을 영원히 담아두겠다는 듯 고개를 들고 관중석을 바라봤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일수도 있는 KS 무대라는 각오로 임한 경기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표정이었다. 3회말 수비를 위해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오자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이 이범호의 이름을 연호했다. 베테랑답게 왼팔을 들어 화답하자 뜨거운 함성이 그라운드를 덮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이범호도 모처럼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올해 마지막 가을잔치의 여흥을 만끽했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이범호는 “누가 쳐도 팀이 이기면 된다. 감독님께서도 ‘KS는 시즌 성적에 반영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나간 것들은 빨리 잊는게 좋다. 한 시즌 동안 선수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주장인 김주찬과 함께 노력한 결실을 큰 영광으로 함께 누리면 된다’고 격려해주셨다. 방망이가 안되면 눈으로, 눈이 안되면 발로, 이도저도 아니면 수비로 어떻게든 도움을 주면 된다. 4차전까지 죽을 각오로 뛰었다. 기회가 왔을 때 우승을 확정하고 (김)주찬이와 부둥켜 안고 울고 싶다”고 말했다. 이범호의 바람은 이뤄졌다. 이범호는 KS 5차전 MVP로도 선정됐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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