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 창(窓)과 창(槍)]양단불락의 상생의 논리로 풀어야 할 태릉선수촌 문제
    • 입력2017-10-17 05:31
    • 수정2017-10-17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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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한국 체육은 지난 달 진천선수촌 개촌으로 새 시대를 맞았지만 마음은 영 편치 않다. 새 터전을 얻은 기쁨이야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지난 52년간 한국엘리트 체육의 요람으로 제 역할을 다했던 태릉선수촌이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어 뒤숭숭하기 그지없다. 체육계는 태릉선수촌의 존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는 않다. 대한체육회가 진천선수촌이라는 새 터전을 얻어낼 때 문화재청이 요구한 태릉선수촌 철거를 받아들인데다 국제기구인 유네스코의 존재 또한 무시할 수 없어서다. 유네스코는 지난 2009년 태·강릉을 비롯한 조선 왕릉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면서 훼손된 능역의 원형보존을 권고한 바 있다.

책임있는 공공기관의 신뢰라는 측면에선 체육회의 주장은 사실 생떼에 가깝다. 문화재청의 입장에서 보면 체육회는 손안에 떡을 거머쥔 뒤 언제 그랬냐는 듯 약속을 뒤집는 철 없는 어린애의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일단 이 문제는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해 멀리 내다보지 못한 체육회에 원죄가 있다. 우선은 체육회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실수를 인정해야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다만 이 문제를 공공기관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건 치명적인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원만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우선 태릉선수촌 문제에는 상충되는 가치가 충돌하느냐를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과 태릉선수촌 존치가 과연 가치의 충돌을 유발하는 문제인지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는다. 지금까지 별 문제없이 현 상황이 잘 유지됐으며 태릉선수촌 또한 근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심각한 가치의 충돌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시선이다.

태릉선수촌 철거와 존치 문제의 핵심은 결국 공공기관인 문화재청과 대한체육회의 힘겨루기 싸움이다. 문화는 공공기관의 배타적인 소유권의 입장에서 접근할 사안은 아니다. 문화는 시대정신을 담아야 하며 전체 구성원, 즉 시민사회의 눈높이에서 다뤄져야 할 어젠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태릉선수촌 철폐와 존치는 공공기관의 배타적 소유권이라는 저급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래서인지 이 문제는 존치와 철거라는 이분법의 구도로 치달으며 양자택일(兩者擇一)의 폭력적인 방식을 강요하고 있는 모양새다. 굳이 상충되는 가치를 들춰내며 존치냐 철거냐를 따지기 보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과 한국의 근대 문화유산과의 접점을 모색하며 함께 상생하는 양단불락(兩端不落)의 논리와 태도가 오히려 더 생산적이다.

문화는 소유가 아니라 향유의 대상이다. 소유의 생존방식에는 타자(他者)를 배제하고 무력화시키는 폭력적인 코드가 숨어있다. 함께 누려야 할 문화적 가치는 그래서 소유가 아닌 향유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훨씬 교양있는 자세다. 타자를 끊임없이 분리시키는 소유에서 벗어나 타자를 품에 안으며 함께 나누고 즐기는 향유의 개념은 문화적 가치의 제 1덕목이다. 그런 점에서 태릉선수촌 문제는 소유가 아닌 향유라는 문제의식을 출발점 삼아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태릉선수촌 문제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최근 눈길을 확 잡아끄는 모델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고려사이버대학교 한종우 교수의 탁견으로 태릉선수촌을 서울시민을 위한 ‘강북권 올림픽공원’으로 만들자는 안이다. 몽촌토성과 1988 서울올림픽 시설들이 모인 복합시설로 조성된 올림픽공원은 강남권 시민들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스포츠·역사·문화 공원인데, 한 교수의 제안은 시민사회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태릉선수촌의 바람직한 미래상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다.

태릉선수촌 문제에서 그나마 다행스런 건 문체부의 조정 역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릉선수촌 철거를 요구하는 문화재청은 문체부의 외청이며, 태릉선수촌 존치를 주장하는 대한체육회 역시 문체부 산하의 기타공공기관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두 기관을 총괄하는 문체부 장관의 슬기로운 조정 역할에 따라 상생의 결과가 충분히 도출될 수 있다. 시인 출신의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문화적 가치에 정통한 관료이기에 그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 남다른 시인 출신 장관이 내놓을 솔로몬의 지혜는 과연 무엇일까.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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