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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사랑하는 국민’ 카페 회원이 1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신태용 축구국가대표팀 귀국장을 찾아 ‘한국 축구 사망했다’는 현수막을 펼쳐보이며 김호곤 기술위원장 퇴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인천국제공항=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그라운드에서만큼이나 긴박한 ‘007 이동 작전’이 펼쳐졌다.

15일 오전 11시가 다 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은 예정된 공항 내 인터뷰를 전격 취소했다. 귀국 게이트도 신 감독이 탑승한 KE924편 탑승자가 나오는 B게이트로 나오지 않고 다른 게이트로 긴급하게 이동해 취재진과 축구 팬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오후 2시 신문로 축구회관 다목적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이를 두고 현장에서 한국 축구 개혁을 주제로 시위를 펼친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축사국)’ 회원과 일부 팬은 더 반발했다. 인터넷에도 여러 네티즌들이 “좋지 않은 여론에 도망가기 바쁘다”며 신 감독은 물론 이날 함께 귀국한 김호곤 기술위원장을 향한 비난 수위를 높였다.

가뜩이나 욕받이로 전락한 축구대표팀인데 이날 귀국장 소동을 통해 먹지 않아도 될 욕을 먹은 꼴이 됐다. 러시아, 모로코와 유럽 원정 평가전 2연전을 마친 신 감독은 김 위원장과 현지에 남아 독일에서 기술코치 및 피지컬 코치 후보를 면접했다. 또 러시아에서 내년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때 사용할 캠프 후보지를 보는 일정을 소화한 뒤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 사이 한국 축구는 이례적으로 국정 감사 소재가 되는 등 웃지 못할 상황에 직면했다. ‘마이웨이’를 선언한 신 감독과 김 위원장, 대표팀을 향한 국내 여론이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이날 귀국장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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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사랑하는 국민’ 카페 회원이 1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신태용 축구국가대표팀 귀국장을 찾아 뿌린 문서.

신 감독은 KE924편으로 오전 9시25분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비행기는 1시간이나 지연됐다. 취재진이 9시께 귀국장에 도착했을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의 A대표팀 사령탑 부임을 주장하는 ‘축사국’ 운영진이 상복을 입은 채 등장했다. 이들은 ‘한국 축구 사망했다’, ‘문체부는 축협 비리 조사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어올리며 시위를 펼쳤다. 축사국 운영자인 이덕진(48) 씨는 “협회 집행부 행정은 더는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 감독직을 원한 히딩크 감독 부임과 더불어 협회 집행부의 퇴진을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회는 9시33분께 신 감독이 애초 인터뷰할 곳에 세워둔 후원사 백드롭 광고판을 들어냈다. 한 관계자는 “여론이 너무 좋지 않고 항의 시위가 진행되는 분위기여서 광고판을 치우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오전 10시가 넘어서는 유대우 부회장을 중심으로 협회 실무진이 신 감독과 김 위원장이 들어오는 B게이트 앞에서 긴급회의를 했다. 공항 안전요원까지 불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했다. 잠시 후 취재진에게 “인터뷰를 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시위 인원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축사국 운영자 중심으로 공항을 찾았다. 이들은 “신 감독 귀국 정보를 얻었는데 수많은 언론이 모일 것으로 예상해 국민의 뜻을 알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5시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예정된 시위 집회에 참석하는 게 주 일정이었다. 협회는 소수 시위 인원에도 극도로 민감했다. 신 감독의 인터뷰 장소를 두고 공항 내 기자실 또는 VIP만 접근이 허용되는 장소 등을 물색하다가 결국 인터뷰 취소를 알렸다. 오후 2시 축구회관으로 이동해서 하자고 했다. 한 관계자는 “공항 정찰대 등이 현재 상황에서는 안전을 고려해서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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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협회 관계자들이 공항 측과 인터뷰 진행 여부를 두고 논의하고 있다.

사실 현재 대표팀을 향한 여론을 볼 때 신 감독 귀국장 풍경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지만 협회 관계자들은 우왕좌왕 당황해했다. 이에 1시간여 앞서 2층 출국장에선 여자축구대표팀이 역사적인 미국 원정 평가전 출격을 위해 모였는데 협회의 미흡한 상황 인식과 대처로 신 감독 귀국 게이트에만 관심이 쏠려 조명받지 못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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