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B777-200항공기

[스포츠서울 이선율기자] 대한항공이 미국 최대 항공사 델타항공과 야심 차게 추진한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JV) 운영을 놓고 항공당국과 업계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달 중순 인가가 날 것이라는 업계 전망과 달리 국토부와 공정위 등 항공당국에서는 소비자들의 실질적 편익과 독과점 우려 등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조인트벤처는 서로 다른 두 항공사가 특정 노선에서 하나의 항공사처럼 공동으로 영업하고 수익과 비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좌석 일부와 탑승 카운터, 마일리지 등을 공유하는 공동운항(코드셰어)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협력 단계다. 세계 항공시장에서 약 20여개 조인트벤처가 운영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국내 항공사가 참여한 사례는 없다.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은 지난 7월 양사의 조인트벤처 운영 인가 신청을 한국 국토교통부와 미국 교통부에 제출,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대한항공은 델타항공과 조인트벤처가 시행되면 델타가 취항하는 미주 내 290여개 도시와 대한항공이 취항하는 아시아 내 80여개 도시를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어 태평양노선 환승객 유치가 수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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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왼쪽)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에드 바스티안(Ed Bastian) 델타항공 최고경영자, 스티브 시어 델타항공 국제선 사장이 지난 3월29일 인천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양해각서를 체결한 후 약정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제공 | 대한항공

하지만 미국과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한·미노선 독점을 우려하며 일찌감치 견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여객수 기준 한미 수송실적 점유율은 대한항공 49.5%(1위), 델타항공 7.4%(3위)다. 대한항공·델타항공이 조인트벤처를 운영하면 단순 합산해도 점유율이 50%를 넘게 된다. 특히 한국과 미국이 승인한 노선 12개 중 대한항공이 4개, 델타항공이 1개 노선을 각각 독점 운항하고 있는 데다 두 회사 점유율 합계가 50%가 넘는 노선도 4곳이나 되기 때문에 조인트벤처 설립 시 12개 중 9개 노선을 과점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가격 조정 등을 통해 미주노선 경쟁을 축소시켜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11년 미 법무부도 경제분석보고서에서 대서양 직항노선에서 운항하는 항공사가 줄어들수록 운임이 높아지는 사례를 지적하기도 했다”며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이 주장하는 효과는 공동운항과 같은 기존 항공사간 제휴협정을 통해 시행하고 있어 충분히 확대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반독점법, 한국은 공정거래법으로 담합을 금지하고 있어 조인트벤처 설립 전 항공 당국 허가가 필요하다. 최근 국토부는 조인트벤처의 독과점 형성 가능성을 놓고 공정위와 의견을 조율 중이다. 앞서 미국 교통부는 지난해 12월 호주 콴타스항공과 아메리칸항공의 조인트벤처 설립을 독점 문제로 불허한 바 있다. 당시 두 회사의 미국-호주 노선 점유율은 각각 53%와 6%로 합산했을 때 59%였다.

국토부 국제항공과 관계자는 “글로벌 항공사간 조인트벤처가 활발히 결속되고 있는 현재 흐름에 맞게 긍정적으로 결정을 내리려고 한다. 다만 국내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이득이 될지, 실질적 제휴효과는 어떠한지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고심하고 있다”며 “이번 사례는 해외 항공사와 제휴 맺는 첫 사례인 만큼 그 어느때보다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으며 공정위와 미국 DOT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국제카르텔과 관계자는 “경쟁이 제한돼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면밀히 고려하고 있다”며 “경쟁이 제한된다는 것은 결국 소비자의 이익이 저해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50% 점유율을 가진 회사와 30%의 점유율을 가진 회사가 하나의 회사로 운영되면 80%의 점유율로 가격조정을 마음대로 해 나머지 20%의 경쟁업체를 몰아낼 수 있다. 적은 비중의 경쟁사들은 구조상 가격을 내리기가 힘들기 때문에 퇴출되는 것이다. 이후 독점회사는 가격을 다시 올릴 가능성도 있다. 일시적으로 경쟁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는 효과도 있지만 큰 틀에서 경쟁이 제한될 가능성도 높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melod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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