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스포츠서울 김효원기자]발레리나 강수진(50)이라는 이름은 열정의 상징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발레리나로 활동하며 수많은 무대에 올라 아름다운 무용을 선보였고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Benois de la Danse’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을 수상했다. 흔히들 천재는 1%의 영감과 99% 노력으로 이뤄진다고 하지만 강수진의 노력 앞에선 그 누구라도 숙연해진다. 강수진의 상처투성이 발 사진이 이를 증명한다. 남보다 늦은 나이에 발레에 입문해 노력 끝에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했지만 7년 동안 무명의 생활을 견뎌야 했다. 그때 단지 남들을 부러워하며 좌절하기 보다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하루 18시간씩 연습했고 비로소 강수진이라는 이름 석자를 세계 무용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19세에 입단 후 30년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활동한 강수진은 지난 2016년 7월 공연을 끝으로 현역무용수에서 완전히 은퇴해 세계 예술인들의 아쉬움을 샀다. 지난 2014년부터는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을 맡아 후배들을 지도하며 발레단을 이끌었고 뛰어난 성과를 보여 지난 2월 연임됐다. 현역 발레리나에서 은퇴한 후 국립발레단 단장으로 후배들을 이끌며 아름다운 리더로서 2막을 살고 있는 강수진을 만났다.

-국립발레단에서 3년의 임기를 잘 마치고 올초 연임됐다. 책임감이 무거울 듯하다.

올해 초 임기가 연임돼 오는 2020년 2월까지 일하게 됐다. 국립발레단에 처음 임명됐을 때 했던 첫 인터뷰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21세기에 맞는 발레단으로 함께 커나가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임기 동안 많은 성과를 내 보람 있었다. 우리 안무가가 해외의 상에 노미네이트 됐고, 캐나다 등 해외에서 공연을 해 좋은 평가를 받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좋은 결과가 많이 나와 보람을 느꼈다. 앞으로 국립발레단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 여러가지 계획한 일들을 끝까지 잘 마무리 하는 것이 요즘 나의 꿈이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하겠다.

-지난 임기 동안 성취한 것들 중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것은 무얼까.

단원들이 예전에도 잘했지만 내 임기동안 더 업그레이드 된 것이 굉장한 보람이다. 국립발레단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 시리즈’를 통해 성장한 강효형 안무가의‘허난설헌-수월경화’가 캐나다, 독일, 러시아( 독일, 러시아에서 ‘요동치다’ 그리고 콜롬비아, 캐나다에서 ‘허난설헌-수월경화’) 등 해외공연에서 굉장히 호응 받았다. 강효영 뿐 아니라 박슬기, 이영철씨 등도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다. 이처럼 재능있는 분들이 국립발레단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기쁘다. 또 하나의 보람은 기대 이상으로 성장한 단원들이다. 하려고 하는 의지가 강하다. 오는 11월에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발레 ‘안나 카레리나’를 올린다. 힘든 가운데도 굉장히 몰입해 연습하는 무용수들을 보면 행복하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는 공연으로 ‘안나 카레리나’를 선택한 이유는 무얼까.

평창동계올림픽이 세계적인 올림픽인 만큼 국가행사로서 무척 중요하기에 작품을 선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안나 카레리나’를 선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세계적인 행사인 만큼 해외에서 많은 분들이 오실텐데 우리 발레의 역량을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작품이며,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는 사랑, 결혼, 욕망, 불륜 등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세계인이 사랑하는 고전소설을 기반으로 한 발레 작품을 선택했다. ‘안나 카레리나’는 우리 발레의 기량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작품이라고 본다. ‘안나 카레리나’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11월 1일부터 11월 5일까지 공연하고 이후 문화올림픽의 일환으로 내년 2월에 강릉에서 공연하게 된다. 모든 무용수와 스태프들이 열심히 노력해 최고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고있다.

-최근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인플루엔셜)라는 책을 출간했다. 어떤 내용을 담았나.

첫 책은 지난 2013년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였다. 그 책에서는 자신 안의 열정을 깨우는 방법을 소개했다. 이번 책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에서는 자기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경쟁이나 편법에 휘둘리지 않고 정직하고 올곧게 사는 것이 중요하고, 후회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이야기했다.

-책에서 강조하는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모두 스타일이 다르다. 나는 우리 단원들과 작업을 할 때에 똑같은 역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코치해준다. 그 사람의 개성을 끌어내기 위해 굉장히 노력한다. 단원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답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누구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향해 자신감을 가지고 후회없이 살아가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2막을 살고 있다. 발레리나에서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또 다른 삶을 살면서 나다운 삶을 찾아가고 있다. 발레리나로 살 때는 나만의 생을 살면 됐는데 지금은 리더로서 모든 분들을 책임지면서 가는 과정이라 또 다른 느낌이다. 행정에서는 팀워크가 굉장히 중요한데 우리 발레단 직원들과 단원들의 팀워크가 무척 좋다. 내 역할은 한 사람 한사람이 하고자하는 의지를 가지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다. 단원들과 직원들이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에 좋은 공연이 만들어진다. 하루하루 배워가면서 나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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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사진|김효원기자 eggroll@sportsseoul.com

-얼마전 JTBC 예능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은퇴 후에도 일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해 시청자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예능에서 자주 볼 수 있을까.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에 몇번 출연했었다. 뉴스에도 몇번 나갔고. TV에 나오는 분들을 만나는 것은 재미있다. ‘비정상회담’도 굉장히 재미있게 촬영했다. MC 전현무 성시경 유세윤씨도 재미있었고 출연하는 외국인 분들도 한국말을 잘해서 굉장히 존경스러웠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똑같은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토론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방송에 대한 스트레스는 전혀 없다. 누구와 있든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인생에서 굉장한 복인 것 같다. 나는 특히나 분야가 다른 분들을 만날 때 너무 즐겁고 또 배울 수 있는 게 많아서 좋다. 예능 프로뿐 아니라 어떤 프로라도 발레단에 도움된다면 언제든 출연하려고 한다.

-은퇴를 한 뒤에도 늘 배움의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이 놀랍다.

나는 누구한테든 배운다. 배운다는 건 끝이 없다. 키우는 강아지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배운다. 바쁘게 살다보면 잊게 되는 순수함 같은 걸 아이들을 보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단원들과 함께 하면서 오히려 내가 더 배운다. 알면서도 잊어버린 것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지구상의 모든 것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면서 나를 복습하고 예습한다.

-지금은 현역에서 뛰지 않는데도 여전히 날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비결은?

나는 반세기 동안 커피 마시듯 운동을 했다. 지금도 집을 나가기 전에 언제든 운동한다. 놀려고 해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움직인다. 예전에는 운동이 필수였지만 지금은 내 건강을 위해 움직인다. 내 몸을 내가 잘 관리해 건강을 유지해야 곁에 계신 분들이 힘들지 않으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타입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청소하고 운동하고 여유있게 아침시간을 보낸다.

-발레리나와 청소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 청소를 직접 하는 것이 신기하다.

청소를 좋아한다. 식구가 단촐해서 청소할 게 많지는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로운 하루를 청소로 연다. 예전에 발레리나로 활동할 때는 긴장감을 풀기위해 공연 전에 청소를 하곤했다. 그럼 복잡한 생각이 없어진다. 해결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제일 좋은 게 청소다. 지금은 발레리나가 아니니까 아침에 가볍게 운동을 한다. 집에는 발레바(Ballet Barre)가 없으니까 아무거나 잡고 연습한다.

-곧 추석연휴가 다가온다. 평소 발레리나일 때는 연휴에도 공연을 했을 텐데 올해 연휴는 어떻게 보내나.

나는 남편과 강아지 써니와 함께 집에서 보낼 예정이다. 또 서울에 살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부모님을 만나서 식사를 하려고 한다. 그외의 대부분 시간은 되도록이면 집에서 남편을 위해서 보내고 싶다. 맛있는 걸 해주고 싶은데 남편이 나보다 음식을 잘해서 그게 고민이다. 유럽에 살 때는 가끔 한국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채소를 좋아해서 샐러드나 스파게티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나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남편이 원한다면 스테이크를 구워주겠다.

-발레리나일 때 보냈던 추석에 대한 추억이 있을까?

발레리나일 때는 추석은 연습하는 날이었다. 외국에 늘 있었으니까 부모님하고 전화 통화하는 게 명절이었다. ‘땡스기빙데이’라고 해서 동료들끼리 시간이 되면 집에 모여 밥을 먹는 때도 가끔 있었다. 1990년도에 친구가 칠면조를 만들어서 초대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칠면조가 너무 맛이 없어서 오랫동안 칠면조 고기를 못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서 연습을 했다.

-남편과의 러브스토리가 화제다. 터키인 남편 툰치 소크멘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무용수 출신으로 20년 열애 후 2002년 결혼했다. 평소 남편이 든든한 응원자라고 얘기했는데 강수진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인가.

여러번 인터뷰에서 얘기했지만 남편이 없었다면 지금 한국에서 이렇게 일하기 어려웠을거다. 발레리나로 연습하고 공연하고 하는 선택은 늘 내가 하지만 힘들 때나 행복할 때나 남편이 있어서 힘이 됐다. 오래 사귀고 결혼도 늦게 하고 우여곡절도 같이 겪어서 그런지 지금은 예전보다 더 사랑이 깊어졌다. 서로를 존중하고 언제나 서로가 노력한다. 사실 남편이 나 보다 더 노력하는 느낌을 받을 만큼 큰 사랑을 느낀다. 후배 양성을 위해 한국에 가겠다고 했을 때 남편이 흔쾌히 오케이 했다. 쉰살이 넘어 살던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게 쉽지 않을텐데 나 때문에 한국에 왔다. 지금은 힘든 부분을 많이 극복하고 한국을 무척 좋아한다. 남편이 발레단 안에서 어드바이저 겸 코치로서 많은 도움을 주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굉장히 좋다. 남편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 이상이다. 평소 남편은 나에게 ‘내 간을 떼주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한다. 나 또한 남편이 뭐가 필요하다고 하면 뭐든 떼줄 수 있다. 어렸을 때 노 부부가 손잡고 걷는 걸 보면서 부러웠는데 내가 복이 있는지 그 로망을 이루게 됐다. 그런 남편을 만난 건 나 스스로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활발한 50대를 보내고 있다. 다가오는 60대는 어떨까 상상해봤나.

벌써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내가 해야할 일을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 하루하루 해결해야 할 일들을 해내는 것이 중요해서 60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60대의 이야기는 그때 가서 다시 인터뷰 해야 할 것 같다.(웃음)

eggroll@sportsseoul.com

강수진. 사진|김효원기자 eggrol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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