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엄혹한 밤이 지났건만 신새벽을 깨우는 여명(黎明)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박근혜 정권시절 체육계는 갈갈이 찢겨졌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다름아닌 체육에서부터 시작됐고 얼치기 체육 전문가로 픽업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최순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숱한 정책을 양산하면서 한국 체육계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훼손된 정보를 내세워 정적을 제거하는 도구로 활용된 체육개혁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체육단체 통합 역시 충분한 고민과 정책적 고려없이 위에서부터 찍어누르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진행돼 불협화음만 토해냈다. 그마나 다행스런 건 김종과 최순실 일파가 먹음직스런 먹잇감으로 노렸던 평창동계올림픽 이권사업이 미수에 그쳤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권의 실패가 워낙 도드라진 탓인지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체육계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다. 전임 정권이 체육을 워낙 황폐하게 만든데다 정권 교체의 도화선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공주승마와 이화여대 부정입학에서 비롯됐기 때문인지 문재인 정권에 거는 체육계의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올랐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지 작금의 체육 현실은 씁쓸하다 못해 걱정이 태산이다. 기대감은 커녕 개혁의 주체와 대상도 가늠하지 못하는 혼돈과 혼란의 극치다.

전문성 없는 함량미달의 인사들이 정치를 등에 업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고 안달이 난 건 애교에 가깝다. 개혁의 대상이 교묘하게 분칠을 하고 개혁을 부르짖는 주체로 둔갑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개혁주체와 개혁대상이 서로의 실체를 모른 채 손을 잡고 새 정부 체육의 요직을 탐하는 우스꽝스런 일도 벌어지고 있다.

낡은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도래했지만 체육계가 여전히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체육이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정치의 종속변수로서만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육의 가치는 이제 달라졌다. 타자와의 대결에서 이기는 경쟁의 가치에만 머물던 체육의 가치가 어느덧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복지의 가치로 확대됐고,더 나아가 전인교육을 완성하는 교육의 가치로서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체육은 이제 더 이상 정치의 노예가 아니다. 정치에서 독립된 체육이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능력있고 참신한 인사들이 새로운 피로 수혈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 체육계의 움직임을 지켜보면 걱정이 앞선다. 적폐세력은 물론 전 정권의 부역세력까지 정치를 등에 업고 자리싸움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은 인사에서 시작해 정책에서 마무리짓는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의 체육개혁 첫 걸음이 자못 걱정스런 이유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