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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인간은 누구나 변화를 두려워한다. 인간의 본능은 필연적으로 익숙함을 탐닉하기 때문이다. 변화에는 고통과 수고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 변화가 인간에게 늘 껄끄러운 장애물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뼈를 깎는 트레이닝을 통해 자신만의 리듬감을 근육과 실핏줄에 입력시켜놓은 스포츠 선수들이 몸에 익은 플레이 스타일에 변화를 시도하는 건 어쩌면 모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수들이 흐르는 세월에 뒷짐을 지고 변신하지 못하면 은퇴를 앞당기는 지름길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다. 열정과 의지는 아직도 생생한데 세월을 이겨내지 못해 현역을 떠나는 아픔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아리고 쓰리다.

올 시즌 남자 프로테니스(ATP)의 최고 화젯거리는 단연 ‘왼손 황제’ 라파엘 나달(31)의 부활이 아닐까 싶다. 나달은 2014년 프랑스오픈 우승이후 지난해까지 단 한번도 그랜드슬램 4강에 오르지 못하는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테니스 전문가들조차 “나달의 시대는 갔다”며 그를 남자 테니스계의 ‘지는 해’쯤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나달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지난 10일 막을 내린 US오픈 남자단식 정상에 오르며 16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수집했다. 올 시즌 4개의 그랜드슬램 대회 가운데 프랑스오픈과 US오픈 정상에 올라선 나달은 호주오픈에서도 결승에 진출하며 제 2의 전성기를 힘차게 열어젖혔다.

나달이 부활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필자는 주저없이 ‘변신’을 꼽고 싶다. 잘못 손을 댔다간 어쩌면 급추락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플레이 스타일과 스트로크 메커니즘에 변화를 꾀한 건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클레이 코트의 황제’로 불리우는 나달은 강철같은 체력을 바탕으로 한 끈질긴 수비로 상대가 제풀에 지쳐 쓰러지도록 하는 전형적인 베이스라이너다. 기술적으로도 강력한 스트로크 한방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기보다는 강한 톱스핀의 감아치는 포핸드 스트로크로 상대를 지치게 하는 스타일이다. 젊었을 때는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이 위력을 발휘했다. 고래심줄같은 체력을 바탕으로 한 빠른 푸트워크,그리고 베이스라이너형 선수가 그렇듯 범실을 줄일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은 개성강한 플레이 스타일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시너지효과를 냈다. 특히 나달의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은 볼이 느린 클레이코트에서 최적화되며 화려한 꽃을 피웠다. 그러나 생명의 에너지가 영원할 수 없듯이 나달의 경기력도 2014년을 정점으로 추락했다. 잦은 부상과 눈에 띈 체력저하로 탄탄했던 그의 플레이에도 균열의 조짐이 나타났다.

나달의 변신은 그래서 시작됐고, 마침내 세월의 흐름을 되돌리는데 성공했다. 철저한 베이스라이너에서 과감한 네트 플레이를 시도하는 공격적인 플레이로 옷을 갈아입었다. 서브 속도는 다소 떨어졌지만 상대의 허를 찌르는 코스 공략으로 서비스 득점률도 한껏 끌어올렸다. 스트로크의 메커니즘도 바꿨다. 감아치는 포핸드 톱스핀은 체력소모가 심하고 관절에 많은 무리를 준다고 판단해 타구에 간결하게 힘을 전달하는 수평스윙으로 전환했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부담으로 다가온 체력저하를 플레이 스타일과 스트로크 메커니즘 변화로 극복하면서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스포츠에서 변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요소다. 스포츠 전문가들은 선수가 은퇴할 때까지 대략 세 번쯤은 변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저한 기본기를 습득한 뒤 몸이 커지면서 변신의 과정을 거치는 게 첫 번째요, 두 번째는 한 단계 도약을 위해 기술의 업그레이드를 시도하는 과정이다. 두 번째 변신까지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과정이지만 마지막 세 번째 변신은 꼭 그렇지는 않다. 톱 클래스의 선수가 세월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 거치는 마지막 과정이라 시도 자체가 힘겹다. 일단 자존심이 변신을 가로막고, 화려한 성공을 맛본 마당에 또 다시 변해야 한다는 건 심리적 자기학대와 진배없기 때문이다.

고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게 세상 만물의 로고스(logos)다. 따라서 변하지 않고선 살아 남을 수도 없다. 스포츠에서 변신은 몸의 기억을 새롭게 바꾸고 이식하는 것이라 많은 땀과 혹독한 고통이 뒤따른다. 세월의 흐름을 되돌려 재기에 성공한 스포츠 스타에게 감동을 느끼는 건 그가 들어올린 우승컵 때문만이 아니다. 자연법칙을 거스를 수 있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엿볼 수 있어서다. 변신은 그래서 위대하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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