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주상·이우석·황철훈기자] 믿기 어렵겠지만 40대 중 후반 세대의 어린 시절엔 ‘돈까스’란 놀이가 있었다. ‘돈~’하고 외치면서 깨금발로 뜸을 들인 후 ‘까스!’를 외치며 서로의 발을 밟고 노는 괴상한(?) 놀이였다.하지만 꽤 많이들 즐겼다. 우선 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데다 ‘다방구’나 ‘탈출(미끄럼틀에서 하던 놀이)’에 지겨웠던 까닭도 있지만, 그 이름을 가져다 붙였을 만큼 돈가스는 먹고싶은 음식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는 방증이다.벌써부터 돈가스는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 잡아버렸다. 돈가스를 더이상 양식(洋食)이라 부르기도 참 어색할 지경이다. 원래 이름인 포크 커틀렛(Pork Cutlet)은 이미 없는 말이 됐다. 돈가스는 김치찌개나 제육 불고기처럼 가정 일상식이 됐다. 포크와 나이프를 쓰지도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돈가스는 한국인들에게 대중적으로 ‘양식’이란 것을 가르쳐 준 첫 경험(?)이었다는 것. 청춘남녀들은 한손에 포크를 쥐고 나이프로 돈가스를 썰면서 처음 서양음식이란 것을 배웠다.“빵으로 하시겠습니까, 밥으로 하시겠습니까”. 나비 넥타이를 맨 ‘뽀이’가 주문을 받는 경양식집 돈가스는 가족 단위 외식을 찾는 이들에게 당시 아주 격조있는 ‘신 문화’로 인기를 모았다.1980~90년대 청춘남녀의 데이트 메뉴로 이른바 “썰러 가자”로 사랑을 독차지했던 경양식 돈가스는 이후 두툼한 일본식 돈가스가 등장하며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냄비뚜껑 만큼이나 넙데데한 왕돈가스는 시내 기사식당을 점령하며 또다른 시장을 창출했다.예나 지금이나 남녀노소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돈가스. 바삭하고 촉촉한 맛과 고소한 기름으로 몸과 마음을 채워준 돈가스 맛집을 꼽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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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을 사용한 명동돈까스 히레가스.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명동돈까스=

1983년 개업한 국내 대표적 돈가스 노포다. 주문을 하면 즉석에서 튀김옷을 입혀 바로 튀겨낸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히레(안심)가스. 두꺼운 살코기에 미리 밑간을 해 숙성시켜놓고 밀가루, 계란, 빵가루를 차례로 입혀 바로 기름솥에 넣는다. 두께가 있다보니 팔팔 끓는 기름에 8분 정도 튀겨낸다. 하얀 돈가스는 곧 황동색으로 변한다. 튀긴 후 칼로 잘라서 접시에 담아 내온다. 잘게 썬 양배추와 단무지, 그리고 밥과 된장국이 전부다. 식탁에 올려진 소스는 고기와 채소용 두가지. 단지 이것 만으로도 환상적인 맛을 낸다. 빵가루는 바삭바삭하고 고기는 촉촉하다. 연육(軟肉)을 잘 했다. 꽤 두꺼운 데다 기름도 별로 없지만 충분히 숙성시킨 덕분에 퍽퍽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곁들인 매운 겨자는 튀긴 음식의 느끼한 맛을 다잡아준다. 밥 위에 얹어먹으면 술술 넘어간다. 된장국도 잘 어울린다. 양도 푸짐하고 밥과 된장국, 양배추는 무한리필된다.

★명동돈가스=히레(안심)가스, 로스(등심)가스 각각 1만1000원. 치즈와 채소를 다져넣은 코돈부루 , 새우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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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한 돈가스와 생선가스, 햄버거 스테이크까지 즐길 수 있는 잠실 돈까스의 집 정식.

●잠실 돈까스의 집

=1984년부터 잠실에서 영업을 시작한 ‘돈까스의 집’. 분식집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돈가스와 정식, 비후(Beef)가스 등 ‘추억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빵과 밥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된다. 반질반질 먹음직스러운 모닝빵이 달콤한 잼과 함께 식탁에 오른다. 크림스프도 나온다. 접시엔 ‘사라다’와 시원한 깍두기가 자웅을 겨루고 있다. 주메뉴 돈가스뿐 아니라 생선가스, 함박스테이크까지 골고루 맛볼 수 있다.

바삭한 돈가스 위에 ‘계란 후라이’도 하나 올린다. 고슬고슬한 빵가루 튀김과 부드러운 계란 반숙이 서로 썩 잘 어울린다. 고기는 얇지만 촉촉하다.

함박스테이크도 부드럽고 촉촉한 육즙이 살았다. 살짝 튀겨낸 생선가스는 뽀얀 생선살을 그대로 품었다. 세 종류 고기 위에는 각각 다른 소스를 곁들인다.

★돈가스 7000원, 정식 8000원, 함박스테이크 8000원.

●고성 거진항 장미경양식

=강원도 고성 거진항에서 옛날식 돈가스로 유명한 장미경양식. 크림스프와 넙적한 돈가스를 튀겨서 밥과 함께 내준다. 군인과 지역민들 사이에서 소문난 것이 지금은 ‘최북단 돈가스’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전역한 군인들이 입소문을 낸 덕에 전국에 장미 돈가스란 이름이 퍼졌다. 독특하게 시금치 나물을 가니시로 내는데 이게 별미다. 시원한 맛을 내는 강원도식 김치는 웬만한 칼국수집보다 낫다. 예전엔 함박스테이크 등 정식도 팔았는데 지금은 돈가스만 판매한다.

★돈가스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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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수 돈가스는 등심과 안심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서울 성산동 ‘정광수의 돈까스 가게’=

지난 2007년 서울 망원동엔 지역 주민들만 비밀스레 알던 돈가스집이 생겼다. 망원동 주택가 깊숙한 곳,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쉬 지나쳐버리기 십상인 골목길에 자리한 바로 정광수의 돈까스 가게다. 당시 가게는 상당히 비좁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주방과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만 있을 뿐이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선 비좁은 계단을 통해 방공호 같은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사람의 입맛은 정직한 걸까? 지역 주민들만 쉬쉬 알고 지내던 이 집이 별안간 매스컴을 타더니 2번의 점포확장을 거쳐 마포구청역 인근 대로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소스다. 여타 돈가스집에서 느껴지는 달콤함도 새콤함도 없다. 그렇다고 특별한 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특색 없는 것이 특색이다.

최대한 단맛과 짠맛을 배제하기 위해 설탕과 토마토케첩을 거의 쓰지 않고 토마토 페이스트와 버섯, 피망, 양파를 끊여내 이 집 만의 진하고 담백한 소스를 만들어 낸다. 애피타이저로 나오는 크림수프는 물과 버터 밀가루를 끓인 후 약간의 소금간과 함께 우유로 마무리한다. 부드러운 크림수프 또한 담백하고 고소하다.

이 집은 두툼하게 튀겨내온 안심 돈가스와 등심 돈가스 두 덩어리 위에 양송이버섯과 양파, 피망으로 맛을 낸 진한 소스가 올려져 나온다. 부드러운 안심과 씹는 식감을 느낄 수 있는 등심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그리 달지도 새콤하지도 않지만 토마토의 깊은 맛이 느껴지는 걸쭉한 소스에 두툼하고 부드럽고 촉촉한 육질의 돈가스를 베어 물다 보면 금세 포만감이 느껴진다. 한쪽 벽면엔 ‘양이 적지 많으니 너무 의욕적으로 주문하지 마시길…’ 주인장의 글귀가 눈에 띈다.

★가격=돈가스 7500원, 돈가스 곱빼기 1만원, 왕돈가스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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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돈가스는 엄청난 고기의 두께가 눈길을 끈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서울 상수동 ‘사모님 돈가스’=

지하철 상수역 인근에 위치, 주택가 안쪽에 자리한 터라 찾기가 쉽지 않다. 골목 안 2층,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풍경 덕에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계단을 오르면 2층의 아담한 공간이 대기실이다. 영업개시는 낮 12시. 30분이나 서둘러 도착했지만 대기 순번이 5번째다. 잠시 후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니 수프, 샐러드, 돈가스가 순서대로 나온다. 갖은 쌈 채소에 달콤하고 고소한 땅콩소스가 올려진 샐러드가 입맛을 금세 돋워준다. 샐러드에 이어 나온 돈가스는 감자와 밥 그리고 약간의 샐러드가 함께 나왔다.

시선을 끄는 건 밝은 당근색 돈가스 소스다. 새콤달콤한 소스는 새콤함이 좀 더 느껴졌다. 양파, 당근 등 각종 야채를 각각 익힌 후 재료를 한데 모아 장시간 끓여내는 일명 대미글라스 방식으로 탄생한 소스다. 여기에 걸쭉한 농도를 맞추기 위해 볶은 쌀가루를 넣는다. 독특한 소스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건 고기의 두께다. 족히 4㎝가까이 되어 보이는 두툼한 고기는 육즙이 가득 촉촉하고 부드럽다. 속까지 고루 잘 익은 고기가 신기할 따름이다. 육즙을 살리기 위해 고기를 두드리지 않고 대신 충분한 숙성과정을 거쳐 사용한다. 상큼함이 느껴지는 소스와 두툼하면서도 부드러운 육질의 돈가스 조합이 환상이다.

여기에 버터를 두르고 노릇하게 구워낸 감자는 화룡점정. 센스있는 플레이팅는 보너스. 하지만 사모님 돈가스의 반전이 있었으니. 사모님 돈가스엔 사모님이 없다. 이 집 주인장은 남자인 이남길(49)씨다.

★가격=사모님 돈가스 8500원, 매운 돈가스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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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왕 돈가스는 추억의 맛 그대로다.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서울 성북동 ‘금왕 돈가스’=

1987년에 시작, 올해로 자그마치 30년을 이어온 돈가스집이다. 서울 성북동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이곳은 원래 택시기사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유명해졌다. 가정집을 개조한 널찍한 식당 안은 벌써 손님들로 붐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금세 스프가 상위에 오른다. 잠시 후 메인메뉴 돈가스가 등장한다. 커다란 하얀 접시 위 넓적한 돈가스 함께 마카로니, 완두콩, 양배추 샐러드 마지막으로 양고추가 올려져 있다. 두툼한 일본식 돈가스보다 두께가 얇지만 대신 넓이가 넓다. 소스 색은 우리가 익히 알던 진한 갈색이다. 달콤새콤한 소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달달한 맛이다. 어렸을 적 경양식집에서 먹었던 추억의 맛이랄까.

달달한 돈가스가 살짝 느끼해질 때쯤이면 청양고추를 쌈장에 찍어 한입 베어물면 느끼해졌던 입맛이 바로 처음처럼 리셋된다. 이 집 돈가스는 철저히 한국식 돈가스다. 누구나 좋아할 달콤한 소스와 푸짐한 양 여기에 쌈장에 청양고추까지 30년 전통을 고수하며 지켜온 추억의 맛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손님들의 대부분은 중장년층이다. 식사를 하고 나올 때까지 20대 젊은 층은 단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아이 빼고.

★가격=등심 돈가스 8000원, 안심 돈가스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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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아하바 브라카’의 토마토 돈가스 정식 11,000원.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서울 정동 아하바 브라카 ‘토마토 돈가스 정식’

= 아하바 브라카는 서울 정동에 우치한 이탤리언 전문 레스토랑이다. 주 메뉴는 파스타 ,리조또 등 정통 이탈리아 요리지만 부메뉴라 할 수 있는 돈가스도 취급한다. 아하바 브라카의 돈가스는 주로 학생 및 여성 직장인, 주부들이 찾는다. 기자가 찾아간 시간이 오후 2시를 넘겼지만 테이블은 꽉 차 있었다.

다른 돈가스 집과 가장 대비되는 부분은 엄청난 양의 토마토 소스가 두터운 커틀렛에 얹혀있는 것이다. 최고의 슈퍼 푸드라 할 수 있는 토마토 소스에 가려 언뜻 보면 돈가스가 아닌 파스타나 리조또를 보는 듯 하다. 고기의 고소함이 토마토 소스의 매콤함에 더해져 식감이 매우 좋다. 인테리어도 이탈리아 풍으로 꾸며져 있어 식당안으로 들어가면 이국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토마토 돈가스는 식당의 오너와 20년 경력 셰프들의 합작품이다. 30년 가까이 유럽지역에 수출입사업을 해온 오너는 지중해의 풍광과 요리에 반해 이탈리아 전문 식당을 7년 전에 열었다. 부메뉴인 돈가스를 만들게 된 계기는 인근 초·중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업무에 건강을 잃은 직장인들에게 풍부한 단백질과 이국의 정취를 선사하기 위해서였다. 아하바 브라카의 또 다른 장점은 후식 후 나오는 커피에 있다. 콜드 브루 등 요즘 인기있는 방식으로 제조해 직접 만든다.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 만드는 커피보다 향과 맛이 뛰어나다.

★가격=토마토 돈가스 정식 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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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 ‘수제돈가스’의 등심돈가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서울 잠실 신천 ‘수제 돈가스’

= 신천 전통시장 한복판의 모퉁이에 작은 글씨로 ‘수제 돈가스’라는 식당이 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돈가스 전문점으로 문을 연지는 4년이 됐다. 30년 동안 꽃가게를 운영한 후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용돈벌이를 할 겸 문을 열었다. 9평의 작은 가게지만 하루 평균 300여개의 돈가스를 만들어 내는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비결은 두툼한 고기와 주인의 정성으로 빚어낸 양념과 소스에 있다. 마늘, 양파, 생강, 표고버섯, 다시마 등 몸에 좋은 재료로 양념을 만들어 고기를 하루정도 숙성시킨다. 숙성된 고기는 165도의 고온에서 은근히 오래 튀겨 나온다. 여기에 주인이 만든 소스를 손님의 취향에 맞게 뿌려 먹는다. 소스는 세종류가 있다. 여러 과일을 갈아 만든 과일소스, 청양고추를 넣어 매콤함을 더한 메운 소스, 딸기와 키위의 효소를 기반으로 만든 샐러드 소스가 있다.

두터운 고기의 텁텁함은 소스의 종류에 따라 여러 맛을 내며 손님들의 입맛을 돋군다. 시장의 일꾼들과 노동자들에게 넉넉한 영양을 제공하고 싶어 만든 6000원 짜리 돈가스는 이제 전통시장의 명물이 됐다. 30년 가까이 맡아온 꽃의 향기가 주인의 마음속에 스며있는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돈가스집이다.

★가격=등심돈가스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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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별아 돈카츠’의 커리 돈카츠.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서울 신촌 별아돈카츠 ‘커리 돈카츠’

= 커리 돈카츠를 비롯 모든 돈카츠의 모양이 디자인적이다. 여성들의 눈을 반짝이게 할 만큼 시각 만점이다. 돈가스가 아닌 ‘돈카츠’로 쓴 것은 돈가스의 고장 오사카의 발음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맛도 일본 오사카의 돈가스를 벤치마킹했다. 오사카 돈가스의 특징은 풍부한 육즙에 있다.

160그램의 두터운 고기를 정성스레 튀겨냈기 때문에 튀긴 음식이 아니라 ‘찐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쫄깃하고 부드러운 고기의 맛이 금세 느껴진다. 맛이 좋아 음식쓰레기는 거의 없을 정도라고. 사장 곽재형씨는 “학교 앞이어서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고기를 많이 제공한다. 모양도 예쁘고 식감도 좋아 커플들이 많이 찾는다. 항상 접시는 비어있다”고 말했다.

별아 돈카츠의 또 다른 특징은 높은 천장으로,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감과 뛰어난 음향감을 자랑하고 있다. 지하실이지만 천장이 높아 답답함이 없다. 게다가 존 레전드의 유명한 노래 ‘Under the stars’에 영감을 받아 천장에 반짝이는 LED 형광등을 달아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요, 힙합, 클래식 등 손님들의 취향에 맞춰 다양한 음악이 대형 스피커를 통해 들려진다. 맛있게 식사를 하면서 데이트도 즐길 수 있는 분위기 만점의 돈가스집이다.

★가격=커리돈카츠 8500원.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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