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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못생겼다는 말은 백번 들어도 돼요. 전혀 상관 없어요. 그런데 연기가 별로라는 말을 들으면 잠을 못자겠어요.”

배우 박민영은 지난 3일 종영한 KBS 2 수목극 ‘7일의 왕비’를 통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데뷔 11년차의 베테랑 배우이지만 연기력보다는 단아한 외모로 더 주목받았던 그다. 하지만 조선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동안 왕비의 자리에 앉았다 폐비된 비운의 여인 단경왕후 신씨를 둘러싼 중종과 연산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로맨스 사극 ‘7일의 왕비’에서 그는 비운의 왕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인 신채경 역을 맡아 혼신의 연기를 선보였다.

-종영 소감.

잘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제작발표회에서 ‘죽을 힘을 다해 연기하겠다’고 했는데, 약속 지킨 작품이라 끝나고 난 뒤 후련하다. 몰입한 시간이 길진 않은데 몰입도가 커서 먹먹함이 남아있다. 마음껏 운 작품이라 이제 웃고 싶은 마음도 든다. 후련하면서도 뿌듯하하고, 복합적인 마음이다.

-왜 잘하고 싶었나.

이 작품을 하기 직전은 연기 갈증이 가장 심한 시기였다. 그동안 ‘캔디 캐릭터’에 국한된 모습을 몇년 동안 보여드려 갈증이 심했다. 다른 것도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풀어내고 싶은데 자꾸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라 반전의 기회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이번 작품 시놉시스 속 캐릭터를 보며 슬픈 비극에 대한 갈증은 양껏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욕심이 났다. 역시 해보니 나도 모르게 다른 작품보다 훨씬 대본에 푹 빠져서 지냈다. 다른 일에 신경 안쓰고, 집중해서 온전히 이 캐릭터로만 살았다. 연기적으로 더 잘하고 싶고, 해내고 싶었다. 연기적으로 뭔가 풀어내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컸다.

-연기적 갈증을 해소했나.

비극적인 부분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다. 이보다 더 울 수 없었다. 바닥을 긁는 슬픔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는데, 그런 기회를 마주해서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너무 울었고, 캐릭터에 완전 빙의돼 있었다. 잠깐 이 캐릭터로 다녀온 것 같다. 묘한 쾌감, 성취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연기적 갈증은 완전히 해소 됐다.

-어느 정도 이 캐릭터에 몰입하며 지냈나.

다른 일에 아예 신경 안쓰고, 오롯이 대본에만 집중했다. 대본하고 살아본 게 처음이다. 자는 시간을 쪼개서 대본을 봤다. 하루 한시간도 안 잔 적이 많다. 만약 잘 시간이 세시간 주어진다면 그중 두 시간을 분석에 할애했다. 대사량도 많고, 씬이 다 길었기 때문이다. 대본만 하루종일 봤다. 원래 핸드폰도 자주 보는데 아예 놔버렸다. 친구들에게 ‘이렇게 연락 안 된 적은 처음’이라는 말도 들었다. 핸드폰이 아예 눈에 안 들어왔다.

초반 시청률이 기대치보다 안 나왔다. 그런데 캐릭터에 몰입하니 그런 아쉬움을 털어내게 되더라. 모든 걸 초월하고 내가 할일만 잘하자고 다짐했다. 내가 흔들리면 모두 흔들릴 거 같아서 연기에만 충실했다.

환경도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촬영장 문경에서 서울까지 세시간 거리이니, 아예 현장에서 모텔 생활을 했다. 사실상 출연진, 스태프와 동거동락하니 적응이 빨랐다. 연우진은 영화를 찍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하더라. 동네가 좁으니 서로 어제밤 뭐했는지, 뭘 먹었는지 다 알았다. 촬영장에서 아침에 만나면 ‘어제도 약돌돼지 먹었어?’라고 안부를 물을 만큼 서로 친근했다. 스태프, 출연진과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교감이 생기더라. 오랜만의 사극 촬영이었는데 여러모로 좋았다.

-몰입도가 높았으니 드라마 종영 이후 성취감은 최고였을 것 같다.

성취감으로 따지면 이 작품이 최근 몇년간 제일 컸다. 드라마 종영 이후 쫑파티에 갔는데 다른 배우들이 ‘네가 이렇게까지 해낼지 몰랐다. 좋은 배우더라’, ‘그 누구도 너만큼 못했을 거야’라고 말해주는데 눈물이 났다. 노력한 대가를 바란 건 아닌데 최선을 다하고, 정직하게 하면 한만큼 알아주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더라.

완벽한 연기는 당연히 아니었겠지만 훗날 2017년으로 돌아가 다시 해보라고 해도, 이 이상은 못할 것 같다. 내 모든 걸 쏟아부었다. 앞으로 더 완성도 있는 연기를 보여야겠지만 이번엔 최선 다했다는 것만으로도, 한씬 한컷 놓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이번 작품으로 들은 얘기중 기분 좋았던 평가는.

연기 칭찬이 제일 좋았다. 못생겼다는 말은 백번 들어도 된다. 그건 상관 없다. 그런데 연기가 별로라는 말을 들으면 잠을 못자겠다.

다행히 이번 작품은 끝나고 팬들 만족도가 높았라. 내 본업은 배우이니 본분에 충실하고 싶은 생각이 큰데, 단 1미터라도 이전보다 깊이 있는 연기가 나왔다는 칭찬을 들으면 날아갈 듯 행복하다. 그런 칭찬을 들으면 당장 촬영하고 싶고, 또 연기하고 싶은 원동력이 된다.

시청률이 안나와 질타 받을 줄 알았고, 오랜만의 사극 도전인데 기대치 보다 안나와 아쉬웠는데 반응이 나쁘진 않아 감사하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7일의 왕비’는 박민영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엄마가 객관적으로 모니터링 해주는 편인데 극 후반부에 ‘너는 힘들겠지만 너한테 너무 뜻깊은 작품이 될 거 같다’고 해줬다. 그 말처럼 할수록 의미가 깊어지더라. 시청률 성패를 떠나 치열하게 연기한 작품으로 기억될 거 같다.

-연기자로서 연기에 대한 욕심이 큰가.

배우가 연기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못살 거 같다. 이 일을 11년 동안 했는데 발전 못하고 퇴보했다고 그럴까봐 걱정이 된다. 내가 자기 복제만 하는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조급함이 있었기에 이번엔 더 잘하고 싶었다. 또 복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면 내게 재능이 없나 했을 텐데 그렇진 않았고, 칭찬도 받아서 날아갈 듯 기쁘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 문화창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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