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2000)
19세 공격수 이동국이 지난 1998년 5월5일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 훈련 도중 차범근 당시 대표팀 감독 앞에서 헤딩 훈련을 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이동국
포철공고 시절 대어급 공격수로 각광받던 이동국.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 20년차 국가대표 이동국(38·전북)의 ‘네버 엔딩 스토리’가 새 막을 연다.

‘신태용호’ 1기의 최대 화제는 내년 한국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공격수 이동국의 승선이다. 신 감독과 이동국은 대표팀 명단 발표 전 연락을 취한 뒤 32년 만의 월드컵 본선행 좌절 위기에 놓인 한국 축구를 살려내기로 의기투합했다. 이동국이 “(맏형 같은)축구 외적인 역할로 가는 것이라면 내키지 않는다”고 말하자 신 감독은 “대표팀에 필요한 카드라서 뽑는 것이다”고 화답했다. 신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순간적인 슛 타이밍이 좋고, 2선 침투 선수에게 찔러주는 패스가 최고의 클래스다”고 이동국의 발탁 이유를 설명했다.

1979년 4월29일에 태어난 이동국인 자신의 19번째 생일인 1998년 4월29일에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엔트리 승선 소식을 들었다. 한 달 뒤 자메이카전을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르고, 같은 해 6월 네덜란드와 프랑스 월드컵 본선 2차전에서 묵직한 중거리 슛을 날려 ‘한국 축구의 미래’로 떠올랐다. 어린 나이 탓에 20세 이하(U-20) 대표와 올림픽대표(23세 이하)를 병행했고, 혹사된 그의 무릎엔 붕대가 항상 감겨 있었다. 순탄할 줄 알았던 그의 축구 인생은 수 많은 스토리가 켜켜이 쌓이며 부침을 거듭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곤 각각 기량 논란과 부상으로 낙마했고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선 12년 만에 월드컵 무대를 밟았으나 우루과이와 16강전에서 찬스를 놓치며 아쉬움만 안고 돌아왔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땐 3차 예선 및 최종예선에서 위기의 대표팀을 구해냈으나 정작 브라질엔 가질 못했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이동국의 월드컵 도전이 지금 다시 피어나고 있다. 그는 올해 전북에서 18경기 4골 2도움을 올려 기록 면에선 돋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신 감독이 원하는 스트라이커 유형에 가깝다는 평가다. 특히 지난 달 23일 서울과의 라이벌전에서 측면 크로스로 이재성의 선제골 출발점이 됐고 직접 결승포까지 터트리면서 당시 경기를 지켜보던 신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다. 신 감독은 대표팀 최전방 공격수 자원으로 21살의 패기 넘치는 황희찬과 196㎝의 장신 김신욱, 그리고 이동국을 뽑았다. 황희찬이 저돌적인 축구를 하고, 김신욱이 키를 이용한 높이가 좋다면 이동국은 1~2선을 오가며 동료 공격 자원들과의 유기적인 플레이를 통해 이란 및 우즈베키스탄 수비진을 흔들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감독은 보이지 않는 이동국의 공헌도를 높게 샀다.

이동국은 한국 축구의 단골 논쟁거리다. 한·일 월드컵 본선 직전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수비를 하지 않는 공격수”란 혹평을 들으며 낙마한 사실은 그의 축구인생에서 ‘주홍글씨’로 따라다녔다. 2007년 야심차게 진출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 대표팀이 세대교체를 단행할 때마다 이동국은 엔트리 제외 1순위였다.

2010 FIFA 남아공월드컵 16강전 한국-우루과이
이동국이 2010년 6월26일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 넬슨 만델라 베이 경기장에서 열린 남아공 월드컵 16강 한국-우루과이 맞대결에서 볼 컨트롤을 하고 있다. 포트 엘리자베스 | 최승섭기자

[SS포토] \'한국 코스타리카\' 골 이동국... 테니스 세리머니로 가족애
이동국이 지난 2014년 10월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코스타리카 평가전에서 골을 넣은 뒤 테니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이 경기가 이동국이 가장 최근에 치른 A매치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하지만 불과 2년 전인 2015년까지 K리그 클래식 MVP를 수상하는 등 한국에서 ‘이동국 만한’ 공격수가 없다는 평가는 도돌이표처럼 주기적으로 축구계를 찾았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기량과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자기 관리 능력, 골과 어시스트, 연계에 두루 능해 한국 축구의 위기 때마다 ‘해결사’로 부름 받았다.

이동국은 2012년 2월29일 열린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최종전 쿠웨이트전에서 대표팀 공격수로 복귀, 선제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돌아왔다. 당시에도 한국은 쿠웨이트에 패할 경우 최종예선에도 오르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무려 5년 6개월의 시간이 지난 지금 이동국 앞에 놓인 한국 축구의 현실도 그 때와 똑같다. 오는 31일 열리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9차전 이란전, 내달 6일 최종예선 10차전 우즈베키스탄전에서 그의 ‘소금 같은’ 플레이가 터져나와야 한국 축구가 기사회생할 수 있다.

이동국은 2014년 10월14일 코스타리카와 평가전 이후 A매치에 뛴 적이 없다. 울리 슈틸리케 전 대표팀 감독도 러시아 월드컵을 겨냥, 30대 선수들의 기회를 제한했다. 그러다 벼랑 끝에 선 다급한 한국 축구가 자신을 찾았으니 이동국 입장에선 야속할 법도 하다. 이동국은 실제로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난 왜 항상 그런 역할만 해야하나”라며 허탈하게 웃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켠에 제쳐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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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이 테니스 선수인 딸 재아와 올 초 스포츠서울 신년인터뷰에서 하트를 그리고 있다. 이동국은 재아의 10번째 생일인 지난 14일 국가대표로 복귀했다. 인천 | 이주상기자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전 승리에 보탬이 돼 한국 축구를 살리겠다는 게 그의 다짐이다. 그는 A매치 103경기를 포함, 각급 대표로 무려 140경기를 소화했다. 이동국은 “준비를 잘 하겠다. 국민들은 월드컵 본선을 봐야 할 권리가 있다”는 말로 한국 축구 최고참으로서의 각오를 짧고 굵게 펼쳐보였다. 월드컵 본선행은 태극전사들의 성과나 특혜가 아니라, 선수들이 국민들 앞에서 실천해야 할 의무란 뜻이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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