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권준영 인턴기자] 연예인으로서 대중이 가진 프레임(frame)을 깨는 일은 쉽지 않다. 대중의 뇌리 속에 깊이 박힌 프레임에서 웬만해서는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그 어려운 걸 해낸 스타가 있다. 바로 배우 염정아다. 그는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선입견과 과소평가를 순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이겨낸 정통 연기파 배우로 손꼽힌다.


연예계에서 무려 2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스캔들 없이 묵묵히 자신 만의 자리를 구축해 온 염정아가 영화 '장산범'의 여주인공으로 대중 앞에 섰다.


스크린에선 공백이 다소 길었다. 지난해 JTBC '마녀보감'으로 안방극장을 찾아왔지만 2014년 영화 '카트' 이후 한동안 스크린 나들이를 하지 않았던 그가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는 17일 개봉을 앞둔 영화 '장산범'으로 원조 스릴러 퀸의 귀환을 알렸다.


'장산범'은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내 사람을 홀린다는 장산범을 둘러싸고 한 가족에게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 영화 '숨바꼭질'로 560만 흥행 신화를 쓴 허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장산범'은 인간의 심리적 불안감에 역점을 두고 압도적인 긴장감을 자아내면서 기존 스릴러 장르와 결을 달리해 일찍이 화제를 모았다.


영화에서 염정아는 도시를 떠나 장산에 내려가 살게된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 희연 역을 맡았다. 희연(염정아 분)은 5년 전 어린 아들 준서를 잃어버리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우연히 숲속을 헤매는 한 소녀(신린아 분)를 만난다. 딸과 같은 이름의 이 소녀를 집에 들인 이후 가족들이 미스터리한 소리를 듣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데뷔 27년차인 염정아는 어느덧 40대 중년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한민국에서 40대 여배우로 산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특히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이른바 '워킹맘'들이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만한 작품을 만날 기회는 극히 한정돼 있기 때문. 그렇기에 '장산범'은 그에게 정말 소중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991년 미스코리아 선으로 데뷔한 그는 당시로선 흔치 않았던 서구적인 외모로 섹시함과 묘한 신비로움을 풍기면서 주목받았다.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는 아니었지만 화려한 외모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한 연기 활동을 통해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간 출연작을 보면 의외로 굵직굵직한 영화와 드라마에 많이 출연한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염정아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리게 된 건 2003년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부터일 터. '장화, 홍련'은 배우 '염정아'라는 이름을 아로새기는 계기를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아이들을 학대하는 히스테리컬하고 기괴한 젊은 계모 역을 맡은 그는 등골이 오싹하면서도 섬뜩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충무로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2004년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에서 농익은 팜므파탈 연기를 펼치며 관객들에게 자신을 명배우로 각인시켰다. 이를 통해 영평상에서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같은 해 개봉한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에서는 종전의 캐릭터와는 180도 다른 코믹한 캐릭터에 도전하면서 '연기 카멜레온'임을 입증했다. 연기력뿐만 아니라 영화의 성공적인 흥행을 이끌어내면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2011년에는 MBC 드라마 '로열패밀리'의 주연을 맡아 복잡하고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인 김인숙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같은해 10월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에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아울러 드라마 방영 당시에는 '미시렐라'라는 호칭도 얻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


염정아는 2014년 영화 '카트'에선 소시민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 이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영화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도 섭렵했다. 과거 KBS2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여배우 특집과 MBC 강호동의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한 바 있다. 당시 방송에서 폭풍 입담과 톡톡튀는 매력을 발산해 화제를 모았다. 또한 소탈하고 털털한, 솔직한 모습으로 인간적인 매력을 드러냈다. 이후 방송에서도 내숭없이 털털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염정아는 경천동지할 '대박 인기'를 누린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활약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기에 그 의미가 크다.


[당시 기사 전문 요약]


[ 3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탤런트 염정아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와 교태가 넘실댄다. 강렬한 눈빛 속에는 독기마저 흐른다.


오는 7월 중순부터 촬영에 들어가는 코믹 추리물 '112번지?!'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팜므파탈'이다.


어느 날 주인공 허동팔(이경영 분)은 마누라의 등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다 얼떨결에 살인을 저지른다. 완전범죄를 노리고 시체를 버리려는 순간, 예기치 않은 불청객들이 이곳에 들이닥친다. 마누라의 절친한 후배 왈짜. 운전기사 달구, 그리고 비서 현지 등. 설상가상으로 시체까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데…


이 작품에서 염정아가 맡은 역할은 허동팔이 사랑하는 정부이자 섹시한 비서인 현지. 마누라를 지긋지긋해 하는 동팔에게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차지할 수 있다"고 꼬드기는 그녀는 돈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영악한 여우이다. 빼어난 미모와 빠른 두뇌회전으로 허동팔을 배후 조정한 후 결국엔 그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전형적인 악녀.


현지를 통해 돈과 섹스, 살인, 배신으로 얼룩진 인간의 속물근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작정이라는 그녀는 요즘 '악녀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의 제시카 월터. '디아 볼릭'의 샤론 스톤, '보디 히트'의 캐슬린 터너를 비롯해 '손톱'의 진희경에 이르기까지 악녀가 주인공이었던 비디오들을 죄다 빌려놓고 현지의 캐릭터 설정에 몰두하고 있다고 살짝 귀띔.


외모는 악녀 같을지(?) 모르지만 성격은 의외로 털털한 편이라고 털어놓는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녀로 일관할 거예요. 동정심도 원하지 않아요. 정말 못된 여자란 소리를 듣고 싶은 바람이죠"라며 다부진 각오를 전한다. 이번 작품은 '재즈바 히로시마', '테러리스트'에 이은 그녀의 세 번째 스크린 도전작이다.



염정아가 경천동지할 '대박 인기'를 누린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활약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기에 그 의미가 크다. 데뷔 당시 미스코리아 진도 아닌 선이었고, 배우 활동 초기에도 '히트작은 많지만 자신의 히트작은 없었던' 그저 그런 배우에 불과했다.


하지만 역경 속에서도 연기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미인대회 출신답게 화려한 외모는 기본에,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 지금은 연기력도 출중한 '믿고 보는 여배우'로 자리를 굳건히 잡았다. 어찌 보면 '인간승리'의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염정아가 데뷔 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연기에 대한 거듭된 갈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변함없는 연기 욕심이 지금의 '배우 염정아'를 지탱하고 있는 비결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수많은 스타가 명멸하는 연예계에서 무려 26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그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다.


'장산범'과 함께 연기 인생 제2막을 시작하는 염정아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팬들의 오감을 만족시킬지 기대를 모은다.


kjy@sportsseoul.com


사진ㅣ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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