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윤

[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KBS2 드라마 ‘쌈, 마이웨이’ 종영 며칠 뒤 취재진과 인터뷰를 가지기 전 배우 송하윤 소속사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송하윤이 달변은 아니니 양해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 엄살이었다. 취재진의 기대치를 낮추며 송하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였는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말솜씨를 뽐내진 않았지만 송하윤은 거의 ‘어록’을 만들어도 될 정도의 깊이있고 다양한 말들을, 차분하게 쏟아냈다.

‘쌈, 마이웨이’에서 ‘백설희’로 열연하며 ‘주만(안재홍 분)’과 현실감 넘치는 오래된 커플 연기를 펼쳐 큰 호응을 얻은 송하윤은 한국 나이 32세다. 2004년 CF모델 겸 연기자로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기대만큼 성장해오진 못했다. 그런 오랜 ‘무명’의 세월 때문인지 송하윤의 목소리와 말에는 최근 유행어처럼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넘쳐났다.

“서른 두살 송하윤이 실제로 보낸 시간의 일부분으로 남을 것 같아요.”, “굉장히 좋은 책 16권을 읽은 느낌이에요.”, “뭔가 내려놓을 수록 내가 느끼는 행복은 크다는 걸 느꼈어요.”, “내가 가진 자신감과 타인의 시선으로 느껴질 수 있는 오만은 종이 한장 차이에요.”, “행복하기만 하면 행복이 뭔지 몰라요. 상처, 아픔이 있어야 행복을 안대요.”, “대본이 답이고, 상대 배우가 답이에요.”, “스트레스를 일부러 풀려고 하진 않아요. 아프고 견디기 힘들어도 그걸 작품에 푸는 게 연기엔 큰 힘이 돼요.”, “누가 확 유명해지는 게 부럽지 않아요. 배우에겐 각자 자기만의 박자가 있어요. 제 이름이 알려지는거 보다 역할로 기억되는 게 좋아요.”, “‘연기를 잘했다’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왜?’라고 물을 때가 있어요. 저는 배우가 직업이고, 연기자인데 제가 하는 일을 잘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다음은 송하윤과 인터뷰 전문.

-‘쌈, 마이웨이’ 종영 소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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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행복했다.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던 기억 밖에 없다.

-‘설희’ 캐릭터로 큰 호응을 받았다.

나와 ‘설희’가 따로 분리된 느낌이 없었다. 연기를 하며 처음 느낀 감정이다. 이전에는 한 인물 연기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서 방에 있거나 촬영이 없는 날은 공허하거나 외로운 감정을 느꼈다. 이번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스트레스도 없었다.

-설희가 실제 자신과 닮아서 애착을 느낀 것인가.

싱크로율이 높지만, 나와 다른 부분도 있다. 그런데 대본을 보자마자 이 역할을 너무 하고 싶어서 마음 속으로 집착도 했다. 작가 선생님, 감독님을 뵐 때도 설희 입장에서 많이 얘기했다. 설희는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아이였다. 누구보다 넓은 마음을 가졌지만 어리버리한 면도 있고, 똑순이인데 2% 부족한 느낌도 준다. 대본을 읽는 내내 나도 지켜주고 싶고, 아껴주고 싶은 느낌이 컸다.

-왜 이 역할 하고 싶었나.

설희 캐릭터를 읽기 전에 대본 전체의 시놉시스를 봤는데, 쌈마이웨이 전체 느낌이 너무 좋았다. 읽는 내내 희망, 용기, 에너지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 MBC드라마 ‘내 딸, 금사월’의 오월이 이후 인생 캐릭터를 경신한 기분은.

‘설희’를 연기할 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지인들이 보내주는 기사나 댓글 캡처에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외부에 신경쓰는 대신 감독님과 대본의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며 역할에 몰입하고, 상대 배우와 의견을 나누는데만 집중했다. 다른 작품을 할 때 보니, 드라마 중간에 그 역할을 살고 있는데 외부 환경이나 바깥의 이야기에 자칫 흔들릴 수 있더라.

예를 들어 악플을 만나면 잘해야 한다는 긴장감 탓에 몸에 힘이 들어가더라. 뭔가 뭉치는 기분이 들었다. 힘을 빼야 하는 부분에 힘을 주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칭찬을 들으면 풀어질 위험성이 있다.

-연기 경력 14년이다. ‘설희’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

오히려 설희는 시간이 안 걸릴 거 같다. 오월 역이나 아침 드라마를 했을 때는 거기서 빠져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너무 많은 감정을 썼기 때문에 하나하나 담아야 하거나 풀어야 하는 숙제가 많았다.

설희는 느낌이 다르다. 어떤 느낌이냐면 서른 두살 송하윤이 실제로 보낸 시간의 일부분인 느낌이다. 유치원 때 기억을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라고 하듯 시간이 흐른 뒤 설희에 대해서는 내가 실제 살았던 시간인 것 처럼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그정도로 내 시간으로 살았다. 이 작품을 끝낸 뒤 ‘이렇게도 되는 구나. 실제처럼 살아지는구나’하는 걸 처음 느꼈다. 다음 작품을 만나는 마음도 조금 바뀔 거 같다.

-이번 작품을 하며 아쉬웠던 점은,

설희 연기하며 내가 만들어 놓은 숙제를 풀면서 많이 생각해봐야 한다. 매 신이 아쉬웠다. 왜 연기를 이렇게 밖에 못하지? 처음엔 자책도 많이 하고, 그래서 대본도 계속 보고 주만(안재홍)과 얘기도 계속했다.

중후반 쯤 깨달았다. 그게 답이 아니더라. 상대 배우와 눈을 보는게 중요하고, 교감이 훨씬 중요했다. 원래 알았지만 이번에 설희로 살며 주만을 만나서 그걸 많이 느꼈다. 우리 감정선이 종이한장 차이였다. 조금이라도 잘못 표현하면 다른 느낌이 나올 신이고 대사가 많았다. 우리가 풀어야 할 감정도 그랬다. 더 많이 서로의 눈을 보려고 했다.

송하윤

-주만이 아니라 배우 안재홍을 다시 보면 어떨 것 같나.

설희로 살면서 주만을 너무 많이 사랑했어서 느낌이 다를거 같긴 하다. 굉장히 많은 감정신이 있었다. 아직 끝난지 얼마 안됐다.

안재홍 씨 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과 종영 직후 제주도 포상휴가에 가서 재미있게 놀았다. 촬영 때는 세트 촬영이 없고, 부산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바쁜 일정이라 다함께 밥 한번 못 먹었다. 제주도 가서 서로 함께 있고 싶어서 2박3일 동안 잠을 안잤다. 계속 깨어있는 상태로 있었다. 자려고 해여졌는데 ‘아깝지 않아?’하고 다시 모여 밤새 수다 떨고 게임하며 놀았다.

-‘쌈 마이웨이’는 본인 연기 인생에 어떤 키워드로 남게 될까.

나이대마다 가지게 되는 고민과 생각이 있다. 난 이 작품을 서른 두 살에 만났는데. 굉장히 좋은 책 16권을 읽은 느낌이다. 읽으면서 위로와 힘을 받았고, 알 수 없는 에너지와 용기가 생겼다. 그런 대본을 읽으면서 이 느낌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줘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다. 모든 게 좋았다. 촬영장에 갔을 때 분주하게 사람들이 움직이며 발생하는 소음도 좋았다. 촬영장에 웃음도 많았고, 너무너무 즐거웠다. 이렇게 스트레스 안 받으며 촬영해보긴 처음이다.

-다른 작품들을 했을 땐 주로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나.

내가 맡아온 역할들이 평탄한 인생들이 아니었다. 감정선이 8개로 뻗치는 역할 등 감정 소모가 많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너무 힘들었다. 잠도 못자고, 끝나도 털어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설희로 살면서 ‘이렇게 하니까 편하구나’ 배운 것도 많다. 뭔가 내려놓을 수록 내가 느끼는 행복은 크다는 걸 설희를 통해 느꼈다.

-뭔가 내려놓는다는 말의 의미는.

꽉 쥐고 있는 것 처럼 위험하거나 무서운게 없더라. 욕심, 뭔가 가져야 한다는 감정을 갖게 되면 긴장의 연속이 된다. 편하게 지내면 연기도 편하게 되고, 더 많이 보이고, 느껴지는 것도 더 많이 생긴다.‘내 딸, 금사월’을 끝내고 1년 넘게 일을 안했는데 그때 성격과 성향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 선배나 친구를 만나서 ‘힘들다’고 말하면 진짜 힘들더라. 힘들다 말하는 순간 힘든 걸 느끼게 된다. ‘행복해’, ‘좋아’하면 기운이 바뀌더라. 말이 주는 간절함을 믿고, 긍정적으로 바꾸도록 노력하는 버릇이 생긴 거 같다.

설희를 연기 하면서 나는 왜 설희에게 공감하고, 사람들은 왜 설희 응원할까 생각해 봤다. 위로 받지 못한 걸 위로하고, 응원하고 싶은 건 아닐까 싶었다. 아픔을 애써 외면하는 설희를 통해서 자신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과거에 위로를 못한 내 자신을 설희를 통해 푼 거 같다. 나도 그랬고, 사람들도 그래서 응원한 것 같다.

-‘내 딸, 금사월’ 이후 왜 오래 쉬었나.

치유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 생각보다 나를 위로해줘야 하는 시간이 길었다.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예인으로서 이슈가 사라지고, 그러니 들어오는 역할도 제한됐다. 배우는 어쩔 수 없다. 기다려야 한다. 배우는 매달려도 안되는 게 있고, 놓고 기다리면 뭔가 올 때도 있다.

monami153@sportsseoul.com

<배우 송하윤. 사진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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