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신혜연기자] 7월 20일인 오늘 '전설의 액션 스타' 이소룡의 사망 44주기를 맞았다. 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이소룡이 44년 전 오늘 우리 곁을 떠났다.


이날 중국 언론 '시나 연예'는 이소룡 사망 44주기를 맞아 그의 사진과 업적에 대해 소개하며 추모했다.


해당 매체는 '중국계 미국인인 이소룡은 중국인으로서 할리우드의 한 획을 긋고 서양인들에게 중국의 쿵후를 널리 알렸다. 뿐만 아니라 세계 무술 영화에 이바지한 공을 높게 샀다'고 그의 업적을 설명했다. 더불어 한 매거진에서 그를 '20세기 영웅과 우상'에 선정한 소식도 전했다.


194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이소룡은 브루스 리라는 이름으로 중화권을 넘어 미국에서도 활동했다. 절권도의 창시자로도 알려진 그는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무술가이자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1970년대 무술 영화계에서 활약한 그는 첫 주연을 맡은 '당산대형'에 이어 '정무문', '맹룡과광'까지 연달아 히트시켰다.


특히 1973년 개봉한 '용쟁호투'는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해 미국과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로 인해 이소룡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큰 명성을 떨쳤다. 이소룡은 이때 알게 된 당시 엑스트라 배우인 성룡을 후원해 주며 인연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촬영이 끝난 후 개봉일을 3주 남기고 이소룡은 1973년 7월 20일 갑작스레 사망하고 만다.


친구였던 대만 여배우 베티 팅 페이의 집에서 작품을 검토하다가 두통을 호소하다 진통제를 먹고 잠들었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부검 결과 대마초 성분이 검출되기도 했지만 근육 이완제에 예민 반응이 일어나 사망에 이르렀다는 부검 결과가 나왔다. 그때 이소령의 나이는 겨우 33세였다.


이소룡이 떠난 지 4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는 현재 진행형으로 수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서 젊음과 도전정신, 그리고 강인함과 정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던지고 있다.


노란색 트레이닝 복과 절권도 등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영화와 사람들 사이에서 오마주 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heilie@sportsseoul.com


사진 | 이소룡 영화 스틸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