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찬 예술의 전당 사장

[스포츠서울 김효원기자]예술의전당의 문턱이 확 낮아졌다. 문화 대중화를 모토로 예술대중화를 꾸준히 시도한 고학찬(69) 예술의전당 사장의 공로다. 고 사장은 예술이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대중들이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문화국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하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대중화를 이끌었다. 예술의전당 역사상 첫 연임 사장이 된 고 사장을 만나 예술경영 철학을 들었다.

◇공연을 녹화해 문화소외 지역 찾아가는 ‘싹 온 스크린’ 호응↑

4년 넘게 예술의전당을 이끌고 있는 고 사장은 “나는 항상 오늘이 첫출근하는 날이고 생각하고 출근했다. 4년 동안 매일 첫출근하는 기분으로 출근해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그리고 4년이 넘으면서부터는 오늘이 내가 마지막 출근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출근하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일을 잘 마무리할까를 생각하면서 일한다”고 말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동양방송(TBC), 제일기획 Q채널, 삼성영상사업단을 거친 PD 출신으로 창의적인 마인드를 가진 고 사장은 경영에 있어서도 창의적 아이디어를 적극 도입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이다. 오페라, 발레 공연을 녹화해 산간벽지나 문화 소외지역에서 상영하는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호응을 얻으며 순항 중이다.

“‘싹 온 스크린’을 처음 시작할 때는 반대가 많았다. 공연을 공연장에서 보는 게 아니라 영상으로 보는 게 무슨 의미냐는 얘기였다. 그러나 스크린에서 보는 것도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먼저 다양한 각도로 무대를 볼 수 있다. 카메라를 15대로 촬영하면 15개의 각도로 영상을 볼 수 있다. 공연장에서는 볼 수 없는 각도도 볼 수 있다. 또 섬이나 군대 등에서는 공연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이같은 장점 때문에 나름 확신이 있어서 기업체를 다니면서 후원을 받아 사업을 진행했다.”

처음엔 우려가 많았지만 긍정적인 효과가 나오면서 예술의전당 사업 중 환영받는 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고 사장은 “얼마 전 전방에 가서 군인들과 함께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 영상을 함께 봤다. 군인들이 너무 좋아했다. 군대에 가면 문화와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하는데 문화와 담을 쌓으면 마음이 황폐해진다. 군인들도 한달에 한두 번은 문화를 접해야 한다. 또 얼마전에는 울릉도 어린이가 편지를 보내왔다. 발레를 처음 보고 발레리나 되고싶어졌다는 편지였다. 무척 보람있다”고 말했다.

 고학찬 예술의 전당 사장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이 자신의 경영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 사장 뒷편에 라틴어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뜻의 친필 서예가 눈길을 끈다.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서예박물관을 리노베이션해 현대적 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도 고 사장의 공로다. 고 사장은 “우리가 힘 안쓰면 사라질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서예다. 오페라하우스와 음악당에는 사람이 많은데 서예박물관은 적막강산이었다. 그게 우리나라 서예의 현주소였다. 1700년된 가장 오래된 예술장르가 없어져야 되겠나. 서예를 살리기 위해서 대한민국 유일한 서예박물관을 리노베이션했다. 리노베이션 후 서예박물관 연간 관람객수가 4만명 정도에서 현재 20만명 정도로 늘었다. 전시도 서예 뿐 아니라 그래피티 등까지 확대하니 젊은 관람객이 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예술의 대중화를 위한 또다른 시도는 무료로 진행하는 ‘가곡의 밤’과 ‘동요 콘서트’다. 가곡과 동요가 점차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는 고 사장은 각각 일년에 4차례씩 무료 콘서트를 통해 대중들이 가곡과 동요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미술관 마당에서 즐길 수 있는 푸드 트럭과 버스킹(거리공연)도 도입했다. 그러다 보니 1년 내내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연장이 됐다.

◇어린이예술단 결성하고 전국 투어 준비

고학찬 사장은 지난 2013년 취임해 지난해 연임됐다. 예술의전당 역사상 첫 연임자라는 이색 기록을 가지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예술의전당 사장은 2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되기 일쑤였다.

“예술의전당 29년 동안 내가 14번째 사장인데 연임한 사장이 처음이다. 보통 2년 정도의 임기를 마치고 자리를 옮겼다. 내가 연임 임기를 다 채우면 최초로 6년 동안 일하는 사장이 된다. 2년으로는 소신있는 경영을 펼치기 어렵다. 앞으로 예술의전당에서 6년을 넘어 9년, 12년 등 길게 일하는 사장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문화 정책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소신있게 펼쳐나갈 수 있다.”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고 난 뒤 각 문화예술단체장의 교체설이 다양하게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를 모르지 않는 고 사장은 “새로운 장관님이 새로운 문화정책을 펼칠텐데 문화정책은 일관성 있게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블랙리스트는 과감히 척결해야 하지만 문화의 방향은 긴 호흡으로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고 사장은 지난해 연말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어린이 100명으로 구성된 전속단체인 어린이예술단을 결성했다. 빈 소년합창단 최초 여성 지휘자 김보미 지휘자가 지휘를 맡았다. 어린이가 노래하는 세상을 만드는 게 꿈이라는 고 사장은 “어린이예술단이 현재 맹연습을 하고 있다. 올 해 부터 전국 투어를 펼칠 예정”이라면서 “또 하나의 꿈이 있다면 우리 어린이들이 남북 소통되면 맨먼저 북한에 가서 남북 어린아이들이 손잡고 노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30년을 되돌아보는 결산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에서 배출한 예술가나 초연 작품 등을 다시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30년을 위한 계획도 짜고 있다. 기대해달라.”

eggroll@sportsseoul.com

고학찬 예술의 전당 사장이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를 위해 오페라 하우스에서 포즈를 취하고있다. 사진|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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