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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현이 지난 8일 전남과의 홈 경기에서 시즌 13호골이자 귀중한 동점포를 후반 추가시간에 터트린 뒤 팬들 환호에 답하고 있다. 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 “꼭 내가 아니어도 어딘가에 베테랑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스트라이커 양동현(31·포항)은 올해 K리그 클래식에서 가장 뜨거운 존재다. 최근 8경기에서 8골을 터트리는 등 전성기를 써내려가며 리그 득점 선두에 올랐기 때문이다. 시즌 전까지만 해도 강등권 팀으로 분류되던 포항에서 거둔 성적이라 더욱 빛난다. 양동현이 춤을 추면서 포항도 2~5위를 오르내리는 등 중상위권에서 분전하고 있다. 마침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이 신태용 감독으로 바뀌고, 신 감독이 “이동국, 염기훈도 뽑을 수 있다”는 말로 관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들보다 몇 살 어린 양동현은 더 주목받고 있다.

신 감독은 12일 서울-포항전 관전을 통해 그를 관찰한다. 양동현은 올해 두 경기에서만 두 골씩을 넣고 나머지 9경기에선 한 골씩 터트렸다. 그 만큼 꾸준히 ‘한 방’을 꽂아넣었다는 뜻이다. 결승포도 무려 5차례나 된다. 한편으론 현 소속팀 포항에서 그가 펼쳐보이는 역할 때문에 “양동현은 뛰지 않는 공격수”라는 인상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는 울리 슈틸리케 전 대표팀 감독 아래서도 몇 차례 태극마크 후보로 꼽혔으나 적은 활동량 등이 문제가 되면서 명단에서 빠졌다. 포항이 서울과의 원정 경기를 하루 앞둔 11일 연락이 닿은 그는 “난 뛰지 않는 공격수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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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현이 지난 2003년 5월31일 부산에서 열린 U-17 친선축구대회 미국전에서 두 골을 기록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기복 없어 더 기쁘다…축구에 더 눈 떠야”

양동현은 울산 소속이던 2년 전이나 포항 첫 해인 지난해에도 초반 페이스가 좋았다. 2015년엔 초반 5경기 3골을 기록했다. 지난해엔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포함 초반 10경기 4골을 넣었다. 올해 페이스가 특별한 이유는 시즌 중반에도 그의 공격력이 활활 타오른다는 것에 있다. 1~6라운드 5골로 출발이 좋았던 그는 이후 4연속 무득점 수렁에 빠졌으나 11라운드 제주전부터 19라운드 전남전까지 8경기(16라운드 제주전은 결장)에서 8골을 넣었다. 자신이 목표로 한 시즌 18골 달성은 시간 문제가 됐다. “지난해나 2년 전엔 여름이 오면서 페이스가 떨어졌다. 팀 성적도 그랬다”는 그는 “올핸 팀이 일단 전체적으로 기복 없는 플레이를 많이 하다보니까 찬스가 꾸준히 오는 것 같다”며 “최순호 감독께서 늘 주문하시는 게 있다. ‘네가 스트라이커인데 측면으로 움직여서 크로스하면 뭘 하겠냐. 어차피 골을 넣는 게 네 임무다’라고 하신다. 선수들이 각자 역할을 잘하면서 공격수가 골을 완성할 수 있도록 과정을 잘 만들어 나가신다. 나도 내 몫을 충실히 하다보니 득점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10대 시절 한국 축구를 책임질 대형 공격수 재목으로 이름을 날렸다. ‘천재’란 소리도 들었다. 2003년 핀란드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도 출전했고, 스페인 바야돌리드 유소년팀에서도 뛰었다. 그러나 이후 부침을 거듭하며 컨디션이 좋을 땐 K리그에서 통하고 그렇지 않으면 잊혀지는 공격수가 됐다. 그런 경험들이 ‘올해의 양동현’을 만들었다. “8경기 8골이라는데 막상 실감은 안 난다. ‘그냥 오늘 골 넣었구나’ 이런 거다. 본능적으로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그는 “멀티골을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 경기 득점으로 기복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한국나이 32살, 축구에 눈을 뜬 것일까. 양동현은 “아니다. 더 떠야 한다”며 웃었다. 이내 “내가 천재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프로 선수로 13년을 뛰면서 내 몸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관리되어야 경기력이 잘 나오고 체력이 유지되는가를 알게 됐다. 그런 노하우가 올해 도움이 되고 있을 뿐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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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현(왼쪽)이 2007년 2월2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 예멘전에서 골을 넣은 뒤 백지훈의 축하를 받고 있다. (스포츠서울DB)

◇“난 안 뛰는 선수 아니다…대표팀, 다른 선수들처럼 간절”

양동현은 허정무 감독이 지휘하던 지난 2009년 대표팀에 승선한 적이 있다. 그러나 3경기에서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한 뒤 태극마크와 멀어졌다. 양동현은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엔 앞만 보고 달렸던 시기였다. 어렸고 패기가 있었지만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다르다. 그는 “요즘 시대가 젊은 선수들 위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부분은 있다”며 “어딘가엔 경험 갖춘 베테랑 선수들이 필요하다. 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 좋은 고참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이 열려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축구 선수로서 당연히 대표팀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다만 내가 잘해도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이어야 뽑히는 것 아니겠나. 그러나 가게 된다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살리면서 감독님 요구에 부응할 준비는 돼있다”고 밝혔다.

“양동현은 안 뛴다”는 견해에도 반박했다. “2015년 울산에서 윤정환 감독 지도를 받을 땐 너무 뛰다가 골을 못 넣어 문제가 생기더라. 지금은 반대로 득점을 하니까 ‘안 뛴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그는 “윤 감독님은 ‘공격수가 꼭 골을 넣지 않아도 된다. 팀에 희생해서 승리에 보탬이 된다면 넌 득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지금 최 감독님은 ‘네가 해결해줘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하신다”고 했다. 축구계에서도 양동현의 발 기술과 폭넓은 움직임을 강점으로 꼽는 평가가 있었다. 다만 지금은 포항의 플레이스타일에 맞춰나가다보니 페널티지역 내에서 강한 임팩트를 선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얘기다. 양동현은 “잘 뛰고 골 잘 넣는 선수가 여기 있겠는가. 내겐 소속팀과 팬이 우선이다. 다만 대표팀이 간절하지 않은 선수는 없다. 나도 그렇다”고 힘주어 말했다.

2010 FIFA 남아공월드컵 한국 축구대표팀 훈련
양동현(오른쪽)이 2009년 6월16일 국가대표팀 훈련 도중 김정우 앞에서 볼을 처리하고 있다. 파주 | 최승섭기자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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