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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 “꼭 내가 아니어도 어딘가에 베테랑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스트라이커 양동현(31·포항)은 올해 K리그 클래식에서 가장 뜨거운 존재다. 최근 8경기에서 8골을 터트리는 등 전성기를 써내려가며 리그 득점 선두에 올랐기 때문이다. 시즌 전까지만 해도 강등권 팀으로 분류되던 포항에서 거둔 성적이라 더욱 빛난다. 양동현이 춤을 추면서 포항도 2~5위를 오르내리는 등 중상위권에서 분전하고 있다. 마침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이 신태용 감독으로 바뀌고, 신 감독이 “이동국, 염기훈도 뽑을 수 있다”는 말로 관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들보다 몇 살 어린 양동현은 더 주목받고 있다.
신 감독은 12일 서울-포항전 관전을 통해 그를 관찰한다. 양동현은 올해 두 경기에서만 두 골씩을 넣고 나머지 9경기에선 한 골씩 터트렸다. 그 만큼 꾸준히 ‘한 방’을 꽂아넣었다는 뜻이다. 결승포도 무려 5차례나 된다. 한편으론 현 소속팀 포항에서 그가 펼쳐보이는 역할 때문에 “양동현은 뛰지 않는 공격수”라는 인상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는 울리 슈틸리케 전 대표팀 감독 아래서도 몇 차례 태극마크 후보로 꼽혔으나 적은 활동량 등이 문제가 되면서 명단에서 빠졌다. 포항이 서울과의 원정 경기를 하루 앞둔 11일 연락이 닿은 그는 “난 뛰지 않는 공격수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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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 없어 더 기쁘다…축구에 더 눈 떠야”
양동현은 울산 소속이던 2년 전이나 포항 첫 해인 지난해에도 초반 페이스가 좋았다. 2015년엔 초반 5경기 3골을 기록했다. 지난해엔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포함 초반 10경기 4골을 넣었다. 올해 페이스가 특별한 이유는 시즌 중반에도 그의 공격력이 활활 타오른다는 것에 있다. 1~6라운드 5골로 출발이 좋았던 그는 이후 4연속 무득점 수렁에 빠졌으나 11라운드 제주전부터 19라운드 전남전까지 8경기(16라운드 제주전은 결장)에서 8골을 넣었다. 자신이 목표로 한 시즌 18골 달성은 시간 문제가 됐다. “지난해나 2년 전엔 여름이 오면서 페이스가 떨어졌다. 팀 성적도 그랬다”는 그는 “올핸 팀이 일단 전체적으로 기복 없는 플레이를 많이 하다보니까 찬스가 꾸준히 오는 것 같다”며 “최순호 감독께서 늘 주문하시는 게 있다. ‘네가 스트라이커인데 측면으로 움직여서 크로스하면 뭘 하겠냐. 어차피 골을 넣는 게 네 임무다’라고 하신다. 선수들이 각자 역할을 잘하면서 공격수가 골을 완성할 수 있도록 과정을 잘 만들어 나가신다. 나도 내 몫을 충실히 하다보니 득점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10대 시절 한국 축구를 책임질 대형 공격수 재목으로 이름을 날렸다. ‘천재’란 소리도 들었다. 2003년 핀란드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도 출전했고, 스페인 바야돌리드 유소년팀에서도 뛰었다. 그러나 이후 부침을 거듭하며 컨디션이 좋을 땐 K리그에서 통하고 그렇지 않으면 잊혀지는 공격수가 됐다. 그런 경험들이 ‘올해의 양동현’을 만들었다. “8경기 8골이라는데 막상 실감은 안 난다. ‘그냥 오늘 골 넣었구나’ 이런 거다. 본능적으로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그는 “멀티골을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 경기 득점으로 기복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한국나이 32살, 축구에 눈을 뜬 것일까. 양동현은 “아니다. 더 떠야 한다”며 웃었다. 이내 “내가 천재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프로 선수로 13년을 뛰면서 내 몸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관리되어야 경기력이 잘 나오고 체력이 유지되는가를 알게 됐다. 그런 노하우가 올해 도움이 되고 있을 뿐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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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안 뛰는 선수 아니다…대표팀, 다른 선수들처럼 간절”
양동현은 허정무 감독이 지휘하던 지난 2009년 대표팀에 승선한 적이 있다. 그러나 3경기에서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한 뒤 태극마크와 멀어졌다. 양동현은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엔 앞만 보고 달렸던 시기였다. 어렸고 패기가 있었지만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다르다. 그는 “요즘 시대가 젊은 선수들 위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부분은 있다”며 “어딘가엔 경험 갖춘 베테랑 선수들이 필요하다. 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 좋은 고참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이 열려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축구 선수로서 당연히 대표팀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다만 내가 잘해도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이어야 뽑히는 것 아니겠나. 그러나 가게 된다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살리면서 감독님 요구에 부응할 준비는 돼있다”고 밝혔다.
“양동현은 안 뛴다”는 견해에도 반박했다. “2015년 울산에서 윤정환 감독 지도를 받을 땐 너무 뛰다가 골을 못 넣어 문제가 생기더라. 지금은 반대로 득점을 하니까 ‘안 뛴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그는 “윤 감독님은 ‘공격수가 꼭 골을 넣지 않아도 된다. 팀에 희생해서 승리에 보탬이 된다면 넌 득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지금 최 감독님은 ‘네가 해결해줘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하신다”고 했다. 축구계에서도 양동현의 발 기술과 폭넓은 움직임을 강점으로 꼽는 평가가 있었다. 다만 지금은 포항의 플레이스타일에 맞춰나가다보니 페널티지역 내에서 강한 임팩트를 선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얘기다. 양동현은 “잘 뛰고 골 잘 넣는 선수가 여기 있겠는가. 내겐 소속팀과 팬이 우선이다. 다만 대표팀이 간절하지 않은 선수는 없다. 나도 그렇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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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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